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김수환 추기경

[스크랩]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제72화 명동을 떠나 새집으로

바래미나 2010. 9. 22. 00:59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 30)

수환은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침내 한국 가톨릭 교회를 이끌어 갈 새 교구장이 공식 발표됐다. 지난 30년간 한국 교회를 이끌어 온 수환으로서는 비로소 그 무거운 짐을 벗게 된 것이다.
      
"내 스스로 내가 30년 동안 거기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했어. 30년이란 사실 상당히 긴 세월아니야...~ 30년동안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 여러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내가 100점 만점으로 하면? 50점?...~ 모든 점에서."

"아쉬움이라면 내가 뭐 늘 부족했으니까...~ 내가 그렇게 다 하지 못했던 거. 그것이 좀."

"그거야 뭐 좋아하는... 장소는 명동에 살았으니까 명동 자체가 좋아하는 자리라 그럴까?"
    
"내가 혼자서 자주 간 거는 매번 찾아간 거는 그 계성학교 뜰이었어...~ 그러나물론 거기보다 더 자주 가기는 성당이고."

"명동성당에 이 올라가는 언덕이 특별히 달밤은 아주 일품이야...~ 아주 성당으로서도 품위가 있고 좋다 이렇게 느껴요."

떠나는 사람에겐 남은 말이 많지 않다.ㅜ그러나 보내는 사람에겐 그 서운함이 차고도 넘치는 법. 수환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송별의 자리도 그랬다.
      
"그날도 역시 미사의 지향은 감사...~ 내가 이분들을 그렇게 사랑하지 못한 거."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몇가지 있죠...~ 혼자서 흥얼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는 향수..."

"신자들이 나를 뭐라 그럴까 그렇게 사랑하니까 사랑에 보답으로서...~ 노래 부를 줄모르면서도 말이죠 그렇게."
      
"애모가 가장 많이 무른 게 애몰꺼야...~ 그렇게 하면 말들이 뜻이 맞기도 해요."

1998년 6월 29일. 새 교구장의 착좌식 참석을 끝으로 수환은 대교구장으로서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명동을 떠났다. 68년, 마흔일곱 나이에 교회를 떠맡은 이래 30년 동안 살아온 명동이었다. 그 30년은 참으로 사연이 많은 세월이었다. 군부독재의 사슬에 숨 죽이고, 민주화 열망으로 눈물을 쏟고, 오갈데 없는 딱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와 가슴 속의 상처를 쏟아붓곤 하던 30년의 기억... 수환에게는 그것이 삶의 전부였다. 더 이상 남길 것도, 쏟아부을 것도 없을만큼 그가 가진 것을 다 내놓은 삶, 그 전체였다.

"뭐 없지 않아 있겠죠...~ 이렇게 그걸로서 종지부를 직고 딱 점 찍는 게 좋을 것 같애."

저의 부족한 탓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드린 것, 혹시라도 상처를 드린 것, 실망을 드린 것, 그 모든 잘못에 대해서 너그러운 용서를 청합니다.
- 1998.6.22. 감사미사 중에서 -

"사랑하지 못한 거.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거. 그건 뭐 오늘까지도 아마죽는 날까지도 그럴거야."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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