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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 전함 /거함거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다

바래미나 2019. 2. 26. 14:13

아이오와급 전함
거함거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다


막강한 공격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6인치 함포 사격 훈련 중인 BB-61 아이오와 <출처: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20세기 중반까지 대양을 휘젓고 다니던 전함(Battleship)은 열강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엄청난 무기였지만 오늘날은 완전히 사라졌다. 함포의 사거리 밖에서부터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등장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거포로 응사하는 방식의 해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이오와급(Iowa class)은 그러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함이다.

1945년 9월 2일, BB-63 미주리의 갑판에서 벌어진 일본의 항복 조인식 <출처: Public Domain >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에 정박한 아이오와급 3번 함 BB-63 미주리의 갑판에서 일본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이처럼 일본에게 굴욕의 장소였던 미주리의 탄생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일본이 노골적으로 군비 확충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이오와급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거함거포 시대도 좀 더 빨리 종지부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1차대전 후의 대표적인 군비통제회담인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출처: Public Domain>
20세기 초, 열강들이 엄청난 국력을 투입해 확충한 전함들은 정작 제1차 대전에서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큼 획기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획득하고 운용하는데 국가의 재정에 무리를 줄 정도였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활약은 제한적이었다. 그렇다고 남이 보유하고 있으니 함부로 감축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렇게 눈치를 보다 제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22년에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을 시작으로 다자간 해군력 감축이 시작되었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을 준수해 건조된 사우스다코다급 전함 4번 함 BB-60 앨라배마. 아이오와급의 기술적 기반이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
이때 핵심 규제 대상은 거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함이었고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으로 제한 내용이 보다 세분화되었다. 그런데 1930년대 들어 적극적으로 대외 팽창에 나선 일본은 전력을 계속 미국, 영국의 60퍼센트 수준으로 제한받는 데 불만이 많았다. 협상에 나섰지만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1934년 조약에서 전격 탈퇴했고 2년 뒤 유예 기간이 끝나자마자 노골적으로 해군력 확대에 나섰다.
일본은 함대 간 대결에 여전히 전함이 중요하다고 보고 야마토급을 건조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렇게 1937년부터 건조가 시작된 거함이 사상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급이다. 일본의 행동은 당연히 여타 군축 조약국들을 자극했다. 서서히 항공모함이 전력화되던 중이었지만 함대 간 대결을 벌이려면 같은 수준의 전함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해군의 사상을 지배하던 시대였기에 1938년 미국과 영국은 향후 건조할 전함의 주포 구경을 16인치로, 배수량을 45,000톤으로 확대하는데 합의했다.
1944년 1월 작전 지역으로 항진 중인 BB-61 아이오와 <출처: Public Domain >
만일 당시에 일본이 조약을 준수해 군축 체계가 유효했다면 열강들이 보유한 전함들은 기존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노후되면 같은 수준으로 대체되거나 시대 흐름으로 볼 때 항공모함이 함대의 중추가 되면서 서서히 도태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동안 강제로 억눌려 왔던 거함 확보 경쟁은 이처럼 일본의 야욕으로 인해 재개되었고 덕분에 건조될 가능성이 많지 않던 아이오와급은 역사에 등장할 수 있었다.
1954년 벌어진 훈련 당시 4척의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 <출처: Public Domain >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독일의 동맹인 일본이 야마토급의 취역을 눈앞에 두자 다급해진 미국은 1940년부터 총 6척 획득을 목표로 아이오와급의 건조에 나섰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급습 이후 제작 속도가 빨라져 1943년부터 순차적으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4번 함인 BB-64 위스콘신이 취역한 1944년 4월이 되었을 때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 것과 다름없어 총 4척으로 획득이 완료되고 나머지 2척은 건조가 취소되었다.
아이오와급의 16인치 함포 사격모습 <출처: Public Domain>
이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태평양전쟁을 통해 전함이 더 이상 바다의 제왕이 아님이 입증된 것이다. 사실 4척의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지는 못했다. 만일 작전 효용성이 좋았다면 나머지 2척과 후속할 몬태나급의 건조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퇴역과 취역을 반복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모습을 드러냈으나 마지막 전함이라는 기록을 무기사에 남기고 역할을 마감했다.
아이오와급 위신콘신 전함의 마지막 함포사격 <출처: 유튜브>


특징


공격력의 핵심은 최대 사거리 38km의 Mk7 50구경장 16인치 함포다. 견제 대상이었던 야마토의 주포에 비해 조금 작았으나 발사 속도 및 정확도가 우세했다. 3개의 포탑이 선수에 2개, 선미에 1개가 위치하는데 각각의 포탑은 3문의 Mk7 함포를 탑재하고 있다. 1980년대에 선체를 개수해 BGM-109 순항미사일, RGM-84 대함미사일 등을 추가했지만 화력 지원 측면에서 16인치 함포의 역할은 여전했다.

