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악한 일본
일제의 잔학상. 731부대라고 다들 들어보셨겠죠.
거기에 대하여 몇자 적습니다.
-일제의 생체실험 : 731부대-
731부대 는 존재했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 및 생화학무기 개발을 하던 일제의 군부대입니다.
두둔의 여지가 없는 집단이지요.
독일의 아유슈비츠와 함께 파시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 부대는 히로히토 덴노의 칙령으로 하얼빈에 설립된 부대입니다.
다만 처음부터 생체실험을 하던 곳은 아니었고 원래는 식수 보급 및 방역을 담당하는 부대였습니다.
그랬던 게 1941년 이시이 시로라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가
사령관으로 부임하며 하라는 일은 안하고 광기에 어린 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렸지요.
이시이 시로는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수석졸업생으로
일찍이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세균무기가 필요함을 역설한 인물입니다.
권력욕과 명예욕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인격과는 별개로 능력이 출중하기는 한지라 군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731부대라는 괴물집단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731부대는 적국의 포로를 주로 생체실험에 사용했는데 실험체를 마루타(통나무)라 불렀습니다.
마루타는 중국인 포로가 가장 많았고 그 외에 한국의 독립운동가, 몽골인, 러시아인 등이 존재했지요.
꼭 포로만 있던 것도 아니었고 일거리를 주겠다고 속여서 민간인을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악독한 행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에게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변화를 관찰하는 건 그나마 좀 평범한 경우고,
살아있는 사람을 해부하는 것은 필수요소였으며, 그 외에는... 뭔가 고문 포르노 같아서 더 쓰지는 않겠습니다.
하여간 사람 목숨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죄다 실험해 봤습니다.
물론 일본인도 인간인 만큼 처음부터 이런 미친 짓을 달가워할 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일종의 정신교육이 동반되었지요. 처음 전입한 신병은 무조건 한 명의 수용자를 때려 죽여야 했습니다.
수용자를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신병을 공범자로 만들어 결속을 다지는 것이지요.
여기에 강력한 부대내규를 운영하여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일방적인 사상주입은 평범한 사람도 괴물로 만들어버리기 마련입니다.
731부대는 일본군 입장에서도 재앙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든 본래 임무인 급수 및 방역은 내팽개치고 생체실험과 세균병기 개발 등에만 몰두하니
식수 보급이 원활할 리가 없습니다.
당시 만주의 물 상태는 꽤나 심각해서 관동군은 썩은 물을 마시고 관련 질병에 시달렸지요.
심지어 실험한답시고 중국인 마을에 세균전을 자행하는 일도 있었는데
지역 주민은 물론 그 지역에 주둔하던 일본군도 휘말렸습니다.
731부대는 생화학무기에 대한 보호수단 개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거든요.
이런 막장집단인 만큼 패전 후 전범으로 처리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이시이를 포함한 부대원들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군에게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죄를 묵인 받았다는 설이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731부대의 핵심인물들은 일본 녹십자사를 세워
한국전쟁 중 미군에게 혈장을 팔며 잘 먹고 잘 살았지요(인수와 합병을 반복하며 현재는 사라진 기업입니다).
이 때문에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의학 발전에 공헌했다는 개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워낙 무식하게 실험을 한데다 서구권에서는 이미 동물실험으로 얻은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여
의학적으로는 별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지요.
백신이나 치료제 연구가 전무하기도 했고요.
더군다나 소련이 8월 폭풍작전으로 만주 일대를 점령할 때
일부 스텝들이 붙잡혔는데 여기서 생체실험 정보가 누설됩니다.
냉전 때 공산진영은 자유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이 정보를 써먹었지요.
미국은 또 이거 막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여하튼 종전 이후 731 부대에 대한 일은 소문으로만 맴돌았지요.
731부대 문제가 공론화 된 것은
일본공산당원이자 추리소설가인 모리무라 세이이치 가
<악마의 포식>이라는 책을 발표하고 난 1980년대 이후입니다.
그는 우연히 부대원 출신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가 파고 파다보니
워낙 막장이라 본격적으로 조사한 뒤 책을 썼다고 하지요.
처음에는 작가의 소속이 소속인지라
말도 안 되는 좌파의 음모라고 일본 우익들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사실 이 작품 자체는 과장된 면이 다수 존재하기는 합니다.
731부대와는 상관없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기도 했지요.
그런데 작품이 과장된 것과는 별개로 731부대의 악행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중국이 하얼빈 일대를 발굴하며 관련 자료를 열성적으로 모으고 있지요.
2009년 부터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이 자료 및 731부대 주둔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 으로 등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합니다.
아우슈비츠처럼 고발의 용도로 사용하려는 것이지요. 미국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만큼 반가운 소식입니다.
한편 만악의 근원인 이시이 시로는 위에서 언급한 일본 녹십자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부대원들에게 따돌림 당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결국 의학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고향에서 불법사업을 하다가 식도암으로 비참하게 사망....
이라고 얼마 전까지 알고 있었습니다만 2014년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교토대학 의학부 도서관에서 발견된 1960년의 한 박사학위 논문에
지도교수로 이시이 시로의 이름이 실려 있다는 것이지요.
이게 사실이라면 죽기 직전까지 자국에서 의학계 원로로 대접받고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거참......
ps.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본인 중에서도 이런 미치광이짓을 조금이나마 막아보고자 한 인물이 있습니다.
히로히토 덴노의 막내 동생이자 현 아키히토 덴노의 숙부인 다카히토 친왕 입니다.
731부대에 전출된 그는 이시이 시로와 같은 자들의 행각에 충격을 받고 수용자들을 조금이나마 살리고자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외부 실험을 할 거라고 뻥을 친 후 수백 명의 수용자들을 빼돌렸지요.
수용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하고,
"오늘 실험은 귀관들이 중립국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라고 말한 뒤 석방했다고 합니다.
부대내규에 따르면 당연히 사형이지만 아무래도 덴노가문 소속이다 보니 뭐 강제전출 외에 별 일은 없었습니다.
여담으로 다카히토 친왕은 도쿄대학에서 고대 오리엔트사를 연구한 고고학자이기도 한데,
학자의 입장에서 진무 덴노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진무 덴노는 덴노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신화적 인물로 다카히토의 견해처럼 실제 인물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애초에 국가라는 게 존재하기도 전인 신석기 시대에 왕이 있을 리가...쯧쯧~
여하튼 이 때문에 우익들이 그를 빨갱이 왕자라 부르며 호적에서 파내라고 난리법석을 떤 적도 있습니다.
다행이 별 일은 없었고 다카히토 친왕은 현재 102세로 장수하고 있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지만 그래도 혹시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것같아서
몇자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접습니다.
(컴과 작가표시가 없는 글로 웹에서 발췌하여 재 배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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