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찰이 시속 20㎞로 가는 차를 세웠다. 운전자는 연세가 드신 할아버지. 경찰은 너무 천천히 운전하시는데 차에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이 길로 접어들 때 표지판에 20이라고 쓰여 있어서 제한속도를 지키느라 그랬지." 경찰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그건 제한속도가 아니고 이 길 번호예요. 여기는 제한 속도가 시속 60㎞이니 좀 더 빨리 달리셔도 괜찮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로 말했다. "어쩐지, 이 길을 들어서기 전엔 180이라 쓰여 있어 그 속도 맞추느라 죽는 줄 알았지…."
고속도로나 국도를 달리다 보면 군데군데 제한 속도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또 과속 단속 카메라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 많은 차에는 GPS 장치가 설치돼 있어 고정식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에 단속을 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동식 속도측정기는 위치를 미리 알 수 없어 속수무책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또 속도측정기가 정말 정확한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그렇다면 이동식 속도측정기는 어떻게 속도를 측정할까. 이동식 속도측정기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레이저 펄스를 연속해서 자동차에 발사하고 반사돼 돌아오는 레이저 빛을 측정해 속도를 계산한다. 레이저가 발사돼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빛이 측정기와 자동차 사이의 거리를 왕복하는 시간이 되므로 이 시간의 절반에 빛의 속도를 곱하게 되면 속도측정기와 자동차 사이의 거리가 측정된다. 첫 번째 레이저 펄스에 의해 측정된 거리와 두 번째 레이저 펄스에 의해 측정된 거리의 차이는 두 펄스가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 자동차가 움직인 거리가 되므로 이 거리를 두 펄스 사이의 시간간격으로 나누면 자동차의 속도가 측정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측정을 15회 이상 반복 측정해 평균값을 내어 최종 측정 속도로 표시하게 된다.
경찰청의 2002년도 통계에 의하면 1년 동안 고정식과 이동식 속도측정기로 적발한 속도 위반 단속건수는 약 1000만 건에 이른다. 과속 단속은 벌금과 벌점이 부과되기 때문에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찰청의 모든 이동식 속도측정기는 매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정확한 기준속도 발생 장치를 이용해 교정한 후 정확도에 대한 성적서를 발급받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개발한 기준속도 발생 장치는 불확도가 0.004㎞/h 이내로 대단히 정확하며, 이 장치를 이용해 교정한 이동식 속도측정기는 시속 100㎞의 속도를 측정할 때 ±0.5㎞/h 이내로 정확하다.
이동식 속도측정기는 자동차가 달려오는 전방에서뿐만 아니라 후방에서도 같은 정도의 정확도로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다만 후방에서 측정한 경우 속도에 '-'를 붙여 표시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민원도 있었다고 한다.
한 고등학교 과학교사는 측정 속도 앞에 '-' 부호가 붙어 있는 과속벌금고지서에 승복할 수 없었다. 그는 민원을 제기해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담당판사는 관련 측정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 뒤 후방에서 측정한 결과도 정확하다는 판단을 한 후 그의 패소를 결정했다. 판결에서 담당판사는 과학교사이기 때문에 과학적 측정의 정확성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 단속의 정당성을 인정한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도 바쁘게 달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속도를 지켜야 할 곳에서는 속도 위반을 단속하는 속도측정기가 없더라도 규정을 준수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여유를 지켜주는 정확한 삶의 속도측정기를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다.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