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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을 승리로 이끈 전투기 마피아의 선택/F-16 전투기의 개발사

바래미나 2018. 4. 11. 09:41

공중전을 승리로 이끈 전투기 마피아의 선택
F-16 전투기의 개발사

F-16C 전투기 <출처: SrA Solomon Cook / 미 공군>

첨단 무기가 전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해왔다. 특히 1950~1960년대에 걸쳐 미 공군과 해군은 최첨단 전투기와 미사일만 있으면 공중전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래서 이들은 대형 기체에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결합하여 가시거리 밖(BVR, Beyond Visual Range)에서 적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F-111이나 F-4 팬텀(Phantom) II와 같은 고가의 대형 기체들이 등장하면서도 기관총조차 장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장의 현실은 처참했다. 제한된 교전수칙 하에서 피아식별이 쉽지 않았고 미사일의 신뢰성은 낮았다. BVR 교전은커녕 대부분 근접한 거리에서 도그파이트(dogfight)를 벌이기 일쑤였다. 서류 속의 제원표상으로 현저히 우수하던 전투기는 실제 전장에서 무기력했다. 최첨단이라는 F-4 팬텀 II 전투기가 제원상 열등한 MiG-21 전투기와의 도그파이트에서 줄줄이 격추되는 일이 벌어졌다.

F-4 팬텀 II와 나란히 전시된 MiG-21. 제원상 F-4 팬텀 II 전투기보다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MiG-21 전투기는 도그파이트에서 F-4 팬텀 II 전투기를 줄줄이 격추했다. <출처: (cc) Clemens Vasters at wikimedia.org>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물러나면서 미군도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첨단 전투기나 폭격기를 개발하기 위해 더 이상 재원을 무한히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한편 고가의 무기체계 자체뿐만 아니라 이를 가지고 어떻게 싸울 것이냐의 전술도 문제였다.


전투기 마피아의 등장

베테랑 조종사이자 혁신적인 이론가였던 존 보이드 대령 <출처: 미 공군>

이러한 기존의 접근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면서도 이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미 공군의 에이스이자 전략가였던 존 보이드(John Richard Boyd, 1927~1997) 대령이었다. 보이드는 6·25전쟁 당시 베테랑 F-86 조종사로 참전했었고 미 공군 전투비행학교(Fighter Weapons School) 비행교관을 역임한 실무가였다. 또한 그는 국방분석가인 토머스 크리스티(Thomas P. Christie)와 함께 에너지-기동성 이론(energy–maneuverability theory)을 창시한 이론가이자 OODA(Observation Orientation Decision Action) 루프를 제시한 군사전략가이기도 했다.

보이드가 1966년 펜타곤으로 전입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보이드는 당시 F-X 사업을 주도하면서 F-111과 같은 대형 기체가 전투기로서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자신의 에너지-기동성 이론으로 증명했다. 이에 따라 F-X의 요구조건에서 가변익이 제외되었고, 이륙중량도 6만 파운드에서 4만 파운드로 줄어들었으며 최고속도도 마하 2.7에서 마하 2.3~2.5 수준으로 낮춰졌다. 자칫 F-111의 공군 버전이 될 뻔했던 F-X는 보이드의 노력 덕분에 1972년에 F-15라는 기동성 높은 전투기로 탄생했다. 그러나 보이드가 보기에 F-X는 여전히 너무 비싸고 무거운 전투기였다.

비용 및 효율성 분석의 대가인 피에르 스프리. 최근에는 F-35의 맹렬한 반대자로 유명하다. <출처: 미 공군>

한편 보이드의 개혁적인 성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우선 국방장관실의 시스템 분석가이자 전투기 비용 및 효율성 분석의 대가인 피에르 스프리(Pierre Sprey)와 보이드의 친구이자 전투기설계자인 해리 힐레이커(Harry Hillaker)가 보이드와 만나 3인방을 결성하면서 소위 ‘전투기 마피아(Fighter Mafia)’가 시작되었다. 각기 입장은 틀렸지만 이들은 경량전투기사업의 기획을 맡아 F-X보다 가볍고 값싸면서도 공중전에서 우수한 전투기를 구상하고자 했다.

F-16의 설계 책임자인 해리 힐레이커(사진 맨 왼쪽)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전투기 마피아는 미 공군의 숙원사업인 F-X 도입을 위협하는 존재들이었다. 보이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업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보수적인 공군 수뇌부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의 설계자로 F-X 설계안을 담당하던 힐레이커는 F-111을 다시 제안하려는 본사의 결정에 반발하며 전투기 마피아의 사상을 반영하려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해군 테스트파일럿(시험비행사) 출신의 항공개혁가인 찰스 마이어스(Charles E. Myers), 공군 테스트파일럿인 에버레스트 리치오니(Everest E. Riccioni) 대령 등이 합류하고 에글린(Eglin) 공군기지 시절의 동료인 토머스 크리스티까지 가세하면서 전투기 마피아는 인맥과 세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보이드 대령의 주장에 따라 F-X 사업은 기동성과 공중우세에 중점을 두고 F-15를 선정하게 되었다. <출처: 미 공군>

경전투기 사업의 시작

F-X 사업으로 선정될 기체는 너무도 가격이 비쌌기에 2만 5,000파운드급 경전투기를 개발하는 ADF(Advanced Day Fighter: 차기 주간전투기) 사업도 동시에 추진되었다. 그러나 1967년 최고속도 마하 3의 MiG-25가 등장하면서 미 공군은 공중전 우위가 위협받게 되었다면서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공군은 F-X의 획득에 최우선순위를 부여하면서 ADF 사업을 취소시켰다. 물론 이런 판단에 반대하는 전투기 마피아들은 바로 ADF 사업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다.

