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글 : 월간 디펜스 타임즈 , 이치헌
보병전투장갑차는 탑승 보병의 안전을 보장하고 화력을 지원하면서 전차와 함께 적진을 돌파하는 본래 목적을 넘어, 현대 전장에서는 점령지에서 시가전이나 수색, 정찰 등에까지 다양한 임무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의 전장에서 급조 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 ; IED)로 인하여 많은 전투차량들이 피해를 당했고 점점 기동화, 광역화되는 현대 전장 상황에서 어느 전장으로든 신속하게 전력을 투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증강된 방호력과 항공 수송 능력이 차기 보병전투장갑차의 주요 요구 성능으로 제시되고 있다.
미군의 차기 보병전투장갑차
1) 추진 배경
미 육군이 사용중인 M2A2 브래들리(Bradley) 보병전투차는 이라크 전쟁 당시 많은 수가 지뢰나 IED로 인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고 이에 따른 탑승 인원의 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이 때문에 미 육군은 브래들리의 장갑을 보강하고 무선조종 IED를 교란하기 위한 ECM(Electronic Counter Measure) 장비를 탑재하였고, 더 나아가 단차장용 조준경 등을 추가한 M2A3 보병전투차도 등장하였으나 기본적으로 1970년대에 설계된 차체에 30여년간 반복적인 성능 개량으로 인하여 증가한 중량(M2 25t → M2A2 27.2t → M2A3 33t)과 전력 소요 때문에 이대로 계속 운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미 육군은 현대 전장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의 보병전투장갑차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미 국방부 역시 육군의 전 영역 작전에 적합하고 그동안의 전장 교훈을 반영한 보병전투장갑차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Ground Combat Vehicle(GCV)라 불리는 미 육군 차기 보병전투장갑차 계획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2010년 2월 최초 제안서가 공고되고 BAE 시스템즈 + 노스롭 그루먼 등 4개 업체 팀이 기술개발단계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2) 미 육군의 요구 사항과 한계
미 육군 당국은 GCV의 요건으로 승무원 외에 완편 분대 9명의 무장 보병이 탑승할 수 있을 것을 우선적으로 요구하였다.
이는 기존의 브래들리는 승무원 외 7명의 보병이 탑승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보병 1개 분대가 하차 전투를 수행하려면 분대원이 복수의 차량에 나눠 타고 이동해야 하며, 이렇게 되면 하차 후 분대의 빠른 즉시 편성 및 통신이 어려워져 시가전 또는 적의 공격을 받을 시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으므로 요구된 사항이었다.
그리고 이라크전에서 얻은 전장 교훈에 의거, 차체 하부를 포함한 차량의 모든 측면에 대부분 종류의 무기, 특히 IED에 대한 높은 수준의 방호력을 갖출 것과(능동 방어시스템 포함) 작전 환경 변화와 신기술에 대응한 성능 개량이 용이하도록 추가 사양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고 계열화가 가능한 차체 역시 주문하였다.
아울러 현재 브래들리 보병전투차의 주포인 25mm 기관포와 동급 이상의 주무장, C-17 수송기에 탑재할 수 있는 공중 수송 능력, 전 영역 전투에 적합하도록 차량 설계에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체계를 포함시킬 것 역시 육군의 요구 사항이었다.
하지만 미 육군의 이러한 요구 사항들은 당연히 그에 따른 대가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우선 크게 늘어나게 될 중량이 문제로 이는 장갑재의 중량에 기인한다.
보통 기갑차량 중량의 대부분은 장갑재 중량인데 GCV는 모듈형 장갑을 장비하고 미 육군의 탑승 인원 보호를 위한 방호력 요구 사항을 충족할 경우 65t으로 이는 M2A3 브래들리가 반응장갑 키트를 장비했을 때의 중량 39t보다 67% 증가한 중량이며 주력 전차인 M1A2 전차의 63t(SEPv2 기준)보다도 2톤이 무겁다.
이 중량 증가 때문에 항공 수송 능력을 C-130이 아닌 C-17 수송기에 맞추기는 했지만 기동성 및 민첩성이 떨어지게 되므로, 계획된 차량의 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중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탑승 보병을 보호하려면 세라믹 등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장갑재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신소재 장갑재는 개발 및 적용에 비용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며, 능동 방호시스템을 추가한다고 해도 이 역시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은 체계이므로 결국 장갑을 더 추가해야 한다.
