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주 III. 프랑스에서 개발한 전투기로 세계 20여 개국에서 사용되었다 |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다는 긴박한 뉴스가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둘러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향해서 먼저 주먹을 날렸는데, 이들 국가들은 인구가 이스라엘의 15배에 이르렀고 겉으로 드러난 군비 또한 약 5배 이상의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아랍 측의 승리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스라엘의 경악할 만한 대승이었다.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라주 3의 기습UN의 결의안을 양측이 수락하며 6일 만에 정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형식상으로 승자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아랍 국가들의 부인할 수 없는 굴욕적인 항복이었다. 아랍 측은 무려 20배 가까운 군사적 손실을 보았고 시나이(Sinai) 반도를 비롯한 상당 지역을 빼앗겼는데, 이때 이스라엘이 차지한 점령지는 기존 영토의 3배에 이를 정도였다. 바로 6일 전쟁이라 많이 부르는 제3차 중동전의 결과였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된 이유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공군(이스라엘은 통합군이므로 엄밀히 말해 국방군 항공대가 맞는 표현이다)의 활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불과 개전 3시간 만에 3배가 넘는 아랍 제국(諸國, 여러 나라)의 공군력을 순식간 무력화시키면서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고, 덕분에 이스라엘 지상군은 전쟁 내내 하늘로부터 든든한 엄호를 받으며 일방적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개전과 동시에 아랍 측 공군기지를 급습하여 400여 대의 항공기를 순식간에 제거하였다. 당시 양측이 보유한 전투기의 성능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으므로 이 같은 이스라엘 군의 완벽한 기습은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가 사용하였던 전투기는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향방을 갈랐던 놀라운 기습의 주인공은 프랑스 항공 산업의 자존심인 미라주(Mirage) III다.
13개의 킬마크가 그려진 이스라엘 공군의 미라주 III. <출처: (cc) Oren Rozen at Wikimedia.org> |
미라주 III의 고정 무장인 DEFA 30mm 기관포. 6일 전쟁 당시 주기된 적기를 2~3방에 격파하였을 만큼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였다 <출처: (cc) Rama at wikimedia.org> | |
굴욕에서 얻은 교훈제2차 세계대전은 프랑스에게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세계사를 주도하던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을 받고 불과 6주 만에 항복 한 후 4년이 넘게 지배를 받았던 사실은 더 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프랑스는 거대한 전쟁의 발발을 저지할 수 있었던 능력과 기회가 충분하였던 나라였다. 1940년 독일의 침략이 개시되었을 때 압도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군은 독일보다 육군과 해군 전력이 앞서고 있었다.
다쏘 설립자인 마르셀 다쏘(Marcel Dassault, 1892~1986). | | 그런데 당시에 연합국보다 독일이 앞서던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공군력이었다. 수적으로는 연합군이 근소하나마 앞섰지만 독일이 보유한 전투기는 성능에서 연합국을 압도하였다. 영국은 그나마 독일 전투기를 맞상대 할 수 있던 스핏파이어(Spitfire)를 본토 방어를 대비하여 파견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D. 520 같이 뛰어난 전투기가 있었지만 1939년 9월 선전포고 이후에나 양산에 돌입하여 절대 수량이 부족하였다. 초기에 연합군은 제공권을 박탈당하였고 결국 패하였다.
이런 아픔을 경험한 프랑스는 종전 직후부터 강력한 공군의 건설에 나섰는데, 이에 앞장섰던 이가 전투기 엔지니어였던 ‘마르셀 블로흐(Marcel Bloch)’였다. 그는 악명 높은 부켄발트(Buchenwald)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한 인물이어서 누구보다 강력한 프랑스군의 재건을 열망하였다. 그는 친형 폴(Paul Bloch)이 레지스탕스 운동 당시에 사용하던 가명인 공격이라는 의미의 ‘다쏘(Dassault)’로 성을 바꾸고 회사 이름도 변경하였다.
시대에 뒤쳐진 전투기는 숫자가 많아도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경험을 톡톡히 하였던 다쏘는 제2차 대전 이후 고속의 제트기가 하늘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흐름을 정확히 꿰뚫었다. 1949년 다쏘 사는 프랑스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M.D.450 우라강(Ouragan) 제작에 성공하였다. 당시로는 적은 수량이라 할 수 있는 약 300여기가 생산되었지만 이렇게 시작한 기술 축적을 바탕으로 다쏘 사는 쉬지 않고 차세대의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착수하였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모양, 델타익1950년대 말까지 전투기 성능의 제일 척도는 속도였다. 초보적인 공대공 미사일이 등장하였지만 성능이 아직 미흡하였고 기관포 사거리 내에서의 대부분의 교전이 이루어졌다. 선회력, 상승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대보다 빠르다는 것은 승리의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전투기 개발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고 초음속을 돌파하자 목표는 곧바로 마하 2이상으로 상향되었다.
