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관련-교육도-

겁없는 쉰세대, 컴퓨터 조립성공기

바래미나 2010. 9. 10. 00:13
 

 

겁없는 쉰세대, 컴퓨터 조립성공기



▲ ① 문제의 컴퓨터... 대개 사단은 이런 데서 출발한다. 바이러스 검사해보니 수백 수천 가지의 악성코드와 바이러스가 내 컴퓨터에서 자라고 있다든지, 쓸데없는 팝업창이 떠서 지워지지도 않는다든지.
ⓒ 이덕은


▲ 구닥다리 하드들 옛날 컴퓨터에서 떼어낸 하드에는 비록 DOS 프로그램에 기록이 남아 있어 계속 붙여 놓았었다고는 하지만 560MB의 하드도 있다.
ⓒ 이덕은

요사이 'IT 제품'이라는 것이 워낙 '라이프사이클'이 빨라 잠시라도 토닥거려 주지 않으면 금방 구닥다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놈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다. 막상 돈을 내야 할 부모는 바로 얼마 전에 거금을 들여 사준 것 같은데 '거 고쳐 쓰면 안 되나' '저 녀석이 쓸데없이 컴퓨터 사자나'며 애써 못들은 체 하자니 맘이 좋지 못하다.

아들놈 사주려니 돈이 많이 들어(그래도 예전에 비하면야 양반이지만) 뜨악했지만, 내가 사고치고 나서 다시 하나 빨리 장만하지 않으면 답답한 게 바로 컴퓨터이다.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보니 엄청나게 많은 수의 파일이 감염되어 있다거나, 갑자기 뭐가 잘못되었다고 경고창이 끝도 없이 뜨거나,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버리는 때가 있다.

그래, 차라리 새로 사자, 직접 조립해보자



▲ ② 부품부터 구입 화려하고 과대포장된 부품들이 쉰세대와 잘 맞지 않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가족 눈에 띄면 엄청난 돈을 들여 사고치는 것 아닌지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시장에 직접 나가 '꺼멍 비닐봉다리'에 알맹이만 넣어오든지 직장으로 택배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 이덕은


그래서 고쳐보겠다고 짧은 지식으로 운영체계도 덮어씌워보고 단종된 램도 힘들게 구해서 끼워보지만 영 나아지는 게 없다. 이런 때 나이든 사람의 사고 흐름은 매우 간단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몸이니 어찌 치료받고도 옛날처럼 몸을 가누겠나?'

의외로 체념이 빠르고 개비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져 컴퓨터를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아드님이 나서면 의외로 빨리 수긍할 가능성이 높다.

고쳐본다고 이미 진흙탕에 한발을 들여놓아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없게 된 컴퓨터는 책상 위에 애물단지처럼 흉물스레 놓여있다. 속을 들여다보니 저사양의 부속들과 먼지 속에 앵앵거리며 힘겹게 돌아가는 쿨러가 더욱 한심하다.

이쯤 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새 걸 사거나 고쳐 쓰거나.

새 걸 사자니 아들한테 말했던 것도 있고 멀쩡한 컴퓨터를 망가뜨려 놓은 것 같아 아깝고, 좀 별난 경우이긴 하지만 부품을 사서 업그레이드하자니 영 자신이 없다.

며칠 동안 버벅대는 컴퓨터로 조립 사이트와 검색 사이트를 돌아다녀보니, 요사이 부품들이 좋아져도 많이 좋아졌다. 웬만한 사무용으로 쓰려면 옛날처럼 따로 그래픽·비디오·랜 등의 각종 카드를 꽂지 않아도 메인보드에 이 기능들을 같이 탑재하고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깝데기' 혹은 맘에 드는 이쁜 케이스를 하나 사서 자그마한 메인보드에 CPU와 메모리를 처억 꽂고 기존의 하드·시디라이터·파워만 갖다 붙이면 아담한 PC가 만들어지니 세상 참 편해졌다.

꽂고 붙이면 PC... 세상 참 편해졌다

▲ 메인보드 요새 나오는 메인보드들은 그래픽·비디오·랜 기능을 탑재하고 있어 웬만한 작업에는 따로 그러한 카드들을 달 필요가 없으니 나처럼 겁없는 쉰세대도 조립에 도전해볼 만 하다.
ⓒ 이덕은

일단 부품을 사다가 최소한도로 업그레이드 시킨다 해도, 만화 주인공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과대포장 박스 부품들을 집으로 배송한다면 기름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다.

또 호들갑 떨며 배송되어 온 부품들로 겨우 맞추어 굴러간다고 해도 "쪼잔하게 그런 걸 직접 만들고 있어" 라는 소리를 듣기 쉽고, 돌아가지도 않는다면 두고두고 잔소리들을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암말도 하진 않고 있었지만 니 아부지…" "거 봐…" "저렇게 망가뜨리다니 돈도 많은가 봐" 등등. 그래서 택배는 아내 눈을 피해 직장으로 배송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떼어낸 하드와 메모리를 보니 나의 개업 역사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당시에는 괜찮은 수준으로 컴퓨터를 만들었건만 겨우 기가대에 진입한 하드와 메모리…. 참 역사적인 하드가 하나 더 나왔다. DOS 상에서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기록이 남아있어 붙여 두었던 512메가 하드. CF메모리 2기가도 몇만원이면 사는 판에 512메가 하드라니?

