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침략 도구 [上] [下]

일제의 침략 도구 [上]

보다 강력한 소총에 대한 요구

19세기 말부터 대외 침략에 나선 일본은 선진 무기 기술 도입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제2차 대전 발발 직전에 이르러 대부분의 무기를 국산화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937년 전쟁 개시 후 중국군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일본은 곳곳을 유린하며 중국군을 격파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고전을 겪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기본 무기인 소총도 그랬습니다.

[ 중일전쟁 당시 중국 도심에서 전투를 벌이는 일본군 ]

중일전쟁 발발 당시에 일본군의 주력 소총은 1905년 제작된 볼트액션 방식의 38식 보병총이었습니다.  그럭저럭 쓸만했지만 6.5×50mm탄을 사용해서 파괴력이 부족했습니다.  제1차 대전 전에 등장한 주요 소총 중 이탈리아의 까르까노 정도를 제외한다면 당시 대부분이 7mm가 넘는 탄환을 사용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숫자상으로 불과 1mm 내외지만 파괴력은 천양지차였습니다.

[ 38식 보병총은 파괴력이 부족했습니다 ]

유효 사거리 내에서는 대인살상용으로 충분했지만 전투는 반드시 노출된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결정적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벌어졌습니다.  반면 중국은 7.92mm 구경의 마우저탄을 사용하는 Gew98, Kar98k 등을 도입해 소부대간 전투에서 우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국군은 은폐물 뒤에 숨은 일본군을 사살할 수 있었지만 일본군은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 Kar98k로 사격 훈련 중인 중국군 ]

당시 일본은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으므로 중국군이 보유한 장비보다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자존심 문제라 생각해서 새로운 총의 개발을 굳이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39년 소련 극동군과 일본 관동군 사이에서 벌어진 할힌골 전투는 일본에게 커다란 충격을 불러왔습니다.  기갑 장비도 아닌 단지 차량에 탑승해 돌격해 들어오는 소련군을 38식으로는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 할힌골 전투 당시 생포 된 일본군  포로 ] 

38식의 파괴력 부족을 절감한 일본은 새로운 제식 소총의 개발에 나섰습니다.  일본 군부가 패망 직전까지도 정신력만 강조했을 만큼 사고가 고루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이런 일선의 심각한 문제를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참패를 당하며 최소한 차량 정도는 격파할 수 있는 소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면서 개발을 서둘렀습니다.

[ 흔히 아리사카탄이라고 불리는 7.7×58mm탄

원래는 92식 중기관총용으로 개발되었습니다 ]

이렇게 탄생해 제2차 대전 종전 당시까지 아시아, 태평양 곳곳에서 일본군이 사용한 주력 소총이 바로 99식(九九式) 소총입니다.  가늠쇠, 가늠자를 개량해 명중률을 높이고 휴대가 편하도록 크기를 줄였지만, 핵심은 새로운 7.7×58mm 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92식 중기관총과 함께 개발된 7.7mm 탄이 파괴력은 좋지만 소총에서 사용하면 반동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 초기형 99식 소총은 38식 보병총과 비슷한 크기였습니다 ]

그렇다면 총의 크기를 크게 만들어야 했는데 38식도 일본인 체형에는 커다란 편이어서 이는 상당한 난제였습니다.  고심 끝에 크기는 동일하지만 화약의 양을 줄여 폭발력을 감소시킨 별도의 소총용 탄환의 사용을 결정하면서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39년에 99식이 탄생했습니다.  프레스로 대량 생산할 수 있었지만 기기가 부족해 많은 수가 절삭 가공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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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식(단소총)은 화력이 강화되었음에도 길이가 줄어 휴대가 편리했습니다 ]

최초에는 38식과 크기가 같았는데 1941년부터 대량 제작에 들어간 모델은 길이를 단축해 무게와 길이를 축소했습니다.  이를 전자와 구별해 단소총(短小銃)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99식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전쟁 말기에 물자 부족으로 품질이 저하되어서 그렇지, 제대로 만들어진 99식은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M1903, 리엔필드, 모신나강, Kar98k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일제의 침략 도구 [下]

