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 등장한 제트엔진(jet engine)은 적기와 싸운다는 전투기라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유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왕복엔진 성능의 한계에 묶여있던 전투기의 입장에서 제트엔진의 출현은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의 제트엔진은 과열되기 쉽고 추력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제트엔진은 높은 고도에서도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장점 하나만으로도 제트엔진은 전투기의 동력원으로 주목 받기에 충분했다.
2차 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는 적기보다 높은 고도를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알고 있었다. 지구의 중력 때문에 높은 고도에서 내려가는 속도가 낮은 고도에서 올라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마련이다.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다가 높은 고도에서 기습하는 적기를 만나면 아무리 기량이 우수한 조종사라고 해도 별다른 묘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높은 고도를 유지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비행고도가 높아지면 공기가 희박해지고 산소가 부족하여 왕복엔진의 시동이 꺼진다. 기술자들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제트엔진은 정답 그 자체였다.
냉전이 시작되고 장거리 제트폭격기가 등장하자 제트전투기도 큰 영향을 받았다. 높은 고도에서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제트폭격기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미국과 소련은 고공을 비행하는 제트폭격기를 추격할 수 있는 고성능 요격전투기를 연이어 개발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군 제트폭격기를 호위하는 제트전투기의 개발에도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50년대 개발된 제트전투기는 본래의 임무인 전투기와의 공중전이 아닌 폭격기를 격추하는데 중점을 두고 개발되었다. 전자기술이 발전하면서 진공관을 사용하는 레이더(radar)와 미사일(missile)을 전투기에 탑재하면서 덩치가 커졌고 결국 공중전을 할 수 없는 몸집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공군 수뇌부는 전투기의 상대가 적 전투기가 아닌 폭격기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실제로 공중전이 벌어지자 이러한 판단은 큰 잘못이었음이 밝혀졌다.
1950년대 미 공군의 전투기 개발개념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식한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에드가 슈미드(Edgar Schumued)이다. 에드가 슈미드는 2차 대전 최고의 제공전투기인 P-51 전투기, 6.25 전쟁 당시 최초의 제트 공중전을 주도한 F-86 전투기, 최초의 초음속 제트전투기인 F-100 전투기를 설계한 인물이다. F-100 전투기 개발 이후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의 주력사업이 우주개발로 바뀌자 에드가 슈미드는 1952년에 노스롭(Northrop) 기술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에드가 슈미드는 노스롭에서 10년간 기술고문으로 일하면서 회사가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N-102 전투기
본래 노스롭의 주력은 P-61 야간전투기, F-89 요격전투기와 같은 전투기사업이었다. 노스롭은 F-89 전투기 사업이 한창이던 1952년에 자체적으로 N-102 팽(Fang)이라는 경량 전투기 개발을 시작했다. N-102 전투기는 강력한 엔진과 경량 기체를 결합시켜 빠른 속도와 상승력을 가진 날쌘 전투기가 될 예정이었다. 창업주인 잭 노스롭(Jack Northrop)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경량 전투기의 개발을 시작하면서 최고의 전문가인 에드가 슈미드를 영입하였다. 냉전 당시 적군의 폭격기를 요격하는 임무나 아군 폭격기를 호위하는 임무에 중점을 두고 개발한 센추리 시리즈(Century series) 전투기는 대부분 크고 무거운 전투기로 실전에서의 공중전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을 읽은 노스롭의 에드가 슈미드, 록히드(Lockheed)의 켈리 존슨(Kelly Johnson)은 공중전에 적합한 경량전투기를 개발을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다. 미 공군은 두 회사의 설계를 검토하였고 결국 록히드 설계안을 F-104 전투기로 채택했다.
비록 미 공군이 N-102 전투기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노스롭 개발팀은 새로운 경량전투기 개발을 계속 진행했다. 노스롭 개발팀이 경량전투기에 집중한 이유는 기존 대형전투기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전투기에 탑재할 소형 제트엔진이었다. 엔진이 크면 당연히 전투기의 몸집도 커졌고 가격도 상승하기 마련이다.
노스롭 개발팀은 소형 엔진을 입수하여 경량전투기를 개발한다면 저렴한 가격의 전투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새로 개발하는 경량전투기의 목표시장은 NATO 국가 공군과 제3세계 공군이었다. 1950년대에 미 공군은 B-52 폭격기가 적진으로 침투할 경우 기만기(decoy)를 대량으로 투하하여 적 방공망을 교란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은 ADM-20 퀘일(Quail) 기만기에 탑재하는 J85 엔진의 개발을 개발했다. J85 엔진은 소형이지만 추력이 큰 엔진이었고 쌍발로 탑재한다면 충분하게 경량전투기에 적용할 수 있었다.
