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편백정유(히노키)

전통 향 연구·복원 28년간 매진

바래미나 2014. 8. 21. 22:49

불가의 전통 향, 현대인에 필요.. 화 다스리고 몸과 마음 청량하게"능혜스님 '문향, 향기 속으로' 출간하고 전시회
전통 향 연구·복원 28년간 매진
"나쁜 인공 향은 심신을 흩어지게 해 좋은 향 제조 위해 일주일 굶은 적도"
한국일보 | 권대익기자 | 입력 2013.09.11 21:27

 

"향을 맡으면 수승화강(水昇火降), 즉 차가운 물의 기운이 올라가고 뜨거운 불의 기운이 몸 아래로 내려가면서 머리가 맑아져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요. 그래서 예부터 불가에서는 향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한국 불교에서 비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전통향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능혜(51)스님은 국내 유일의 전통향 전문 선승이다.

능혜스님은 최근 국내 최초로 전통향을 연구하고 복원한 이야기를 담은 <문향(聞香), 향기 속으로>(차와문화 발행)를 펴냈다. 때맞춰 침향ㆍ백단ㆍ자단 등 다양한 전통향 제품과 한국ㆍ중국ㆍ일본 향로 100여 점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9월 27~28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10월 1~6일 서울 불일갤러리, 10월 9~12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10월 16~20일 제주 세심재갤러리에서 연다.

↑ 능혜 스님은 "향은 가까이서 피우는 초와 달리 2~3m 떨어져 피우는 것이 좋으며 무릎과 가슴 높이에 향로를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와문화 제공

능혜스님이 향 제작과 보급에 나서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고향 예천에서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을 때 역한 냄새가 나는 인공 향을 맡고 쓰러질 뻔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님은 몸에 좋은 전통향을 복원하겠다는 발원을 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국 다롄의 향료 공장에서 만든 인공향료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천연향은 거의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고교 시절 해인사 원당암 혜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해인사, 통도사, 수덕사, 백양사 등 전국 선원에서 30안거를 지내면서 틈틈이 <방약합편>, <본초강목>, <동의보감> 등 한의학 서적을 탐독했다.

하지만 전통향 제조법은 우연한 기회에 익히게 됐다. "1985년 봉정사 지조암에서 안거를 할 때 한 선배 스님이 '송광사 선원에서 해봉 스님을 모시면서 배운 것인데 수행하면서 틈틈이 만들어 쓰면 매우 요긴할 것'이라며 전통향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통향 만들기에 나섰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향 재료를 잘못 구입해 400만원어치를 모두 버린 적도 있었다. 향의 효능을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 일주일씩 굶어 신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 뒤 향을 피워 냄새를 구분하고 몸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스님은 "제대로 만들어진 향은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했고, 하기(下氣ㆍ솟구쳤던 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음)가 되며 피로가 풀렸다. 그렇지 못한 향들은 몸과 마음을 흩어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고생 끝에 마침내 스님만의 전통향을 만드는 향방(香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1993년 한 불자에게서 1,000만원을 기부 받아 경북 성주군 도성리에 전통향 제조 공장인 '취운향당'을 세우고 20년째 전통향 제조에 매진하고 있다. 50여 가지 천연 향약재를 조합해 선향(線香)과 가루향, 뿔향(탑향), 향낭 등 16종의 향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전통향 판매 수익금의 대부분은 불교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능혜스님은 오염된 환경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향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천연 재료로 만든 전통향은 오염된 공기를 정화해 폐 기능 강화에 도움을 주고, 화를 많이 내는 이에게 머리로 치솟는 열기를 내려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좋은 전통향은 먹어도 해롭지 않다고 한다.

스님에 따르면 최고의 향재료는 단연 침향이다. 침향은 팥꽃나무과 상록교목에서 나온 수지의 일종인 묽은 에탄올 엑스로 지구에는 20여 종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 망운산 산당나무에서 침향을 채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19대 눌지왕 때 양나라에서 온 묵호자가 향을 이용해 공주의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스님은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면벽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향도(香道)의 길도 매번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며 "전통향이 우리나라 전역에 구름처럼 고루고루 퍼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능혜스님은 "향은 가까이서 피우는 초와 달리 2~3m 떨어져 피우는 것이 좋으며 무릎과 가슴 높이에 향로를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취운향당에서 선향을 선별하고 있는 능혜스님의 모습. 차와문화 제공

권대익기자 d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