그리고 9명으로 늘어난 탑승 보병때문에 브래들리에 비해 차체 길이가 길어지고 측면 추가장갑과 전자장비 등으로 폭과 높이 역시 브래들리에 비해 커진 것도 문제인데, 이라크전 당시 미 육군은 단지 차체 크기 때문에 바그다드 시내에서 브래들리 운용을 중단한 일이 있는데다 중량에 크기까지 증가하면 많은 국가의 도로나 교량에서의 운용이 어려워지므로 이는 되레 전 영역 전투에 적합해야 한다는 미 육군 당국의 요구 사항에 어긋났다.
무엇보다 GCV 개발에 있어 중대한 문제는 과연 정해진 비용과 일정을 지키면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을 완수할 수 있느냐였다.
실제로 미 육군 당국은 기술상의 문제와 비용 문제로 GCV의 여러 기능을 절충해야 헀는데 이는 기술개발단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주포를 원래 계획인 30mm에서 브래들리의 주포와 같은 25mm로 사양을 낮춘 것과 중요한 화력 중 하나인 대전차미사일을 포기한 것, 원래 장착하기로 했던 센서와 광학장비들의 사양을 낮춘 것, 전체 예정 물량의 ⅔에 대해 추가장갑키트를 포기한 것 등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했음에도 2011년 8월 승인된 GCV 평균 대당 조달 단가가 육군이 추산했던 단가보다 400만달러 비싸게 책정되었고 기준 비용으로 1,350만달러가 승인되었으나 2단계 개발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능한 대안을 계속 평가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결국 미 육군 당국은 2013년 1월 다시 요구 사항을 수정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는 방호력 목표를 낮추어 능동 방호시스템 적용을 포기한 것과 주포를 30mm로 상향하여 화력 목표를 높인 것이 포함되었다.
이렇게 개발하기로 한 GCV는 2019년부터 2028년까지 매년 최소 20억달러가 소요되는데, GCV 외에도 추진해야 할 사업들이 많은 미 육군의 현실상 이는 가용 자금에 제한을 불러오게 된다.
실제로 미 육군 기갑차량 분야는 M1A2 전차와 M2A3 보병전투차를 향후 20년간 계속 운용할 수 있도록 성능을 개량하는 사업 등 중요한 사업이 많으며 이에 지출될 예산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3) 사업 변경
결국 미 의회 예산처는 GCV 사업 취소를 전제로 4가지의 대안을 검토한 결과다.
1. 이스라엘 나메르(Namer) 장갑차 도입
2. 브래들리 성능 개량형 AMPV 개발 및 구매
3. 독일 푸마(Puma) 보병전투장갑차 도입
4. 기존 브래들리 수명 연장 및 성능 유지
나메르 장갑차는 보병 9명 탑승이 가능하고 기본적인 방호력, 특히 차체 하부 방호력이 뛰어난 편이며 도입 비용이 200억달러 정도로 GCV 사업의 예상 비용보다 90억달러가 적었다.
하지만 나메르는 기본적으로 APC로 설계된 차량이라 주무장이 50구경 중기관총 무인총탑으로 빈약하여 정작 전면전에 쓸모가 없어지고, 베이스가 메르카바 Mk.4 전차의 차체이므로 크기가 크고 중량이 60톤급으로 무거워서 도로 및 교량 주행과 항공, 철도 수송에 제약이 많은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푸마 보병전투차는 독일이 개발한 본격적인 보병전투장갑차로 전투중량 최대 43t에 30mm 기관포와 5.56mm 동축기관총, 스파이크-LR 대전차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으며 140억달러의 획득 비용에 비용 증가나 일정 지연 등 위험도도 낮다.
하지만 탑승 보병이 6명으로 브래들리보다도 적어서 푸마로 기계화보병 소대를 편제하려면 소대당 1대씩을 더 구매해야 하므로 이는 도입 비용 상승을 불러올 수 있으며 소대당 차량 대수가 늘어나므로 인원 편제 조정과 함께 전술교리를 고쳐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M2A3의 최대 전투중량인 39t보다 무거운 43t의 최대 전투중량도 그렇다.
