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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의표준이야기] 음식 맛이 2% 부족할 때 재미있는 측정표준

바래미나 2007. 10. 9. 00:57
[박용기의표준이야기] 음식 맛이 2% 부족할 때 재미있는 측정표준

 

 
과학적 방법이 아닌 경험에 의해 알게 된 경험법칙을 영어로는 '룰 오브 섬(rule of thumb)'이라고 한다. 그대로 번역하면 '엄지손가락 법칙'이다. 이 말은 온도계가 발명되기 전 양조 기술자들이 효모를 첨가하기에 적절한 때를 알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술 원료 혼합물 속에 담가 온도를 측정했던 데서 유래한다. 이렇듯 음식과 온도는 온도계가 없었던 오래전부터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돼지고기는 몇 도에서 구우면 맛있을까. 개인적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60~70도 사이에서 굽는 게 좋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한 세대 전만 해도 돼지고기 안에 기생하는 선모충 때문에 80도 이상에서 굽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이 기생충은 58도 이상에서는 살지 못하므로 60도 이상이면 안전하다고 한다. 쇠고기나 양고기의 알맞은 조리 온도는 이보다 낮아 살짝 익은 고기를 원할 경우는 52도, 중간 정도는 55도, 그리고 완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60도 부근에서 굽는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도 맛있게 느끼는 온도가 있다. 예를 들어 찌개는 95도 정도에서 맛있고, 냉수는 13도가 가장 맛있게 느껴지며, 적포도주는 16~18도가 적당하고, 맥주는 6~8도 정도가 좋다. 그렇다면 커피는 몇 도 정도가 알맞을까.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마시는 원두커피의 온도는 60도 부근이지만 맛있는 커피의 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은 82~88도 정도라고 한다. 맛있는 커피 때문에 일어난 엄청난 피해배상 사건도 있다. 1992년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 업체는 맛있는 커피를 위해 85도 정도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고객이 이 커피를 차 안에서 쏟아 화상을 입는 바람에 무려 286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 커피의 온도를 70도로 낮춘 예가 있다.

찬 맥주보다 미지근한 맥주가 더 쓰게 느껴지고, 찬 아이스크림보다 조금 녹은 아이스크림이 더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 혀에는 맛을 느끼는 미뢰 중 TRPM5라는 것이 있어 온도에 따라 단맛과 쓴맛을 다르게 느끼게 한다. 즉 TRPM5라는 미뢰는 음식의 온도가 상승하면 반응이 강해져 더욱 강한 전기적 신호를 뇌로 보내게 되고 뇌는 더 강한 맛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의 쌉쌀한 맛은 온도가 높을수록 강하게 느껴지며 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하고, 아이스크림은 조금 녹았을 때에 더 달게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보통 얼린 상태로 먹기 때문에 단맛을 느끼게 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설탕을 첨가한다.

이와 같이 온도란 차갑고 뜨거운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온도의 눈금은 어떻게 정해질까. 온도 눈금에 관한 국제적 결정은 27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처음 채택된 뒤 20년마다 개정됐으며 현재 사용하는 온도 눈금은 90년에 결정됐다. 온도 눈금의 가장 기본적 기준은 물과 수증기와 얼음이 공존하는 물의 삼중점이다. 이 점은 물이 0.006기압에서 어는 온도에 해당한다. 이 점을 절대온도 273.16K로 정의했다. 그리고 1도의 간격은 절대온도 0도와 물의 삼중점 사이를 273.16으로 나눈 값으로 정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섭씨온도의 눈금은 대기압에서 물이 어는 온도를 0도로, 끓는 온도를 100도로 정하고 그 사이를 100등분해 사용하고 있지만 보다 정확한 정의는 절대온도에서 273.15도를 뺀 값이 된다. 이 정의에 의하면 물이 대기압 아래서 끓는 온도는 99.974도가 된다.

아직도 우리의 주방에서는 경험법칙이 지배한다. 하지만 음식 맛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숨겨진 2%의 맛은 어쩌면 온도에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기 바란다.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