F-5 프리덤 파이터
노스롭 개발팀은 N-156이라는 명칭으로 개발을 진행하였고 미국 국방부 관계자에게 해외국가 군사원조용으로 공급할 수 있는 소형 전투기라는 점을 설득했다. 1950년대 말부터 소련이 동구권 국가에 MiG-17, MiG-19 전투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미국의 우방국가에서 보유한 F-84, F-86 전투기의 성능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를 공급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노스롭의 제안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미 국방부는 공군으로 하여금 시제기를 제작하여 평가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하여 N-156F 전투기는 개발도상국 공군에 군사원조용으로 공급하는 전투기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 미 공군은 내심 내키지 않았지만 상급 기관인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N-156F 전투기 평가는 하였으나 정식으로 구매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기 시작한 미 육군은 밀림에서 전투가 벌어질 경우 근접항공지원(close air support)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다만 미 공군이 1947년에 독립하면서 미 육군은 대부분의 항공기를 공군에 이관하였다. 그러나 당초 약속과는 달리 미 공군은 전략폭격기를 중심으로 전력을 증강하였고 육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은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미 육군은 자체적으로 지상공격기를 보유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미 육군은 1961년에 개발 중이던 노스롭 N-156F, 더글러스(Douglas) A-4 스카이호크(Skyhawk), 피아트 G.91 등 3가지 기종을 비교 평가했다. 평가 결과 노스롭 N-156F 전투기는 발군의 성능을 보여주어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미 육군이 전투기를 보유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미 공군은 케네디 정부가 출범하면서 1962년 4월에 마지못해 N-156F 전투기를 채택했다.
N-156F 전투기는 미 공군이 채택하면서 F-5A 프리덤 파이터(Freedom Fighter, 자유의 투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F-5A는 조종사 1명이 탑승하는 전투기이며, F-5B는 조종사 2명이 탑승하는 전투기 겸 전환훈련기이다. 가볍고 간단하게 개발된 F-5A/B 전투기는 레이더, 관성항법장비는 물론이고 조준기조차 생략된 경량전투기이다. 공중전 무장은 20mm 기관포 2문과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2발이 전부였다. 지상을 공격할 때는 500파운드(pound) 폭탄, 네이팜(Napalm) 폭탄, 70mm 로켓탄 등을 사용한다. 1963년 당시 F-5A 전투기의 가격은 60만 달러(dollar)에 불과했다.
F-5A/B 전투기는 우리나라와 이란을 시작으로 캐나다, 에티오피아, 그리스, 요르단, 리비아, 모로코, 네덜란드, 노르웨이,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태국, 대만, 터키, 베네수엘라, 남베트남 등에 공급되었다. 보츠와나는 캐나다 공군의 중고기를 구입하였다. 캐나다는 성능을 개량한 CF-5A/D 전투기를 생산했고, 스페인은 SF-5A/B 전투기라는 명칭으로 면허 생산했다. 미 공군은 F-5A/B 전투기를 주력기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1965년에 스코시 타이거(Skoshi Tiger)라는 명칭으로 12대의 F-5A 전투기를 베트남 전쟁에 투입하여 실전평가를 했다. 스코시 타이거 작전에 투입한 F-5A 전투기는 공중급유봉, 방탄판을 추가하여 비공식적으로 F-5C라고 불린다.
F-5A 전투기는 작전기간 중에 F-4, F-105 전투기보다 높은 출격률을 기록하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당연히 F-5A 전투기는 더운 날씨에 고장이 자주 발생하는 레이더가 없었고 기체 구조가 간단하여 정비가 까다롭지 않아 자주 출격할 수 있었다. 미 공군은 스코시 타이거 작전이 끝나자 F-5A 전투기를 남베트남 공군에 이관했다.
동맹국가 공군에 공급하려고 개발한 F-5A/B 전투기였지만 조종하기 어렵지 않고 쉽게 정비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많은 국가의 공군이 오랫동안 일전 전투기로 사용했다. 특히 NATO 국가인 캐나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터키 공군도 오랫동안 F-5A/B 전투기를 사용했다. 특히 그리스와 터키는 다른 나라에서 퇴역한 F-5A/B 기체를 도입하여 보조 전투기와 훈련기로 장기간 사용했다. F-5A/B 전투기는 1972년 6월까지 모두 847대가 생산되었고, 개량형인 F-5E/F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생산이 종료되었다.
