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 [ 上 ] 굴러들어온 호박
ugust 의 軍史世界
1976년 9월 6일, 일본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 공항에 소련 공군 소속 전투기 1대가 비상 착륙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소련은 즉각 일본 정부에 영공 침범 사실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시한 후 훈련 중 사고가 발생해서 벌어진 불가피한 상황이니 국제 관례에 따라 조종사와 기체를 조속히 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하코다테 공항에 불시착한 직후의 MiG-25 ]
하지만 조종사 벨렌코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소련을 탈출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포드 대통령이 안전한 망명지 제공을 약속한 후 정부 요원들을 보내 그를 미국으로 후송했습니다. 소련은 그의 아내와 모친으로 하여금 '결코 벨렌코가 미국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공개 기자회견을 실시하며 모든 것이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 기자 회견에 등장한 벨렌코의 가족들 ]
그럼에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소련은 궐석 재판을 벌여 벨렌코를 반역자로 낙인찍고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음으로 양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는 의지를 수시로 밝혀 이후 미국으로 건너 온 벨렌코는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간첩들의 위협으로부터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그의 망명은 소련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 변장을 하고 호위를 받아 미국에 도착한 벨렌코 ]
하지만 사실 벨렌코는 이 사건에서 미국이나 소련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사건이 전 세계에 이슈를 몰고 온 이유는 그가 몰고 온 전투기가 MiG-25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전투기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미국에게는 한마디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상황이었던 것 입니다.
[ 조종사보다 MiG-25가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
MiG-25는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서방측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설계 사상이 지금까지의 소련 전투기와 확연히 다를 만큼 외형만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짐작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고주익, 2중 수직미익 등의 구조는 당시 미국이 한창 개발 중이던 F-14, F-15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질 정도입니다.
[ 외형만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하지만 무엇보다 MiG-25가 경이로운 무기로 대접받은 이유는 엄청난 속도 때문이었습니다. 스텔스, 레이더, 항전장비 등의 성능에 따라 우열이 가름되는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전투기에게 속도는 성능의 우위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MiG-25는 2018년 현재까지 등장한 그 어떤 전투기도 근접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를 내었습니다.
[ 현재까지도 MiG-25는 가장 빠른 전투기입니다 ]
서방 감시 레이더에 포착된 MiG-25는 최고 마하 3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비행했습니다. 종종 일부러 나토 구역을 월경해 시위를 벌였는데 서방의 전투기가 출격하면 유유자적하게 따돌리고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벨렌코의 귀순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은 F-4EJ 전투기를 출격시켰지만 그는 홋카이도 상공을 이미 3번이나 선회한 상태였습니다.
[ 착륙 전에 하코다테 공항 상공을 저공비행하는 모습 ]
당시 미국에도 마하 3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한 SR-71이 있었으나 용도가 극히 제한 된 고고도 정찰기였습니다. 미국은 많은 연구를 했지만 전투기가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며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MiG-25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좌절했고 당연히 그 비밀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소문난 잔치 [ 下 ]
몰라서 신비롭게 여겼다
우연히 당대 소련의 1급 기밀을 고스란히 분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미국의 흥분은 대단했습니다. 곧바로 대규모 기술진들이 일본으로 건너 왔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MiG-25를 조사했습니다. 소련의 반응은 거칠었고 혹시 MiG-25를 파괴시키기 위한 스페츠나츠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상당 수준의 경호 태세가 가동되었습니다.
[ 착륙 후 가림 막을 설치하는 모습 ]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MiG-25는 약 2개월에 걸쳐 완전히 빨개 벗겨 샅샅이 파헤쳐진 후 소련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냉전 시대에 이렇게 망명에 이용 된 군용기의 반환도 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알아낸 기술진들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당국에 제출 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별 것 아니다. 단지 몰라서 두려워했던 것이다"였습니다.
[ 몰라서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특수 소재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기체는 단순한 강철 합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내구성이 좋았고 싸게 제작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무거웠습니다. 강력한 투만스키 R-15 엔진 덕분에 고속 비행이 가능했으나 마하 3으로 지속 비행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고 엔진의 수명도 미국제의 1/10 정도에 불과해 야전에서 운용하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 엔진은 대단히 강력했지만 수명이 극히 짧았습니다 ]
더불어 각종 전자 장비의 성능은 실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일부에 구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진공관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고고도의 극저온에서 작동할 때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보다 안정성이 좋아 일부러 장착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점들은 그동안 MiG-25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을 깨버렸습니다.
[ MiG-25 칵핏의 모습 ]
하지만 무엇보다 구조상 기동력과 선회력이 최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오로지 소련 본토를 공격하는 미국의 폭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고고도까지 빨리 치고 올라가 엄청난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만 보유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중동에서 벌어진 여러 국지전을 통해 무기력한 모습이 확실히 입증되었습니다.
[ 폭격기 요격에 특화된 전투기였습니다 ]
그동안 MiG-25의 정확한 성능을 모르던 서방에서는 단지 일시적으로 노출된 최고 속도에 놀라 그 이상으로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소련도 예상치 못한 이러한 민감한 반응이 이어지자 MiG-25를 더욱 비밀스럽게 운용했던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냉전시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사례가 비즈니스 세계에도 흔합니다.
[ 이라크 전쟁 당시 파묻어 놓은 MiG-25
한마디로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였습니다 ]
지난 2001년에 각종 매체에서 인터넷을 능가하는 엄청난 발명품이 등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수백만 달러를 선뜻 투자했고 아마존은 어떤 제품인지 그리고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지도 않고 판매 예약까지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관심을 모으면서 등장한 제품이 바로 세그웨이입니다.
[ 출시 전부터 많은 이목을 끌은 세그웨이
하지만 무성했던 소문만큼 커다란 변화를 이끈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
하지만 20여년 가까이 된 현재의 위상을 보면 그저 그런 상품일 뿐입니다. 오히려 2015년에 짝퉁 세그웨이를 만들던 중국의 나인봇에 인수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경외의 대상으로 취급받던 MiG-25처럼 단지 신비주의로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을 뿐이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충분히 사용할 만한 기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P.S. 지난 2018년 8월 주간『이코노미 조선』에 기고하였던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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