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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川대첩 승리의 숨은 助役 內平지서 전투 秘話

바래미나 2011. 4. 18. 21:58

春川대첩 승리의 숨은 助役 內平지서 전투 秘話

38도선 바로 남쪽의 춘천 북방 화천 근처의 吾項里(오항리) 일대를 휩쓴 인민군 2사단 병력은 內平里(내평리)로 들어와 內平지서(長:盧鍾海 경위)를 포위했다. 내평지서를 점령한 후 소양강을 건너 春川을 점령한 후 48시간 이내에 水原(수원)에 진출,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국군 전후방을 분리하고 인민군 1군단으로 하여금 서울 지구에서 국군의 主力(주력)을 섬멸할 계획이었다.

내평지서는 마을 한복판인 46번 도로변의 약간 높은 곳에 있었으며, 그 주위를 마대로 쌓아 올려 陣地化(진지화)되어 있었다. 지서장 이하 12명의 경찰관과 북산면 대한청년단 金鳳林(김봉림) 단장은 철수할 기회를 놓쳤으나 당황하지 않고 敵과 交戰을 벌였다. 그러나 워낙 수적으로 불리해 방어진지를 고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신마저 두절되었다.

전황은 시간이 갈수록 불리하기 기울어지고 지원군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상황은 더욱 위급하게 전개되었다. 지서장 이하 전원은 죽음을 각오하며 완강히 저항했다. 「지서 하나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북한군은 20여 명의 병력을 잃은 데다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에도 불구하고 지서를 쉽게 점령하지 못했다. 공격이 뜻대로 진척되지 않아 초조해진 인민군은 82mm 박격포까지 투입, 지서를 불태운 후에야 간신히 內平지서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지서장 盧鍾海 경위 이하 沈載欽(심재흠)·金碩振(김석진) 순경 등 9명의 경찰관이 戰死하고 생존한 3명의 경찰관은 九死一生으로 포위망을 탈출했다. 內平지서의 저항은 인민군 2사단의 진출을 1시간 이상 지연시켜 국군 제7연대 제2대대로 하여금 원나루 남쪽 主저항선을 확보하는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春川방어에 크게 기여했다.

春川전투는 일개 지역 전투에서의 승리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북한의 전쟁 계획을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한국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春川전투에서의 실패로 북한의 서울 主力군 섬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春川·洪川 전투의 승리로 국군은 戰列을 정비할 시간을 벌고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 유엔군과 함께 大反擊을 개시할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6사단의 奮戰은 한국전쟁의 전개 양상을 뒤바꾼 세계사적 전투였다.

內評지서 전투에서 警察들이 劣勢를 느끼고 戰意를 상실해 쉽게 점령당했다면 春川대첩의 양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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