F-5A 전투기의 초기 홍보영상 <출처: 유튜브>
특징
기체
경량 전투기로 개발된 F-5A/B 전투기는 기체 구조물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설계되었다. 주익은 좌우가 하나(one-piece)로 제작되었으며 동체 아래에 간단하게 결합된다. 조종실(cockpit)은 시계를 넓히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동체는 여러 개의 블록을 결합하여 조립되는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전투기에 흔히 사용하지 않는 저익(low wing) 방식을 채택한 F-5A/B 전투기는 A-4 스카이호크와 비슷한 개념으로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매우 얇은 주익 내부에는 연료탱크가 없으며, 모든 연료는 동체 내부에 탑재된다. 기체는 앞쪽부터 레이돔(레이더는 없다.), 전자장비실, 기관포와 탄약통, 조종실, 연료탱크, 엔진의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엔진
엔진은 동체의 가장 뒤쪽에 있다. F-84, F-86 전투기의 경우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무거운 엔진을 동체의 중간에 탑재하여 정비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F-5A/B 전투기는 작고 가벼운 J85 엔진 덕분에 동체의 뒤쪽에 엔진을 탑재하여 정비가 간편하다.
동체 내부에는 583갤런(gallon) 연료가 들어가며 주익 끝에는 50갤런 용량의 연료탱크를 장착한다. 그리고 동체와 주익 안쪽 파일론(pylon)에는 150갤런 연료탱크를 3개까지 추가로 장착할 수 있다.
무장
고정무장은 콜트(Colt) M39 20mm 기관포 2문을 기수에 장착한다. M39 기관포는 리볼버(revolver) 권총과 같이 약실이 회전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며 포신은 고정되어 있다. F-5B 복좌형은 전방석을 추가하면서 기관포를 생략하여 고정무장이 없다.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공대공 미사일은 주익 끝에 있는 전용 발사대에 탑재된다. 그리고 동체와 주익 아래에 있는 5개의 파일론에 6,200파운드까지 로켓탄, 폭탄 등을 탑재할 수 있다.
운용현황
많은 국가에서 사용된 F-5A/B 전투기는 노후화에 따라 점차 퇴역하여 일부 국가에서만 보유하고 있다. 현재 스페인(SF-5A/B), 보츠와나(CF-5A/D), 터키, 이란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성능개량
스페인과 터키 공군은 F-5A/B 전투기를 전술입문 훈련기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공군은 기체노후화에 대응하여 이스라엘 IAI, 에어버스(Airbus)와 협력하여 전자장비 성능개량, 기체보강을 실시하였다. 터키 공군도 이스라엘 IAI와 협력하여 F-5-2000이라는 명칭으로 F-5A/B 전투기의 전자장비 성능개량, 기체보강을 실시했다. 터키 공군은 부족한 기체를 보충하기 위해 네덜란드 공군이 사용한 NF-5A/B 중고기체를 구입했다.
이란 공군은 미국의 정비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족한 복좌형 훈련기를 확보하기 위해 12대의 F-5A/RF-5A 단좌형을 F-5B 복좌형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개량형과 파생형
F-5A : 최초의 양산형 전투기
RF-5A : 기수에 4대의 카메라(camera)를 탑재한 전술정찰기
F-5B : F-5A 기수 부분에 좌석을 추가한 복좌형 전투기 겸 훈련기. 기관포는 없지만 동체와 주익에 무장을 탑재할 수 있어 실전에 투입 가능하다. 때문에 많은 국가는 T-38 고등훈련기보다 F-5B 복좌형 전투기를 더 선호했다.
F-5C : 미 공군이 스코시 타이거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 F-5A의 일부를 개조한 전투기
CF-5A : 캐나다에서 면허 생산한 F-5A 기체로 일부 개량하였다.
CF-5D : 캐나다에서 면허 생산한 F-5B 복좌형
NF-5A/B : 캐나다에서 면허 생산하여 네덜란드 공군용 기체
SF-5A/B : 스페인에서 면허 생산한 기체
VF-5A/B : 베네수엘라 공군용 기체
F-5A(G), F-5B(G), RF-5A(G) : 노르웨이 공군용 기체. 로켓보조이륙장치(RATO), 어레스팅 후크(arresting hook), 얼음방지장치를 추가
X-29A : 전진익(forward swept wing) 연구를 위해 그루만(Grumman)에서 제작한 실험용 기체이다. 조종실을 포함한 전방 동체를 F-5A에서 가져다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