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조선[朝鮮]과 대한[大韓]제국

대한 제국 군대와 무기의 사진들

바래미나 2009. 8. 23. 01:12

대한 제국 군대와 무기의 사진들

 대한제국 군대의 무기와 사진들

 

구경 : 8mm
전장 : 122cm
무게 : 4.17kg
특징 : 약실하부에 홈을판 간식전상관탄창(刊式前床管彈倉)으로 연발사격가능.
장탄수 : 5
최대사거리 : 2200m

러일전쟁 당시 사용한 일본군의 주력소총이다. 이보다 뒤에 나오는 아라사카 38년식이 저 위에 나온

마우저 1871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고 보면 최소한 보병의 주력무장인 소총에 있어서는

대한제국군이 오히려 앞선 부분마저 있었다. 2만 2천 대한제국군 전체를 무장시키기엔 7천 정 정도라는 것이

너무 적기는 하지만 베르강 역시 무라타에 비해 떨어지는 소총이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맥심 기관총이나 크루프 속사포는 일본도 아직 보유하지 못한 것이었으니.

그러나 무기만 좋으면 뭐하는가? 이런 좋은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결국

대한제국군은 제대로 싸움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해산되고, 대한제국은 끝내 1910년 일본에 합병당하게 된다.

무기가 좋으면 뭘 하는가? 싸울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데.
 
당시 일본군의 규모가 대략 30만 정도. 반면 대한제국군은 2만 2천 남짓이었다.

그런데도 대! 한제국은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군대를 유지하는 데 써야 했고, 그를 위해 농민과 상인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여야 했다. 그만큼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아무런 근본적인 대책 없이

세금만을 쥐어짜 만든 군대인 것이다. 그리고는 과중한 세금의 부담을 견디지

못해 봉기한 농민들을 진압하는데 이 군대가 쓰였고.

한 마디로 악순환의 고리다. 군대는 필요하고, 산업기반이 취약하니 군대를 유지하려면 세금을 더 거둬들이지 않으면 안 되고,

 세금을 더 거둬들이면 백성들이 반발하니 군대로 그것을 진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알마나 많은 무고한 농민들이 희생되었던가.

살인과 강간과 약탈에 대한 당시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겠다 나섰으니... 우리 조상들도 참 어지간했다는 생각이다. 나같으면 그렇게 못 했을 텐데.

그런 주제에 고종은 또 벼슬자리를 팔아 자기 개인재산을 늘리고는,

그것 가지고 일년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들여 생일잔치를 열기도 한다.

군주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돈이 없어 ! 허덕거리던

대한제국의 실정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더구나 그렇게 돈을 받고 벼슬자리를 팔면, 돈을 주고 벼슬자리를 산 관리는 어디선가

본전을 다시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세도정치나 고종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부류들인 셈이었다.

그러한 고종의 무능과 방만함은 결국 양무호의 수입이라고 하는 최악의 뻘짓으로 드러난다.

석탄운반선으로 쓰이던 3천톤급 화물선을 대포 두 개 달아 놓고 군함이라며

국방예산의 30%에 달하는 당시돈 55만엔 - 110만원을 주고 들이다니. 저리 이리저리 소총들을 뒤섞어 놓아 주제도 않되면서

보급체계만 복잡하게 만든 고종 다운 뻘짓이었다. 그 돈이 또 어디서 났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서양으로부터 기계를 사들여 공장을 지었더라면 어땠을까? 공장을 지어 산업을 일으키고,

유학생을 서양 여러 나라에 보내 기술을 배워오게 했다면, 그 돈으로 군대를 기르는 것보다 과연 못했을까?

법과 제도를 일신하고 나라의 근본을 크게 바꾸어 개혁하는 데 힘을 썼다면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해산시켜버린 군대보다 그것이 그리 못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것이 당시 고종과 대한제국 위정자들의 한계였다.

 

그러나 그러한 고종의 뻘짓에도 대한제국군대의 해산을 맞아 참령 박승환을 자결을 했고,

1연대 2대대와 2연대 1대대 병력들은 해산명령을 거부하고

일본군과 교전하여 최소 백 수십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기도 한다.

그러고서도 현장에서 이탈할 수 있었던 군인들은 의병에 합류하여 다시 항일전선에 뛰어들었다 하니

도대체 그 애국심이 다 어디서 나놨는가 싶다. 상대적으로 홀대받던 지방의 군대들도

또 같이 일어나 무기고를 습격하여 역시 의병에 참가했으니... 이른바 가장 격렬했던 정미의병이다.

아무튼 이런 내! 育 볼 때마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증오가 새록새록 샘솟는다. 그들이 잘만 했다면,

당시 대한제국 - 혹은 조선의 지배층들이 제대로만 했다면, 저러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지키겠다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던 의기와 충심이 그리 허무하게 스러지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끝내는 저리 의병에 참가한 이들마저 어찌되었거나

조정에 의해 폭도로서 규정되어 일본군에 의해 토벌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