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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의표준이야기] 스탠다도피아 재미있는 측정표준

바래미나 2007. 10. 9. 00:45
 
[박용기의표준이야기] 스탠다도피아 
(standard+utopia·표준에 의해 삶이 풍요로워지는 세상)
성경에는 대홍수를 경험한 인류가 바벨탑을 쌓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 당시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홍수가 다시 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기 위한 재난 대비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느님이 갑자기 언어의 표준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게 됐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뿔뿔이 흩어지면서 당시의 최첨단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한편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엄격한 측정표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인류의 과학기술적 유산이다. 고대 이집트에는 '로열 이집트 큐빗'이라는 길이의 단위가 있었다. 이 길이는 그 당시 통치하던 파라오의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에 손바닥 폭의 길이를 더한 길이로 정의됐다. 이 길이를 화강암에 새겨놓은 '로열 큐빗 마스터'가 있었으며,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작업자들에겐 나무나 화강석에 새긴 자가 공급됐다. 왕실 건축가와 감독관들은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사용하던 자를 로열 큐빗 마스터와 비교하여 정확성을 유지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만일 이 임무를 소홀히 할 경우 그들 앞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엄격하게 길이에 대한 측정표준을 지킨 결과 기자의 피라미드는 0.05%의 정밀도를 가지고 세워질 수 있었으며 4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웅장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고대에는 큐빗과 같이 손쉽게 정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를 이용해 길이의 표준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피트는 발 길이로부터 나왔고 인치는 엄지손가락 굵기로부터 나왔다. 영국 왕 헨리 1세는 팔을 쭉 뻗은 후 그의 코끝에서부터 엄지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1야드로 정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측정표준의 단위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채택된 국제단위계(SI 단위)다. 국제도량형총회란 미터협약에 의해 만들어진 측정표준 분야의 유엔총회와 같은 기구다. 국제단위계에선 과학적으로 정의된 7가지의 기본단위가 사용된다. 즉 길이(m).질량(㎏).시간(s).온도(K).전류(A).광도(cd) 및 물질량(mol)이 그것이다. 그 밖에 과학기술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측정 단위들은 이들 기본단위가 조합돼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미터법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영국 등에서는 아직도 야드-파운드 단위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적이 있다.

98년 12월 화성 주위를 돌면서 화성의 날씨를 관측하기 위해 발사된 미국의 화성탐사 위성은 99년 9월 화성 궤도 진입을 시도하다 파괴되고 말았다. 실패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정말 사소한 실수로 인해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궤도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소형 추진체의 추진력 계산에서 미터법의 단위를 사용해야 할 계산식에 실수로 야드-파운드 단위로 된 데이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위성은 계획된 궤도보다 더 낮은 궤도까지 진입하면서 대기 저항으로 파괴됐던 것이다. 사소한 단위 사용의 혼선으로 무려 1억2500만 달러짜리 화성 관측 위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은 표준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첨단 과학기술의 프런티어에는 정밀 측정기술이 있으며, 기업은 세계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3차 대전'이라고 표현할 만큼 치열한 표준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표준은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건강하며 안전하게 지켜 줄 수도 있다. 표준이 올라감으로써 삶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지는 스탠다도피아(standardopia) 세상을 꿈꿔 본다.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