"웬만하면 다 조립할 수 있지요" 하던 매장 직원이 슬쩍 겁을 준다. "그래도 USB 커넥터 연결할 땐 + - 잘 보셔야지 기판 나갑니다."

왜 부팅이 안 되지? 꿈에서도 전전긍긍



▲ ③ 조립 복잡해 보이지만 설명서대로 상식을 따라가면 이렇게 된다. 전원을 넣자 '쌔앵'하고 돌아가는 쿨러. 이제부터 모니터에 뜨기 시작하는 명령들은 쉰세대를 전혀 고려치 않는다. 따라서 약간의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
ⓒ 이덕은


메인보드는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AMD 보드로, CPU도 그에 맞추어 AMD 64-X2 애슬런으로, 메모리는 삼성 1기가로 게다가 이쁘장한 앰프 비스무레한 케이스.


메인보드에 CPU를 붙이고 같이 포장된 쿨러를 달고 메모리를 꽂으니 다 완성된 것 같은 뿌듯함에 흐뭇하다. 케이스에서 나온 파워 LED 단자, 파워 스위치, USB 커넥터, 오디오 단자를 설명서와 인터넷 조립기를 참조하며 꽂아 넣는다.


파워서플라이 선을 이으려니 구형이라 신형 메인보드에 맞지 않는다. 조급증에 동네 컴퓨터 상으로 뛰어가서 하나 구입해서 단다. 하드? 끼우고, 시디? 꽂고, '요 똥글뱅이에 선 두 개 나와 있는 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한참 들여다 보니 작은 스피커이다. 또 끼우고.

자아 스위치를 켜니 '…detected', '…detected', '…F12', '…Del',  '이노무 글씨는 왜 이리 빨리 지나가?' 물어물어 부팅순서를 CD, HDD(하드디스크) 순으로 잡고 윈도우 XP 시디를 넣고 프로그램을 깐다.


파란 바탕에 나온 메뉴 1에서 8중에 1번을 찍고 '그래(yes)' 키를 누른다. 뭐라 뭐라 나오더니 엔터를 누르랜다. '그래' 누른다. 언더바 같은 커서가 깜박이더니 'boot failure' 어쩌구, 여기까지 와서 더 이상 진전이 되질 않는데 아무리 과정을 반복해도 계속 'boot failure'까지 가서 더는 진전이 없다.

끼우고 꽂고 깔고... 컴 조립, 겁낼 것 없네



▲ ④ 케이스에 담기 기왕 만드는 거 아이들 취향처럼 요란뻑쩍지근한 케이스를 고르지 말고 이처럼 앰프 비스꾸리한 케이스에 담는 것도 볼품 있다. 어디까지나 취향이니까. 메인보드가 여기에 들어가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 이덕은


꿈속에서도 갖가지 조합의 부팅방법이 왔다갔다한다. 나중에 고수에게 물어보니 '눌러라'할 때 '재빨리' 눌러야 한단다. 이래저래 컴퓨터에는 '어르신'을 위한 배려는 안 되어 있는가 보다. 눈을 크게 뜨고 '눌러라'를 조마조마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재빨리 누르니 1·2·3·4 주르륵 메뉴가 흘러내리며 어떤 것을 원하는가 묻는다. 1번 좋다 '1번' '그래' 엔터. 꾹.


셋업 프로그램을 누가 만들었는지 고약스럽게도 만들었다. 이렇게 '입문자 수?(?) 테스트'를 거치고 나니 컴퓨터도 이제서야 나를 사람으로 대접해준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넣으라면 넣고, 마법사가 나오면 그대로 하고, 몇 가지 자잘한 문제는 상식적으로 이거 눌렀다 저거 눌렀다 하면 대충 해결이 된다.

믿어지지 않는다구? 그런데 컴퓨터 도사도 오랜만에 컴퓨터 조립하면 옛날 기억 더듬느라고 좀 헤맨다. 하드웨어적으로 합선시키거나 부러뜨리지만 않으면 컴퓨터는 원상복구되니 너무 겁내지 말고 이쁜 컴퓨터 하나 만들어 보길.

그러는 '내'가 몇 살이냐구? '만으로 쉰다섯'. '쉰 세대'지.



▲ ⑤ 업그레이드된 컴퓨터 자 어떤가요? 흉물스럽게 구석에 처박혀 있던 컴퓨터가 마치 앰프처럼 파란불을 흘리며 책장에 들어가 있고 중고 LCD 모니터는 환해 보입니다. 차 한 잔 하고 싶습니까?
ⓒ 이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