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하고 빼앗고..부천 대장동 평야에 굶주린 맹금류 모였다
한겨레 입력 2021. 03. 05. 10:56 수정 2021. 03. 05. 11:06 댓글 15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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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 관찰 일기
한강하구와 김포평야 만나는 생태 요충, 3기 신도시 후보지로 사라질 위기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 평야에서 고층아파트를 배경으로 참매가 사냥한 비둘기를 움켜쥐고 날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 평야는 서울과 인천을 경계로 두고 도심에 유일하게 남은 드넓은 평야다. 그러나 거센 개발압력에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지역으로 발표되었다.
또 주민이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부천시는 인천시 계양구, 서울시 강서구와 협약을 맺어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 소각장을 광역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장동 일원의 평야는 도심에 살아있는 자연생태의 보고이다.
한강하구와 김포평야의 생태환경을 서해안의 생태 축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발로 인해 대장동 평야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른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재두루미가 대장동 평야를 제일 먼저 찾아온다. 대장동 평야는 김포시 홍도평야와 함께 한강하구에 남은 이들의 유일한 월동지다.
이곳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재두루미, 황새, 큰기러기를 비롯해 참매, 매, 잿빛개구리매, 새매, 털발말똥가리, 큰말똥가리, 쇠황조롱이, 황조롱이 등 다양한 맹금류가 찾아온다. 1월에는 진귀한 초원수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멸종위기 야생물 2급 쇠황조롱이 암컷.
쇠황조롱이 수컷이 사냥을 했다.
겨울이 되면 도심에서 활동하던 비둘기 600여 마리가 무리를 이뤄 대장동 평야에 모여든다. 농경지에 떨어진 볍씨는 비둘기가 놓치기 힘든 먹이이고 맹금류들은 이곳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그냥 둘 리 없다.
오전 10시께 비둘기들이 어김없이 대장동 평야로 날아든다. 참매와 매, 잿빛개구리매, 새매의 사냥이 시작된다. 비둘기 무리를 바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을 취하게 한 다음 경계가 느슨할 때 급습한다. 쫓고 쫓기는 상황이 매일 반복된다.
참매의 사냥 모습
참매의 급습에 놀란 비둘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사냥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참매는 낮게 수평 비행하며 사냥감이 노출되지 않게 수풀 사이를 지나간다.
수풀 사이로 낮게 수평 비행하면서 사냥감 비둘기를 먹을 장소를 찾는다.
웬일인지 훤히 보이는 논바닥에 앉아 주변을 매섭게 살피며 사냥한 비둘기의 깃털을 뜯어내는 참매.
사냥감의 내장부터 먹는다.
트인 장소가 불안했던지 은밀한 곳으로 사냥감을 옮긴다.
비둘기들은 사냥을 당하면서도 대장동 평야의 풍부한 먹거리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참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수백 마리의 비둘기들이 하늘로 치솟고 참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냥에 성공한다.
급습할 때 눈에 띄지 않도록 논고랑을 타고 유령처럼 다가가기 때문에 비둘기는 물론 관찰자인 필자도 볼 수가 없다. 놀란 비둘기들이 하늘로 치솟으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사냥이 끝난 것을 알아차린다.
참매는 땅으로 내려오면서 바닥의 비둘기를 낚아채고 매는 하늘에서 낚아챈다. 참매는 사냥감을 잡은 뒤 확 트인 평야로 높게 비행하지 않고 아주 낮게 수평 비행하며 대장동 마을로 향한다. 시골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어 으슥한 뒤뜰에 숨어 경쟁자나 사람의 방해를 피해 안전하게 먹이를 먹는다.
매가 하늘을 선회하면 비둘기들이 놀라 달아난다. 이때 비둘기 무리를 쫓아가 주변에서 혼란스럽게 비행하면서 수백 마리의 비둘기 무리를 분산시킨 다음 정해진 사냥감을 맹렬히 추격하여 사냥한다. 이때 비둘기와 뒤섞여 매를 분간하기 어렵다. 매도 사방이 훤히 보이는 평야보다 시골 가옥의 뒤뜰 안 수풀로 숨어 사냥감을 먹는다.
이곳에 맹금류 사이에선 털발말똥가리가 최상위 강탈자다. 사냥터 주변에 털발말똥가리가 나타났다는 건 참매와 매의 사냥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털발말똥가리는 민첩하지 못해 비둘기를 쉽게 사냥할 수 없기에 비둘기들은 경계를 하면서도 큰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렇지만 털발말똥가리도 나름대로 사냥술을 개발했다. 논두렁 풀숲에 숨어 비둘기가 코앞에 다가와 내려앉을 때까지 기다리다 급습하여 붙잡는다.
참매와 매의 사냥을 비교하며 관찰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참매와 매의 사냥기법이 달라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훤히 보이는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추격해 낚아채는 매의 사냥보다 유령처럼 나타나 급습하는 참매의 사냥이 좀 더 효과적인 것 같다. 한 달간 대장동 평야에서 관찰한 결과 참매는 약 80%, 매는 70%의 사냥 성공률을 보였다. 참매의 사냥이 더 뛰어나다. 매는 철새 이동 시기에 지친 새들을 골라 사냥하기도 한다.
잿빛개구리매와 새매는 비둘기보다 조금 더 크지만 몸무게가 300g 정도 되는 비둘기를 사냥하기도 한다. 사냥하더라도 사냥감이 무거워 멀리 가지고 날아가지 않는다. 비둘기의 숨통을 바로 끊어놓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털발말똥가리, 참매, 매가 발견하면 그냥 놔둘 리 없다. 강탈하려 달려드는 모습에 놀란 잿빛개구리매나 새매가 사냥감을 놓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비둘기가 도망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오후 4시가 넘으면 대장동 평야는 조용해진다. 비둘기 무리가 먹이 먹기를 끝내고 도심으로 날아간다. 맹금류들도 이 시간에 사냥을 마감한다.
완연한 봄이 오면 비둘기들은 도심에서 번식한다. 대장동 평야가 훼손되지 않는다면 올겨울 다시 맹금류의 사냥이 벌어질 것이다. 도심의 보기 드문 장관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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