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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 [ 上 ] 굴러들어온 호박

바래미나 2018. 11. 4. 02:45

소문난 잔치 [ 上 ]

굴러들어온 호박



1976년 9월 6일, 일본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 공항에 소련군 전투기 1기가 비상 착륙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소련은 즉각 일본 정부에 영공 침범 사실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시한 후 훈련 중 사고가 발생해서 벌어진 불가피한 상황이니 국제 관례에 따라 조종사와 기체를 조속히 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하코다테 공항에 불시착한 직후의 MiG-25 ]


하지만 조종사 벨렌코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소련을 탈출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포드 대통령이 안전한 망명지 제공을 약속한 후 정부 요원들을 보내 그를 미국으로 후송했습니다.  소련은 그의 아내와 모친으로 하여금 '결코 벨렌코가 미국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공개 기자회견을 실시하며 모든 것이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 기자 회견에 등장한 벨렌코의 가족들 ]


그럼에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소련은 궐석 재판을 벌여 벨렌코를 반역자로 낙인찍고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음으로 양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는 의지를 수시로 밝혀 이후 미국으로 건너 온 벨렌코는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간첩들의 위협으로부터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그의 망명은 소련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 변장을 하고 호위를 받아 미국에 도착한 벨렌코 ]


하지만 사실 벨렌코는 이 사건에서 미국이나 소련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사건이 전 세계에 이슈를 몰고 온 이유는 그가 몰고 온 전투기가 MiG-25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전투기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미국에게는 한마디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상황이었던 것 입니다.


[ 조종사보다 MiG-25가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


MiG-25는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서방측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설계 사상이 지금까지의 소련 전투기와 확연히 다를 만큼 외형만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짐작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고주익, 2중 수직미익 등의 구조는 당시 미국이 한창 개발 중이던 F-14, F-15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질 정도입니다.


[ 외형만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하지만 무엇보다 MiG-25가 경이로운 무기로 대접받은 이유는 엄청난 속도 때문이었습니다.  스텔스, 레이더, 항전장비 등의 성능에 따라 우열이 가름되는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전투기에게 속도는 성능의 우위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MiG-25는 2018년 현재까지 등장한 그 어떤 전투기도 근접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를 내었습니다.


[ 현재까지도 MiG-25는 가장 빠른 전투기입니다 ]


서방 감시 레이더에 포착된 MiG-25는 최고 마하 3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비행했습니다.  종종 일부러 나토 구역을 월경해 시위를 벌였는데 서방의 전투기가 출격하면 유유자적하게 따돌리고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벨렌코의 귀순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은 F-4EJ 전투기를 출격시켰지만 그는 홋카이도 상공을 이미 3번이나 선회한 상태였습니다.


[ 착륙 전에 하코다테 공항 상공을 저공비행하는 모습 ]


당시 미국에도 마하 3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한 SR-71이 있었으나 용도가 극히 제한 된 고고도 정찰기였습니다.  미국은 많은 연구를 했지만 전투기가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며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MiG-25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좌절했고 당연히 그 비밀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 계속 )aug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