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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여행] 봉화 구마동 큰터마을-1-

바래미나 2011. 12. 19. 19:23

 

[오지여행] 봉화 구마동 큰터마을
흐르는 계곡에 시간까지 흘려보낸 듯
십승지 중에서도 오지로 남은, 자연과 함께 사는 그곳

▲ 87세지만 아직 정정한 듯 나무지게에 장작을 올리고 있는 안세기 옹이다. 안 옹과 함께 집안을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뒤에 보인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십승지(十勝地)로 알려진 곳 중의 하나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사이에 있는 구마계곡(지금은 고선계곡). 서남쪽으로 각화산, 동북쪽으로 청옥산이 자리 잡아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길도 없다. 들어오는 통로라곤 계곡 따라 올라오는 길뿐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은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곳으로 난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지금은 단순한 적송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일제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춘양목으로 가득 메워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첩첩산중, 그 산 속을 흉년·전염병·전쟁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십승지 중 한 곳에 포함시켰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등 산이 높고 험해서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곳이다.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 영월 상동읍 연하리 일대 정동 상류,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난증항 일대,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유구와 마곡의 두 강 사이,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금계촌 일대,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당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전북 무주군 무풍면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남원시 운봉읍 두류산 아래 동점촌 일대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등이다. 십승지는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가 대개 물이 빠져나가는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 안세기 옹의 집 바로 앞에는 소천계곡이 흐르고 있다.

역설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곳이어서 산림은 다른 어느 곳보다 우거졌다. 그 우거진 산림이 봉화엔 오히려 화(禍)를 불렀다. 일제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를 가만두지 않았다. 첩첩산중 심산유곡 그곳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끓었다. 시끌벅적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벗겨졌다. 그 흔적이 각화산 끝자락 구마(고선)계곡 상단 조그만 공터에 비석으로 남아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금강소나무의 눈물이 담긴 조선임업개발주식회사 주재소 터’라고 쓰인 비석은 현재까지 그곳에 살고 있는 안세기(87) 옹의 증언과 더불어 당시 일제의 벌목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74년째 큰터마을에 살고 있어
‘이곳은 일제 강점기인 소화(昭和) 3년(1928년)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17년간 봉화군 일대 금강소나무(춘양목)를 벌목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세운 조선임업개발주식회사 주재소 터이다. (후략)’


안 옹은 주재소에서 급사로 근무하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광복과 더불어 일제는 돌아갔고 마을은 다시 그 옛날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일이 없어지자 곧바로 하나 둘 사라졌다. 원래 삼삼오오 모여 살던,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한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꼬불꼬불한 31번도로에서 계곡 따라 무려 15㎞나 올라가야 봉화군 구마동 큰터마을이다. 봉화군에서 제일 긴 계곡이다. 아니 전국 어느 계곡과 비교해도 결코 짧지 않은 계곡이다. 한국에서 가장 긴 편인 지리산과 설악산의 계곡과도 견줄 만하다. 안세기 옹은 이 마을에서만 70년 이상 살고 있다.


“아버지가 십승지 명당이라 하여 들어온 게 13세 때였으니까 지금부터 74년 전이지. 그 때는 일제가 한창 금강송을 남벌해 가고 있었지.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급사로 들어가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했어. 여기 금강송들은 어른이 두 팔 벌려 감싸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아름드리나무들이었지. 그걸 왜놈들이 다 베어버렸어. 참 아까운 나무들이지. 지금 저것들은 다 1960년대 이후 심은 나무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