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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군 핵심무기' 자주포, 첨단 기술로 무장한다 

바래미나 2019. 1. 7. 13:36

[박수찬의 軍]
'지상군 핵심무기' 자주포, 첨단 기술로 무장한다

중세 시대 전쟁의 핵심은 기사였다. 번쩍이는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말을 타고 적진을 돌격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12세기 초 등장한 대포는 기사를 전쟁터에서 밀어내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무기의 지위를 굳혔다.

대포가 전쟁에서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군인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무거운 대포를 옮겨 사격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군인들의 고민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전차 차체에 야포를 얹으면서 해결된다. 바로 자주포의 탄생이다.
육군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이후 100여년 동안 자주포는 지상군에게 필수적인 무기로 자리잡았다. 한반도에서도 남북이 생산한 수천문의 자주포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집중 배치된 채 서로를 겨누고 있다.
        

◆미국제 도입에서 독자 개발까지

6.25 전쟁 초기 122㎜곡사포와 방사포 등으로 구성된 북한군 포병에 고전했던 한국군은 정전협정 직후부터 포병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정밀가공기술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포병전력을 늘리려면 미국에서 도입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국군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자주포가 미국제 M110 230㎜ 자주포와 M107 175㎜ 자주포인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도입된 M110은 대구경 포탄이나 핵포탄을 발사하기 위해 개발됐다. 육군의 주요 화력시범에 참가해 국군의 전투력을 홍보할 정도로 위력이 막강했으나 사거리가 17㎞에 불과했고 기동력이 부족한데다 포탑에 지붕이 없어 방어력에도 문제를 드러냈다. M107은 사거리가 32㎞에 달했지만 역시 포탑이 없어 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1985년부터 1000여문이 생산된 K-55 155㎜ 자주포는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 현대전에 적합한 생존성과 기동성 등을 갖춘 우수한 무기다. 미국제 M-109A2 자주포의 한국형 버전으로 화생방 시스템과 화재 대비용 할론 소화 장비를 갖추고 있어 M-109A2보다 방어력이 우수하다. 기동성도 우수해 산악 지형이나 늪지에서도 운행에 지장이 없다. 다만 사거리가 24㎞로 다소 짧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신형 포탄을 사용해 사거리를 24~30㎞로 늘리고 정확도를 높이는 등의 보완책이 적용된 K-55A1이 운용중이다. 덕분에 한국군은 세계에서 미군 다음으로 많은 M-109 계열 자주포를 운용하는 나라가 됐다.

K-55에 만족하지 못했던 한국군은 북한에 비해 열세였던 포병전력을 일거에 역전시키고 지상분야 방위산업 시장에 진출하고자 1989년 연구에 돌입, 10년만인 1998년 K-9 자주포 개발에 성공했다.
         
K-9 자주포가 지난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육군 정기 회의 및 박람회에서 한화지상방산이 마련한 부스에 전시되어 있다. 한화 제공

1000여문이 생산돼 일선에 배치된 K-9은 사거리를 40㎞로 늘려 타격능력을 높였다. 사격통제 컴퓨터에 표적위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사격제원을 산출, 포구를 목표 방향으로 겨눈 뒤 탄약을 자동으로 이송, 장전하는 능력을 갖췄다. 덕분에 30초 이내에 포탄을 발사하거나 15초 동안 포탄 3발을 쏘는 급속사격이 가능하다. 세계 최강이라는 독일제 PzH2000 자주포와 대등한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해 인도, 터키,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 수출됐다. 자동사격통제장치 등을 개량한 K-9A1 자주포도 일선에 배치되고 있다.
        

군용 5t트럭에 105㎜ 곡사포와 자동사격통제체계를 탑재, 정확도와 기동력을 높인 K105TH 차륜형 자주곡사포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기존에 차량으로 견인하던 구형 105㎜포를 군용 5t트럭에 탑재한 K105TH는 사격 후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고 운용인원도 9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첨단 기술 적용한 신형 자주포 출현

K-9은 개발된 지 20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K-9보다 발전된 기술이 등장하고 있어 세계적 추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러시아가 개발한 2S35 152㎜ 자주포의 경우 분당 최대 16발을 발사할 수 있으며 정밀 유도포탄을 사용하면 최대 사거리가 70㎞에 이를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 첨단 자동화 기술을 적용해 사격을 앞두고 장전해야 하는 장약의 양을 자동으로 설정하며, 복수의 포탄을 발사할 때는 각 포탄의 비행궤적을 다르게 할 수 있어 다양한 표적을 타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적 포병의 사거리 밖에서 표적을 타격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술탄도미사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러시아의 2S35 자주포가 러시아군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이 미래전투체계(FCS)의 일환으로 개발했던 M1203 NLOS-C 자주포는 장전과 탄피배출, 사격제원 산출 등을 자동으로 진행, 승무원을 2명으로 줄였다. 10초마다 사격이 가능하며 포탄이 표적을 빗나가면 스스로 탄도를 수정, 다시 포격한다. 무게도 20t에 불과한데다 디젤과 배터리 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디젤엔진을 장착, 시속 90㎞로 주행할 수 있으며 가파른 산지도 올라갈 수 있다. C-130J 수송기 탑재도 가능해 미군의 신속 전개능력을 뒷받침한다. 최신형 전차에 적용되는 능동형 방어체계를 장착, 적을 미리 포착해 공격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M1203 NLOS-C는 말 그대로 ‘꿈의 자주포’였지만 비용 문제로 개발이 중단됐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된 기술은 신형 M-109A7 자주포에 적용됐다. M-109A7은 미 육군의 M2 보병전투차 차체를 활용해 기동성과 유지보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사격통제장치와 자동장전장치 등을 개량해 포격 정확성과 속도를 높였다.
         
미 육군이 도입한 M-109A7 자주포. 기존 M-109 자주포에 최신 기술을 적용, 개량을 실시한 것이다. BAE 시스템스 제공

세계적으로 전면전 위협이 낮아지면서 국지전에 투입 가능한 자주포와 같은 재래식 무기가 방위산업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첨단 기술을 활용해 기존 자주포를 개량하거나 새로운 자주포의 개발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동장전장치 성능을 높여 발사속도를 끌어올리는 한편 포신이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냉각 기술 적용이 거론된다. 포신의 내구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교체 소요를 낮춰 비용 절감을 꾀하고, 발사속도도 기존의 6~8발에서 12발 이상으로 끌어올려 적 포병을 제압하는 대(對)포병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있다. 열이나 기계적 충격 및 화재 등에 쉽게 폭발하지 않는 둔감장약 개발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레일건을 사용, 탄약 보급 소요를 낮추는 기술도 개발중이다.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엔진 소음을 낮추는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과 더불어 사격 통제체계를 첨단화해 멀리 떨어진 사격지휘소에서도 사격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있다. 이같은 기술을 종합하면 승무원이 없는 무인 자주포를 원격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인명피해를 줄이고 후속군수지원 비용을 낮추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육군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육군 제공

우리나라도 자동화와 부분적 무인화, 사거리 연장, 사격속도 향상, 승무원 감소 등을 목표로 한 신형 자주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 개발을 시도했다가 중단된 크루세이더 자주포 수준의 성능을 구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격지휘체계를 자동화해 신속한 사격을 지원하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2020년대 K-9보다 성능이 크게 향상된 신형 자주포와 관련 시스템이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