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시간을 때로는 찰나라고 한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순간이라는 말의 발음을 옮긴 것으로 75분의 1초(약 0.013초)로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대적인 뇌과학기술로 측정해 보면 사람은 60분의 1초(약 0.017초)보다 짧은 시간 간격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눈으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찰나는 인간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보다 짧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다 아는 바와 같이 얼마든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도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찰나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을 관찰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들을 꾸준히 개발해 오고 있다.
1878년 영국의 사진작가인 마이브리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그 당시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달리는 말의 발동작을 촬영했다. 이를 위해 그는 50대의 카메라를 일렬로 늘어놓았다. 그 결과 달리는 동안 네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머무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사진 촬영을 주문했던 스탠퍼드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믿음과는 반대로 네 발이 땅에서 모두 떨어지는 순간은 네 다리를 앞뒤로 쭉 뻗을 때가 아니라 네 발을 모을 때라는 것도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빠른 동작을 포착하기 위해 점점 더 빠른 카메라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1초에 2억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등장해 시속 2700㎞로 날아가는 총알이 공중에 정지한 것과 같은 선명한 모습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고속 카메라를 이용하면 총알이 물체를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정밀하게 분석해 더욱 강력한 방탄복 개발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속 카메라를 이용해도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빠른 원자와 분자의 움직임은 포착할 수 없다. 분자 안에 있는 원자가 한 번 진동하는 시간은 대략 10 내지 100펨토초(fs) 정도로 지극히 빠르기 때문이다. 1펨토초는 10의 15승분의 1초, 즉 1000조분의 1초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1초에 지구 둘레를 일곱 바퀴 반 도는 빛조차도 100펨토초 동안에는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거리도 다 지나가지 못하는 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198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제웨일 교수는 이 시간과 비슷한 정도의 시간 폭을 가지는 펨토초 레이저 섬광을 이용해 사진을 찍듯 화학반응 중의 원자나 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펨토초 분광기술의 시대를 열었다.
펨토초 레이저는 초고속 현상을 관찰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뿐만 아니라 초정밀 측정과 가공에도 대단히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극히 안정된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한다면 약 150억 년에 단 1초만 틀리는 초정밀 시계를 만들 수도 있다. 또한 펨토초 레이저를 물질에 쏘면 짧은 시간 안에 큰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전달된 에너지가 열로 바뀌기 이전에 가공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레이저 가공기술보다 훨씬 정밀하고 깨끗한 마무리가 가능해진다. 이를 의료분야에 활용하면 더욱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찰나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싶은 인류의 욕망은 새로운 펨토초 과학기술을 만들어 냈고, 이를 이용해 더 빠르고 정확한 과학기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촌음을 아껴라'는 시간 관리의 개념도 이제는 '펨토초도 아껴라'는 말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