비극적인 현대사의 한 부분

화력이 강화되었음에도 길이를 15cm 정도 줄이고 반동 제어에도 성공하자 내친 김에 개발자들은 미국의 M1이나 소련의 SVT-40처럼 반자동소총으로의 개조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경직된 사고를 가진 일본 군부답게 이런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접하고는 '반자동화를 요구하는 자는 근성이 부족하며, 이로 인해 탄환 소비가 많아지면 보급에 문제가 많다'며 개발을 막았습니다.

[ 1945년 9월 9일, 99식으로 무장하고 서울 시내를 이동 중인 일본군 ]

하지만 이것도 일왕의 하사품이라며 총신에 왕실의 상징인 국화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새겨 넣어 스스로 생산성을 떨어뜨렸던 행위에 비하면 약과라 할 수 있습니다.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며 무기의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제때 공급하기에도 벅찼음에도 문양 음각은 계속되었습니다.  일본군이 밀려나기 시작해서야 이러한 한심한 행위가 간신히 중단되었습니다.

[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를 새겨 놓았던 총신 부분 ]

99식은 불순물이 가득 찬 총열 때문에 폭발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해서 흔히 품질이 조악하다고 인식하지만 사실 그것은 편견입니다.  전쟁 말기에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철강재가 좋지 않았고 비전문 인력이 생산에 투입되어 불량품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민간용으로 판매되는 것은 맹수 사냥에 적합할 만큼 제대로 만들어진 99식은 나름대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 재료 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품질이 떨어졌던 후기형 99식 ] 

99식의 생산량은 패전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대략 350만 정 정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38식에 이어 2위의 규모인데, 짧은 양산 기간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양이어서 제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참전한 곳이면 예외 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성능도 무난해서 중국처럼 노획한 99식을 애용했던 사례도 많았습니다.

[ 기본 가늠좌를 세우면 대공 사격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

99식은 9개 조병창에서 생산되었는데, 그 중 한 곳이 부평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미군 부대가 주둔 중인 옛 부평조병창은 전쟁 말기에 99식을 비롯한 각종 총포를 만들기 위해 한반도는 물론 저 멀리 중국 내륙에서 약탈한 각종 철강재가 몰려들던 곳이었습니다.  철로, 교각, 사찰의 범종은 물론 각종 그릇이나 수저를 포함한 가재도구까지 약탈되어 이곳에서 무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종전 후 무장 해제 당하며 99식을 반납하는 서울 주둔 일본군 ]

어쩌면 이렇게 조달 된 재료로 만들어진 무기가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란 애당초 무리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허황된 신념에 매몰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의미 없는 전쟁을 중단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고통을 받았습니다.  일제의 침략 도구였던 99식에는 이처럼 우리의 피와 눈물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픈 기억인 99식은 해방 후 우리 군경이 최초로 보유한 화기이기도 했습니다.

[ 99식으로 무장하고 전선으로 이동 중인 국군의 모습 ]

미국은 노획한 99식을 .30-06 스프링필드 탄을 사용 할 수 있도록 개조해 건국 전후 군경 조직에 보급했습니다.  이후 1948년 국군이 창설되고 M1 개런드, M1 카빈이 공급되면서 퇴역했으나 전쟁이 발발하며 무기가 부족하자 다시 사용했습니다.  침략에 나선 북한군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팔로군 출신의북한군 상당수가 노획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 서울이 피탈된 후 강제 징집된 의용군
일본의 99식 소총 아니면 소련의 모신나강 소총으로 추정됩니다 ]

우리를 억압했던 일제의 총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을 침략한 이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막기 위해 우리도 사용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습니다.  전쟁 중 같은 무기로 교전을 벌이는 행위가 낯선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 전후 사정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아픔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쾌한 기억이지만 이처럼 99식은 우리 현대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총입니다.[august 의 軍史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