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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페이퍼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세계 정상으로 올라선 이유

바래미나 2010. 3. 1. 22:16

[SC 페이퍼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세계 정상으로 올라선 이유

스포츠조선 | 입력 2010.03.01 10:39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태릉선수촌내 체육과학연구원 직원들은 근무시간 중 시도 때도 없이 '소음공해'에 시달려야 했다. 청사 인근 도로에서 20여명의 선수들이 자전거로 타이어를 끄는 연습을 하면서 요란한 마찰음을 냈던 것. 그들은 바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들이었다. 체육과학연구원 청사는 빙상경기장과 가깝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성봉주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봄 창밖이 하도 시끄러워서 문을 열어 보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자전거로 타이어를 끌고 있었다. 김관규 감독이 힘들어 하는 선수들을 독려했고 어떤 선수는 너무 힘든 나머지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땀의 결실이 마침내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맺어졌다. 모태범(21)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이상화(21ㆍ이상 한체대)가 여자 스피드스케팅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팀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낸 역사적인 '사건'. 더군다나 동계종목의 '100m'로 비유되는 500m에서 남녀 동시 석권을 한 것도 이번에 한국이 처음이었다.

 외신들은 모태범과 이상화의 금메달 기사를 타전하면서 'Surprising Winner'(놀라운 우승자)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금메달을 한국선수들이 가져갔다는 의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밴쿠버 올림픽 이전까지 한국이 역대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따낸 메달은 2개에 불과했다. 지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 김윤만이 1000m에서 은메달,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강석이 500m서 동메달을 획득한 게 전부였다. 세계를 놀래킨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삼성의 과감한 투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가난한 경기단체의 대명사로 인식돼 왔다. 연맹의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아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쇼트트랙은 세계정상권에 있었지만 스피드스케이팅에선 좀처럼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았기에 재벌들이 빙상연맹을 외면한 결과였다.

 재정사정이 넉넉지 않다보니 많은 경비가 소요되는 국제대회 출전도 여의치 않았다. 1990년대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한 윤의중 전 감독은 "당시에는 월드컵 시리즈도 몇개만 골라 나갔고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도 10명을 넘지 않은 수준에서 운영됐다"고 말했다. 세계 정상권과는 모든 면에서 뒤떨어져있는 상황에서 그들과의 실전경험마저 부족하다보니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못했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은 '선진국 스포츠'로 불릴 정도로 각종 장비구입과 인프라 구축 등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종목. 얼마만큼 투자가 이뤄지느냐가 관건이었다.

 재정적으로 취약했던 빙상연맹이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97년. 삼성이 빙상연맹을 맡으면서 든든한 '돈줄'이 생긴 것이다. 박성인 삼성스포츠단 고문이 빙상연맹 회장으로 취임한 뒤 삼성화재에서 매년 8억~10억원의 후원금을 빙상연맹에 댔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삼성에서 연맹을 맡은 이후 돈 걱정은 하지않았다"고 말했다.
 빙상연맹은 특히 지난 2004년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에서도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전략 아래 좀더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해 37억원을 쏟아붓는 등 6년간 163억원을 썼다. 전담 물리치료사와 2명의 장비담당까지 두고 있는 20여명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지난해 7월 한달간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다녀오는 등 수시로 해외로 나가 이번 올림픽에 대비해 왔다.

 스피드스케이팅의 김관규 감독은 17일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낸 뒤 "빙상연맹의 지원 없이는 이런 결과가 나오기 힘들었을 거다.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체력과 코너링에 승부수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4년 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부터 희망의 싹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 이강석이 남자 500m에서 동메달, 이규혁이 1000m에서 4위, 이상화가 여자 500m에서 5위에 올랐다.

 한체대에서 이상화와 모태범을 지도해 온 권순천 코치는 "스피드스케팅 선수들이 토리노올림픽 후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의욕적으로 훈련에 참여한 가운데 김관규 감독이 앞서의 자전거로 타이어 끌기에서 보았듯이 이번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체력강화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훈련을 이끌었다.

 막판에 낮게 가져가는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고 뒷심을 발휘하려면 체력이 관건이라고 보고 '지옥훈련'을 시켰다. 이상화는 남자선수들도 버거운 170㎏의 역기를 들도록 했다. 모태범은 200㎏을 드는 훈련을 시켰다.

 선수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정규훈련 시간이외에 야간에도 밤 10시까지 웨이트트레이닝장을 찾아 체력강화에 매달렸다. 그 결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힘이 떨어지는 후반에도 스피드의 감소 없이 강인한 레이스를 펼쳤다. 가령 모태범은 1분9초12를 기록한 1000m레이스에서 1년 전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와 비교해 후반 400m에서 0.99초를 당기며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김관규 감독은 코너링 훈련에도 집중 투자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기록단축의 열쇠가 코너링에 있었기 때문. 코너를 돌 때는 가속을 붙일 수 있고, 원심력에 의해 몸이 밖으로 벗어나려는 것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희미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덩치가 커 코너를 돌 때 원심력 제어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서양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은 한국선수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쇼트트랙 대표선수였던 이승훈이 지난해 여름 스피드스케팅으로 전환한 뒤 이번 올림픽 50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따낸 원동력도 쇼트트랙에서 단련된 코너링 기술이 한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김관규 감독은 쇼트트랙선수들의 절묘한 코너링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4개월간 쇼트트랙 훈련장을 찾았다. 쇼트트랙용 스케이트를 신고 하루 3시간씩 빙상장을 돌도록 했다.

 이런 코너링 훈련 덕분에 모태범과 이상화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코너를 돌 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트랙 한 가운데를 가르며 기세를 올릴 수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를 지낸 송호대의 나윤수 교수는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세계적인 A급 선수들의 스피드는 크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었다. 반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무섭게 치고올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