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사진--후기--

[마지막 오지를 찾아서]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2-

바래미나 2011. 12. 19. 19:27
[마지막 오지를 찾아서]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한,‘육지 속의 섬 마을’
소양호의 수몰민 박기모 전 이상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 1 시골집에선 꽃도 인심마냥 풍성하게 피었다. 2 과수원 제초작업을 하는 대곡마을 주민. 3 대곡리에선 물에 잠긴 보트마저 평화로워 보인다.

그는 마을에 전기를 들이기 위해 1988년 춘천의 여관에서 3개월간 기거하며 매일 군청에 나가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2003년부터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해 시행사에서 2년 동안 지하수를 파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어업과 산채류 외에 마땅히 수입이 없던 이곳에 장뇌삼을 처음 들여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은 주 수입원으로 바꿔놓았다. 2억 원의 예산 지원을 받아 농기구와 차량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송선을 구입하기도 했다. 마을 발전을 위해 열정을 다한 그였기에 건강 문제로 은퇴하기 전까지 37년간 이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화로운 풍경 속의 치열한 삶 
경치가 아무리 평화로워도 사람 사는 곳은 크고 작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마을 반장을 맡고 있는 정해운(58)씨는 지금보다 과거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과수원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고압선이 주민들 생활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문제가 됐다고 큰 목소리로 얘기한다. 마을 엽사이며 어업을 주로 하는 그는 “쏘가리와 뱀장어가 주로 올라오는데 올해는 수온이 차가워 고기가 잘 안 잡힌다”고 한다.


이건형 이장은 2억 원을 들여 도입한 수송선이 기존 민간 수송선 사업자의 소송으로 운행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과수원을 하는 가구가 많아 마을 내에 포장된 도로가 있어야 과일이 상하지 않게 온전히 옮길 수 있는데, 법규상 ‘농선’으로 등록된 점을 기존 사업자가 걸고 넘어져 레미콘이 몇 번 들어오다가 못 들어와 도로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농선으로 등록됐으니 농기구나 농업 목적 외의 장비는 실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후 문제는 더 복잡해져 현재는 마을 공동의 수송선을 한번 사용할 때마다 고비용을 내며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 전 이장의 아들인 박영남(42)씨는 시골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말한다. 


“대곡리가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봐서 농촌과 도시문화를 다 겪어봤습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 너나할 것 없이 품앗이로 일했어요. 뭘하든 동네가 다같이 움직였고 동네사람들은 한집안이나 다름없었죠. 그게 진짜 시골이죠. 지금은 시골도 도시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 소양호에서 본 대곡마을.2km 가량 길쭉하게 마을이 이어져 있다.

박영남씨는 도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늘면서 농촌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에서 사는 법과 농촌에서 사는 법이 다른데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 룰을 모르니까 계속 농촌 문화와 어긋나게 된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관습상 싫은 소리를 못 하니 농촌문화가 도시문화를 흡수하지 못하고 시골문화가 도시의 배타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속상해요. 도시에서 온 사람한테 계속 당하니까 속상해요. 계속 양보만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구석에 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골 사람이 바보가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나쁜 말을 하게 되고……, 그런 게 도가 넘치니까 원주민들끼리 싸우는 지경에 이른 거죠. 농촌문화에 흡수되도록 10년 전에만 지적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만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다투기 싫어서 이렇게 방관만 하다 보면 농촌이 농촌도 아닌 도시도 아닌 이상한 곳이 되고 말 거예요.”


그는 이런 시골 상황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이 겪는 공통된 문제라고 한다. 도시 사람이 으리으리하게 신식집을 짓고 들어오면 허름한 집에 사는 시골 사람들은 기선을 제압당하게 되니까 얘기하기 어렵다고 한다.


저녁이 되자 세상의 외딴 곳에 온 것 마냥 완벽한 어둠이 드리웠다. 힘 있게 굽이치던 마루금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던 넓은 호수도 그저 검정일 뿐이다. 도시인에게는 쉬 익숙해지지 않을 어둠과 고요다. 이제야 완벽한 고립이 실감난다. 산과 물에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의 큰어른인 박기모 옹은 불평하지 않는다.
“고향이 수몰됐어도 그 때 댐을 만들었으니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겁니다. 나라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대곡리가 고립된 건 괜찮습니다.”


소양호에 가면 섬이 된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고립되어 더 좋은 곳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림처럼 잔잔한 소양호 풍경 속으로 대곡마을 사람들의 땀내 나는 치열한 하루가 시작된다.


▲ 대곡마을 나루터에 해가 저문다. 대곡리에선 평범한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