박물관에 전시 된 미라주 III A의 1번 실험기의 모습. 특징적인 델타익은 이후 다쏘의 상징이 되었다. <출처: (cc) Pline at Wikimedia.org> |
미라주 III C형을 테스트하는 시험 조종사 <출처: 프랑스 공군> | |
그런데 강력한 제트 엔진만으로 속도를 무조건 향상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빠른 속도에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기체 구조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당연히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때 델타익(Delta Wing)도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미국의 F-102, 소련의 MiG-21, 스웨덴의 J35가 대표적이었는데, 다쏘 사의 미라주 III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배경으로 탄생한 대표적 델타익기였다.
수평 미익이 없는 테일리스 델타(Tailless Delta)익을 채택하여 넓은 주익으로 인한 낮은 익면하중 덕분에 뛰어난 기동성 확보에 성공하였다. 미라주 시리즈의 특징인 델타익은 현재 최신예기인 라팔(Rafale)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이후 다쏘 사의 상징이 되었다. 미라주 III는 실험기인 I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보다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고 기체를 확장한 II를 거쳐 마침내 1956년 11월 SEPR 로켓엔진을 장착한 III 원형기가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1958년 미라주 III A가 유럽에서 최초로 마하 2를 돌파하여 개발 목표를 달성하였고 이후 보다 추력이 향상된 Atar 09B 터보제트 엔진과 자동 조준이 가능한 화기관제용 레이더를 장착한 미라주 III C가 본격 양산되면서 1961년 7월부터 프랑스군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냉전이 본격화 되던 시기에 등장한 미라주 III은 미국제와 소련제 무기 외에 다른 선택을 원하였던 많은 나라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의 미라주 III. 라이선스 생산한 기종이다. |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라주 III. <출처: © Francisco Infante> | |
세계 20여 개국에서 사용미라주 III는 그 명성을 전 세계에 널리 입증한 주요 사용자인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20여 개국에 공급되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벨기에에서 라이선스 생산되기도 하였다. 총 1,422대가 생산된 미라주 III은 다쏘 사를 세계적인 전투기 제조업체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었다. 이처럼 널리 퍼진 미라주 III는 수 차례의 중동전을 비롯하여 포클랜드 전쟁에서 소련제 전투기는 물론 서방권인 미국제, 영국제 전투기와도 교전을 벌였다.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생산이 이루어지다 보니 미라주 III은 파생형이 많은 기종으로 꼽히기도 한다. 또한 후속기인 미라주 V는 물론 F-16과 더불어 경전투기 시장을 석권한 미라주 2000도 미라주 III을 기반으로 탄생한 기종들이다. 물론 초기의 F-15A와 현재 사용 중인 F-15K를 동급 기종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성능상의 차이는 엄청나지만 후속 기종들의 기본 구조는 미라주 III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파생형과 후속 기종 중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를 꼽으라면 이스라엘의 네셔(Nesher)와 크피르(Kfir)를 들 수 있다. 국제 환경이 바뀌면서 프랑스가 미라주 V를 금수조치하자 이스라엘이 데드카피하면서 탄생한 이들 기종은 실전에도 투입 되어 전공을 세웠고 대외 수출까지도 이루어진 특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파생형도 많고 후속기의 기반도 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미라주 III이 전투기 역사에 남긴 발자국은 크다.
카나드와 강력한 J-79를 장착한 이스라엘의 크피르. 미라주 III 관련 기종 중 최강으로 평가 된다.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
스위스가 라이선스 제작하여 사용하였던 미라주 III <출처 (cc) Rama at Wikimedia.org> | |
영원히 기록 될 명성파키스탄과 아르헨티나에서 일부 사용 중이지만 이제 미라주 III은 하늘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기에는 너무 오래 된 구닥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미라주 III은 탄생 당시에 제2세대 전투기 시장을 삼분 하였던 미국의 F-104보다는 더 오랫동안 하늘에서 활약하였고 소련의 MiG-21에 비해서 성능이 더 좋은 전투기라는 영광스러운 훈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자주국방에 대한 개발자의 신념과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영광이었을 것이다.
제원(E형 기준) 전장 15.03m / 전폭 8.22m / 전고 4.50m / 최대이륙중량 13,700kg / 최대속도 마하 2.2 / 항속거리 4,000km / 작전고도 17,000m / 무장 30mm DEFA552 기관포 2문, 4,000kg의 각종 폭장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