GCV 사업을 취소하고 기존 브래들리의 수명 연장과 성능 유지로 계속 운용하는 방법은 비용은 가장 적게 들고 위험도는 가장 낮은 대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용상의 능력은 늘어나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가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브래들리 보병전투차의 포탑을 제거하고 차체 성능 개량형 AMPV를 채택하면서 GCV 대비 90억달러 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기존에 구축된 군수지원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매우 효율적이고 위험도도 낮다.
비용 대비 효과성이 가장 높아서 여러 모로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되었다.
2014년 2월 당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미 육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5 회계년도 미 국방 예산 계획에서 GCV 사업을 취소하고,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보병전투장갑차가 될 뻔 헀던 GCV는 과유불급의 교훈을 남기고 그렇게 철회되고 말았다.
아무리 의도가 좋고 세계 제일의 군사대국인 미국이라도 예산을 날리며 망한다는 교훈을 확실히 일깨워준 사례다.
2020년대 이후 한국군의 보병전투장갑차 전망
한국군 보병전투장갑차는 1985년 부터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전력화된 K200 장갑차가 최초이고 실제로 기계화보병대대에서 운용하고 있지만 차량 자체가 APC이지 본격적인 보병전투장갑차는 아니므로 K21 보병전투장갑차가 전력화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보병전투장갑차의 시대를 맞이했다.
2015년부터 육군 당국에서는 K21 이후의 기계화보병 전력 강화를 위하여 차기 방안을 꾸준히 구상하고 있다.
K200 장갑차는 최초 개발시 280마력의 D2848 엔진과 반자동 변속기를 적용하였으나 엔진 출력 부족으로 전차와 함께 기동시 어려움이 있고 반자동 변속기의 변속 방식으로 인한 조종수 숙달의 애로사항 때문에 350마력에 터보 차저를 장착한 D2848T 엔진과 자동변속기를 적용한 K200A1을 1994년부터 전력화하였다(육군 도입분은 20% 가량, 공군/해병대 도입분은 전 차량이 K200A1).
2009년부터 육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K200의 엔진과 변속기를 K200A1 사양으로 개량하는 사업으로 이는 전 차량을 대상으로 한다.
화력 강화를 위한 기관포 포탑 적용과 방호력 강화를 위한 반응장갑 장착 등이 밀리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여러 차례 회자되고 있지만 K200 장갑차의 크기와 용적, 엔진 출력 등을 고려할 때 무리한 일이며 실제로 그러한 개량이 가능했다면 K21 보병전투장갑차를 따로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K200 장갑차는 처음부터 확장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이며 기관포 포탑을 적용하게 되면 9명의 탑승 보병 중 일부를 희생하게 될 것이고, 반응장갑을 장착하게 되면 중량이 늘어나게 되어 엔진과 현수장치 등에 무리가 온다.
따라서 K200 장갑차는 K21 보병전투장갑차가 배치된 현재는 A1 사양으로의 개량만 거친 후 K21이 배치되지 않은 기계화보병부대나 지원부대의 장갑차로 계속 운용되며 K21이 배치된 부대에서는 보조 장갑차로 운용한다.
K21 보병전투차는 현궁 대전차미사일 장착, CTA(Cased Telescoped Ammunition) 주포로 교체, 비활성 반응장갑 장착, 능동 방어시스템 적용 등 성능 개량 계획이 제안되지만 몇 가지 문제 때문에 군 당국에서는 고민하고 있다.
2020년 중에 소요 제안이 예상되는 가칭 K31 보병전투장갑차는 승무원실과 탑승 보병실을 통합한 체계라는 점만 알려져 있다.
물론 CTA 주포를 이용한 무인 포탑과 경량화 장갑이 필수 사양이 될 것으로 보이며 실제 작전에 운용하기 위해서는 방호력 강화를 위한 탈착식의 반응장갑 키트를 적용해야 한다.
결어
미국이 GCV 개발추진을 중단하고 기존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장갑차의 포탑을 제거하여 병력수송에 집중한 AMPV 장갑차 선택은 향후 우리 군의 차기 장갑차 획득 사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군의 차기 보병전투장갑차로 10년 전에 획득 완료한 K21 차량을 미국의 AMPV 처럼 포탑을 제거한 병력수송형을 내놓아 K200 시리즈를 대체할 것인지 아니면 호주에 제안을 시작한 레드백 AS21 중형 보병전투차의 포탑을 제거한 신형으로 갈지 연구를 시작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또한 기존 K200 장갑차는 값싼 궤도형 장갑차를 원하는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등의 동남아국가에 수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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