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

"[진도] 운림산방과 남도석성"

바래미나 2009. 10. 7. 21:23


 




[진도] 운림산방과 남도석성

< 2009. 9. 20 >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이던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2)이 말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이란 이름은 첨철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지었다 한다.











운림산방은 ㄷ자형 한식 기와집으로 정면 우측 3칸은 화실로 나머지는 방으로 꾸몄다















































운림산방 본채































































































소치 허련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소치 허련(1808~1893)의 초상- 선생은 30대에 대흥사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에게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아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다.
선생은 시·서·화에 뛰어나 3절이라고 칭송되었는데 대표작으로는 ‘선면산수도’, ‘완당선생해천일립상’ 등이 있고 『몽연록』을 저술하였다.






















소치기념관











남도석성-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원종 때 배중손 지휘 하의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고군과 전쟁을 할 때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라 전해지지만 원래는 삼국시대 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6人의 만호비











지금 남아 있는 성은 조선 세종 때 이곳에 군사기관인 만호부가 생기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치(雉)-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하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장방형으로 쌓은 구조물











남문- 성문을 밖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중으로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다.











쌍홍교와 남도석성 남문











남도석성 부근의 기이한 나무











남도석성 부근 풀밭에서 본 게











삼별초의 최고 지휘관 배중손 장군의 사당











삼별초에 거듭 패한 여몽 연합군이 1271년 5월 진도를 3면으로 에워싸고는 총공세를 펴자 배중손 장군은 이곳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