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도시 Tampa, FL
2008년 8월, 저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템파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 교환 학생 프로그램 덕분이었지요. 사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잠시 살게 되어 국제 고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울고 불며 영어를 배워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쌓았다 생각했지만, 막상 한국에 와서 사람들이 “그래서 영어를 어디서 배우셨는데요?” 하니 “중국이요.”하는 나의 대답이 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왠지 모를 그 열등감은 꼭 미국에 가서 공부한 경험을 쌓으리라 하는 다짐으로 바뀌었고, 저는 교환 학교의 리스트 중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미국에 소재한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덕에 고른 University of South Florida (USF)는 제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대학입니다. 근 1년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여러 멋진 도시들로 여행을 떠났지만 아무래도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여행 이야기 보다는 교환 학생으로서 대학 기숙사에 머물며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했던 저의 생활 이야기가 조금 더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EATHER
제가 살았던 플로리다의 템파는 미국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제가 도착했던 8월은 찌는 듯한 더위의 한 중간이었습니다. 살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햇볕 말고도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아침 10시 쯤만 되면 내리는 폭우. 저는 그렇게 쏟아져 내리는 비를 본 적이 없습니다. 폭포수가 흐르는 듯 강하게 쏟아지는 그 빗줄기들은 2시간동안 퍼붓다가 그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타는 태양만을 남깁니다. 아마도 아침의 그 비가 더위를 조금 가시게 하는 듯 한데 그것도 잠시, 점심 때가 되면 비가 왔던 흔적조차 말끔히 사라지고 태양은 다시 빛납니다. 물론, 여름엔 죽을 맛이었지만 그 후에 찾아온 플로리다의 겨울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을 만큼 포근했습니다. 11월엔 한 한달정도 쌀쌀하더니 12월과 1월은 봄같이 따뜻하기만 해서 반팔을 입고 교정을 거닐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포근했던 플로리다의 겨울을 사랑했습니다.
SHOPPING
미국은 쇼핑의 천국이라는 말만 믿고 날아간 그곳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옷들이 많았지만 그 다양성은 통통족에게만 관대할 뿐이었습니다! 평균 몸무게나 키가 달라서 그런지 조금 마른 체격인 저는 미국에서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없었지요.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사이즈가 제일 작은 옷들은 저에게 잘 맞았는데, 문제는 이 제일 작은 사이즈의 옷들이 굉장히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수많은 아울렛(Outlet)들은 정말 쇼핑의 천국이라 할만 했습니다. 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아울렛을 가 보았지만 유럽 브랜드라 하더라도 미국 아울렛에서 훨씬 싸게 판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역시! 미국의 아울렛들은 정말 제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주었지요. 훈훈한 가격의 아울렛 상품들 중에서 제게 맞는 사이즈의 옷들이 적었던 관계로 저는 정말 슬펐지만 많고 많은 아울렛들을 뒤쳐 찾아낸 보석같은 옷들은 아직 옷장에서 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답니다.
SPORTS
저는 워낙에 운동을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은 거의 5:5인데, 제가 본 미국인들은 거의 모두가 운동을 사랑하고 즐깁니다. 학교들끼리 대항하는 풋볼 경기의 경기장엔 사람들로 가득차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다 함께 응원을 합니다. 제가 여대를 다녀서 그런지 이렇다 할 체육 대회나 스포츠를 통한 대항전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스포츠로 하나되는 미국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학교 내의 체육관도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물론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말이지요. 한국의 대학들과는 달리 매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학교를 다니는 미국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나 아주머니들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 분들도 스포츠 사랑에 있어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WORK
화폐의 단위가 비교적 큰 한국의 원(\)과 그 단위가 비교적 작은 미국의 달러($) 때문에 저는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한참동안 돈을 물쓰듯 썼습니다. 만원이 넘는 한 끼의 식사는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10의 한끼 식사는 별로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마도 살면서 가장 흥청망청 돈을 썼던 기간이 아닌가 싶어요. 통장에 돈이 비어갈 때 쯤에야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는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학교 내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무실, 식당, 도서관 등 여러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질 않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차에 전봇대에 붙어있는 한국어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쇼핑몰 내에 소재한 옷 가게의 구인광고였습니다. 바로 연락을 드렸고 한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옷가게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지요. 그 옷집은 꽤나 컸는데 주로 흑인들이 선호하는 힙합 스타일의 옷을 판매하는 가게였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손님들은 모두 흑인이었는데, 주위에 흑인 친구가 없던 저는 그들의 발음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발음이나 강세에 익숙해지다 보니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 경험이 다양한 영어를 알아듣게 되는 데 일조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이 경험은 후에 저의 교육 실습 수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CLASS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좋은 수업을 많이 들었지만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 중 하나는 바로 살사(Salsa) 수업입니다. 플로리다 지역이 살사의 고장이라고 들은 저는 이 때 아니면 언제 배워보겠나 싶어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살사 수업을 신청했는데, 결국 1년에 한번 있는 축제의 댄스 경연대회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살사 수업의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인데요,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긴장되었지만 이것 역시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제 몸이 너무 뻣뻣해서 잘 추지는 못했지만 아주 기억에 남는 즐거운 추억입니다.
또 제게 정말 가치있었던 수업은 바로 실습 수업입니다. 제 전공이 영어 교육이라서 교육 실습 수업을 하나 신청해 보았는데, 배정 받은 고등학교에 처음 도착한 날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는 백인 학생이 거의 없고 흑인이나 미국으로 이민 온 다른 민족의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은 마치 국제학교 시절을 연상시켜주었지만 그 교육환경은 너무나 천차만별이라 저는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지요. 지각이나 결석은 기본이요, 수업 시간에 집중도도 매우 떨어졌고 장난도 심한 아이들은 실로 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니! 하지만 말썽꾸러기들 중에서도 저를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들이 있었고 제게 힘이 되어준 아이들 덕분에 저는 무사히 실습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익숙해진 흑인 영어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지요.
이 밖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과 비교되게 텅 비었던 크리스마스의 한산한 거리, 한국엔 없지만 너무 맛있었던 까만색 자두, 겨울 방학의 텅 빈 캠퍼스, 기름진 학생 식당의 음식들, 한국에선 너무 비싼 블랙 베리, 에메랄드 색 바다, 고운 모래 사장… 잊지 못할 추억들이 많습니다. 후에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한 번 가고싶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플로리다 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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