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좋은 이야기-

그대 있는 한 / 최광림

바래미나 2007. 11. 29. 03:24

    ≫ **그대 있는 한,/崔 光 林** 차라리 고독이라는 단어를 당분간 유예(猶豫)시키기로 했습니다 절망이라는 차디찬 단어에도 당당하게 금고형(禁錮形)을 선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목이 흰 기다림이나 샛노란 파스텔빛 그리움일랑 진행형(進行形)으로 꼭꼭 담아 그대에게 소포로 부치고 싶습니다 시름겨운 가을비가 온종일 창문을 울리고 그 해 여름의 반란을 묵인한 질 고운 나뭇잎들이 저마다 생존을 향한 몸부림으로 푸들푸들 입술을 떨 때 여인은 산국(山菊)향의 내밀한 언어들을 징표인 양 꼬옥 담아 내게로 왔습니다 불혹을 넘어 내일이 지천명인데 연꽃잎에 내리는 뽀오얀 여명 같은 그렇듯 거룩하고 잔잔한 흘림체로 말입니다 그래서 정녕 이 가을의 절반은 그대에게 바치고 나는 또 싱싱한 가슴앓이로 불면(不眠)의 밤을 지새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음습한 터널과도 같았던 고독과 절망도 비밀(秘密)한 욕망도 호올로 간직한 채 다만 추락하는 가을 산에 오르고 또 오르겠습니다 비바람 불고 암만 눈보라가 치더라도 그대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