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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격전지를 가다

바래미나 2018. 10. 21. 02:39

 



디데이 작전도


동부 전선은 제2차 세계 대전 속에서도 독소 전쟁이라는 별개의 전쟁으로 분리될 정도로 거대하고 치열한 전투 현장이었습니다. 1943년 독일의 동부 전선 최후의 공세가 되어 버린 쿠르스크 전투에서 양측의 수백만 병력, 수천 대의 전차가 충돌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독일은 공세 역량을 소진하지만 승리한 소련의 피해 규모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동부 전선은 고착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합군은 동부 독일군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전선을 만들 고심을 합니다. 그 결과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분수령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상륙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페가수스 브리지


디데이 전날, 연합군은 본격적인 상륙에 앞서 주요 교두보와 거점을 점령할 사전 작업을 진행합니다. 노르망디의 지형은 오혼느 강으로 양분되어 있기 때문에 각 해변에 상륙한 병력들이 합류해서 내륙으로 진격하기 위해 오혼느 강을 가로지르는 페가수스 브리지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게임 「콜 오브 듀티」 영국 미션


페가수스 브리지를 점령하는 작전이 명작 FPS 「콜 오브 듀티」에 그대로 등장합니다. 게임 속 미션과 같이 영국군 제6 공수 사단은 강습용 글라이더를 이용하여 이곳으로 침투하였습니다.






영국군 공수 부대 장비와 부서진 글라이더(페가수스 브리지 박물관)


영국 공수 부대는 낙하산보다 글라이더를 이용했습니다. 낙하산에 비해 집결이 쉽고 공수 부대로서는 중장비인 차량과 대전차 화기들도 함께 강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착륙할 개활지가 필요하고 손쉽게 표적이 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제6 공수 사단이 강하할 때 이러한 글라이더의 한계를 극복해 가며 밤새 독일군과 맞서야 했습니다. 제6 공수 사단의 고투 끝에 다리의 이름이 공수 사단의 마스코트인 페가수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오마하 해변과 해안 벙커


 

“세계의 눈이 여러분에게 주목되어 있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기도가 어디서든지 여러분을 반길 것이다.”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디데이 날이 밝자 연합군은 노르망디 모든 해변에 동시 상륙을 시도합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 상륙 전투 장면으로 잘 알려진 오마하 해변은 노르망디에서 가장 끔찍한 해변이 되었습니다.




MG42 기관총과 관통당한 철모


짙은 안개 속에서 진행된 사전 포격과 폭격은 진지화된 독일군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방어선이 제대로 살아 있는 오마하 해변으로 투입된 미군에게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리는 기관총, MG42의 총탄이 쏟아졌습니다. 상륙 작전이 개시된 때는 썰물이라 상륙정부터 해안까지 길어진 거리는 피해를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오마하 해변의 동상


해변 한가운데 있는 동상이 처절한 그날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롱그슈흐메흐 포대


오마하 해변 우측방에는 6인치 해안 포대가 요새화되어 있었습니다. 이곳 또한 상륙이 진행되는 동안 무력화되지 않았습니다. 디데이 당일 전투 내내 롱그슈흐메흐 포대는 제 기능을 했고 연합군에게 많은 손실을 강요했습니다. 아직까지도 큰 손상 없이 남아 있는 포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롱그슈흐메흐 포대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처럼 주요 해안 전투 종료 후 연합군에게 점령됩니다.


포인트 듀 혹


오마하의 좌측에는 포인트 듀 혹(Pointe du hoc)이라 불리는 곶이 있습니다. 독특한 절벽 지형으로 유명한 포인트 듀 혹은 노르망디 해안가 중심부에 돌출되어 있고 지대가 높아 주변을 감제하기 쉬웠습니다.




당연히 독일과 연합군 모두 이곳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이곳에 중포대를 주둔시키고 콘크리트 벙커를 만들어 강력한 방어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포인트 듀 혹을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연합군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포인트 듀 혹의 크레이터


부서진 벙커


연합군은 포인트 듀 혹 전체를 갈아엎기로 결정합니다. 중폭격기 폭격과 전함을 동원한 대규모 포격으로 이곳의 지형이 바뀔 정도의 폭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전함 주포 직격은 콘크리트 벙커들도 견뎌 낼 수 없었습니다.


포인트 듀 혹의 절벽


사전 포격이 끝나고 미군의 최정예, 레인저 연대가 포인트 듀 혹을 맡았습니다. 일부 병력이 조류에 밀려 오마하 해변으로 가버리는 불상사에도 이들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올라 포인트 듀 혹을 접수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레인저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연합군의 사전 포격에 대비해서 독일군은 이미 포대를 후방으로 물린 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출된 지형에서 다른 연합군과 합류하지 못한 채로 레인저들은 외롭게 독일군의 역습에 부딪혔고 결국 많은 사상자를 냅니다.




카랑탕


노르망디의 각 해변에 연합군의 대규모 병력이 상륙했지만 디데이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각 상륙지점은 독일군으로 인해 서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연합군 수뇌부는 자칫하면 각개격파를 당한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상륙 작전의 성공을 단언하지 못합니다. 카랑탕은 노르망디의 시골 마을이지만 유타 해변과 오마하 해변을 정확히 양분하는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곳을 점령해 교두보를 만들어야 연합군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카랑탕 전투 작전도


디데이 당일부터 가장 깊숙하게 침투한 제101 공수 사단이 카랑탕 공격을 맡았습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이지 중대 또한 이 전투에 주된 전력이었습니다. 카랑탕을 방어하는 독일군도 똑같은 공수 부대라는 점이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제2 팔슈름야거 사단 6연대와 제101공수 사단의 공수 더비 매치가 펼쳐졌습니다. 강하 당시 많은 사상자와 물자 손실을 낸 제101 공수 사단은 전투 초기 열세에 몰렸지만 이후 증원된 미군 제2 기갑 사단에 힘입어 카랑탕 점령에 성공합니다.






노르망디 미군 전사자 추모 공원


 

“최소한 대위님 눈에는 모두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해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노르망디 묘지


영화 속 나이 먹은 라이언이 찾아온 밀러 대위의 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셀 수 없이 많은 묘지 앞에 자연스럽게 숙연해집니다. 독재자와 파시스트의 압제에 맞서 평화와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44년 6월 6일 디데이 이후 두 달이 지난 8월, 연합군은 팔레즈에서 독일군 정예 병력을 포위 섬멸하고 나서야 작전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발생한 사상자는 23만 명, 항공기와 전차 손실은 각각 4,000대가 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송이 꽃이 놓인 묘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프랭크 L 리드 상병, 제86 화학 박격포 대대, 일리노이 출신, 1944년 7월 7일 사망



『탱크 북』 112~113쪽에서 Copyright © Dorling Kindersley.


글쓴이 손건(썬더볼트)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발전소 엔지니어로 재직 중이다. 역사, 밀리터리, 자동차에 관련된 컨셉으로 각국을 탐방하는 아마추어 여행가이자 사진 작가이다. 루리웹과 인스타그램 ttps://www.instagram.com/night_thunderbolt 에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제공 사이언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