16인치 50구경장 Mk 7 함포의 사격 장면 <출처: Public Domain >
방어를 미사일이나 기만 수단에 의존하는 현대의 최신 함과 달리 전함은 어지간한 폭격이나 포격을 그대로 감당하기도 한다. 아이오와급은 가장 중요한 현측의 방호력이 경사 장갑을 고려하면 17.3인치(439mm)에 이르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야마토와의 정면 대결을 상정해서 주포는 상대를 뚫을 수 있지만 장갑은 야마토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되었다.
방어력을 짐작할 수 있는 엄청난 두께의 출입문 <출처: Public Domain >
강력한 주포와 두터운 방어력은 전함의 상징이지만 그만큼 속도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20세기 초에는 방어력을 희생한 대신 고속으로 항해가 가능한 순양전함이 탄생하기도 했다. 아이오와급은 선체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도록 폭이 좁고 길이가 늘어난 날렵한 형태에다 M-타입 튜브 보일러 8기에서 발생하는 21만 마력의 강력한 힘 덕분에 오늘날 최신 함도 쉽게 내기 힘든 최대 33노트의 쾌속 순항이 가능하다.
아이오와급의 무장운용 설명영상 <출처: 유튜브>


운용 현황


4척의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태평양전쟁에 투입되었던 시기는 해전을 항공모함이 주도하면서 전통적인 교전 방식이 바뀌던 중이었다. 또한 미국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으며 함대 간 대결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때문에 아이오와급은 상륙 작전 시 어마어마한 화력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고 전후 BB-63 미주리를 제외한 나머지 3척은 퇴역하여 치장 물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50년 10월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펼치는 BB-63 미주리 <출처: Public Domain >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은 현역으로 복귀해 교대로 한반도 인근 해역에 투입되어 포격으로 적진을 강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종전 후 다시 퇴역했다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자 재복귀 했다. 1968년 북베트남 해안에서 BB-62 뉴저지는 100여 일 동안 5,600여 발의 16인치 포탄과 15,000발의 5인치 포탄을 발사했는데 이는 단일 전함이 하나의 목표물에 발사한 최대 포격량으로 알려진다.
               
퇴역 직전인 1991년 걸프만 인근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는 BB-64 위스콘신 <출처: Public Domain >

아이오와급은 운용에 많은 인원과 비용이 필요하므로 임무가 끝나면 퇴역해 보존하는 방식으로 관리했다. 1980년대 초에 대대적인 개수에 착수해 각종 미사일과 현대화된 센서류가 장착되었다. 1984년 레바논 사태에 투입된 BB-62 뉴저지가 게릴라 진지 초토화 작전에서 엄청난 포격을 실시했고 이후 1990년에 있었던 걸프전에도 참전했다. 1992년 3월 1일 BB-63 미주리의 퇴역을 끝으로 모두 미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변형 및 파생형


BB-61 아이오와(Iwoa)
건    조  1940년  6월 27일
진    수  1942년  8월 27일
최초 취역  1943년  2월 22일
최종 퇴역  1990년 10월 26일

1952년 북한 지역을 포격하는 BB-61 아이오와 <출처: Public Domain >
BB-62 뉴저지(New Jersey)
건    조  1940년  9월 16일
진    수  1942년 12월  7일
최초 취역  1943년  5월 23일
최종 퇴역  1991년  2월  8일
1968년 오하우 인근을 항해 중인 BB-62 뉴저지 <출처: Public Domain >
BB-63 미주리(Missouri)
건    조  1941년  1월  6일
진    수  1944년  1월 29일
최초 취역  1944년  6월 11일
최종 퇴역  1992년  3월  1일
퇴역 후 박물관으로 변경되기 위해 마지막 항해 중인 BB-63 미주리 <출처: Public Domain >
BB-64 위스콘신(Wisconsin)
건    조  1941년  1월 25일
진    수  1943년 12월  7일
최초 취역  1944년  4월 16일
최종 퇴역  1991년  9월 30일
1990년 지중해에서 작전 중인 BB-64 위스콘신 <출처: Public Domain >
BB-65 일리노이(Illinois)
건    조  1942년 12월  6일
건조 취소  1945년  8월 11일
건조 취소 직전의 BB-65 일리노이 <출처: Public Domain >
BB-66 켄터키(Kentucky)
건    조  1942년  3월  7일
진    수  1950년  1월 20일
건조 취소  1959년
1950년 진수 직후의 BB-66 켄터키 선체 <출처: Public Domain >


제원


- 제작: 뉴욕 해군 조선소 (BB-61, BB-63)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BB-62, BB-64, BB-65)
        노포크 해군 조선소 (BB-66)
- 만재 배수량: 54,890톤
              57,540톤 (1980년대 개장 후)
- 전장: 270.43m
- 선폭: 32.97m
- 흘수: 11.51m
- 추진기관: 8 × 브록 윌코스 M-타입 튜브 보일러 212,000마력(158MW)
            4 × 제너럴 일렉트릭 증기 터빈
            4 × 프로펠러
- 속력: 33노트
- 항속 거리: 14,890마일
- 무장: 9 × 16인치 50구경장 Mk 7 함포
        20 × 5인치 38구경장 Mk 12 함포 (1980년대 개장 후 제거)
        80 × 40mm 보포스 (1980년대 개장 후 제거)
        49 × 20mm 오리컨 (1980년대 개장 후 제거)
        32 × BGM-109 토마호크 대지 미사일 (1980년대 개장 후 추가)
        16 × RGM-84 하픈 대함 미사일 (1980년대 개장 후 추가)
        4 × 20mm 팰렁스 CIWS (1980년대 개장 후 추가)
- 센서 (1980년대 개장 후)
        AN/SLQ-32(V)
        AN/SLQ-25 
        Mk36 SRBOC
- 장갑: 현측 307mm + STS 22mm
        방수격벽 290mm  
        주포탑 포좌 : 295mm~439mm
        주포탑 전면 : 500mm
        갑판 190~214m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