MiG-25의 등장이 부각되면서 미 공군은 F-X에 사활을 거는 반면 ADF는 취소했다. <출처: 록히드 마틴>

우선은 연구개발이 중요했다. 1969년 이들은 우선 작으나마 예산을 확보하여 ‘균형분석에 기반한 에너지-기동성 이론의 실용화에 대한 연구’를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노스럽(Northrop)에 할당했다. ADF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은 F-X를 선호하는 공군에게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휴렛패커드의 창업자이자 당시 국방차관으로 재직하던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를 비롯한 개혁 성향의 민간관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사업은 탄력을 받아 부활했다.

경전투기(LWF) 사업을 위해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다양한 설계안을 검토했다. <출처: 록히드 마틴>

이에 따라 1971년 5월 공군 시제기연구단이 창설되었고, 당연히 보이드도 핵심인사로 참여했다. 여섯 가지 제안 형상 가운데 두 가지 형상에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경전투기(LWF, Lightweight Fighter) 형상이었다.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는 1972년 1월 6일에 발행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주로 3만~4만 피트 상공에서 작전하면서 마하 0.6~1.6 속도로 기동할 수 있는 선회율과 가속 성능이 우수한 2만 파운드급 경전투기를 상정하고 있었다. 이는 베트남전과 6일 전쟁,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 당대의 항공전을 분석한 결과에 의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으로 당시 대당 순수기체 가격을 300만 달러로 상정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최종 제안한 모델 401-16B <출처: 록히드 마틴>

치열한 1차 경쟁

제안요청서에는 모두 5개 업체가 응찰했다. 선행연구를 수행했던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노스럽 이외에도 보잉(Boeing), 록히드(Lockheed), 그리고 보우트(Vought), 이 3개 업체가 추가로 참가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이미 수년간 경전투기를 연구해왔기에 다양한 형상들을 가지고 있었다. 주익과 수직미익 등의 형상 차이가 있었지만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모델들은 기본적으로 단발 엔진에 동체 아래 하나의 커다란 공기흡입구를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결국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수직미익 1개와 앞전연장(LERX, Leading Edge Root eXtension)을 채택한 모델 401-16B을 제출했다.

보잉이 제안한 모델 908은 경전투기 요구사항에 가장 가까웠지만 혁신적 기술이 부족하여 탈락했다. <출처: Public Domain>

보잉은 모델 908을 제안했는데, 단발 엔진에 둥근 기체 아래 넓은 흡입구와 후퇴익을 장착한 형태로 경전투기로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보우트는 그간 성공을 거둔 F-8 크루세이더(Crusader)와 A-7 콜세어(Corsair) II에 바탕한 개량형인 V-1100을 선보였다. 록히드는 역시 F-104를 개량한 CL-1200 랜서(Lancer)를 선보였는데, 이는 F-5E 타이거(Tiger) II에 대항하여 수출시장을 겨냥하는 경전투기로 개발된 모델이다. 미 공군은 한때 이 모델에 관심이 있어 X-27이라는 이름으로 시험평가를 하기도 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취소했는데, 록히드가 다시 이 모델을 들고 나온 것이다.

보우트가 제안한 V-1100 모델 <출처: Public Domain>

선행연구 경험이 있던 또 다른 후보인 노스럽은 다른 제안기종들과는 달리 홀로 쌍발 엔진을 갖춘 P-600 모델을 제안했다. 원래 노스럽은 F-5E를 대체하는 고성능 기종으로 P-530 모델을 개발했었다. P-530은 비록 F-5에 바탕하고 있었지만 기체가 커지면서 앞전연장(LERX)을 채용하여 고받음각에서 비행 성능이 향상되었다. P-530 모델은 이미 1971년에 공개된 바 있으나 당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이 P-530을 손봐서 경전투기 사양에 맞도록 제시한 것이 바로 P-600 모델이다.

록히드가 제안한 CL-1200 랜서 <출처: Public Domain>

제안평가는 1972년 3월에 있었는데, 다섯 가지 제안 형상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보잉의 모델 908이었다. 점수 차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모델401-16B와 노스럽의 P-600이 그 뒤를 이었다. 보우트의 V-1100 모델과 록히드의 CL-1200은 제안요청서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후보기종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추가적인 검토 결과 보잉도 사업 후보기종에서 제외되었다. 보잉의 모델이 제안요청서에 가장 잘 부합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는 데는 인색했기 때문이다.

노스럽의 P-530 모델 <출처: Public Domain>

경전투기 사업의 목표 자체가 신기술을 활용하여 저렴한 기체를 양산하는 것이기에, 결국 서로 다른 성격의 기체를 제시한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노스럽만이 후보로 남았다. 1972년 4월 12일 시맨즈(Robert Seamans) 미 공군성 장관은 두 업체를 후보자로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YF-16, 노스럽은 YF-17의 형식명을 부여받게 되었고, 양사는 각각 2대의 시제기를 만들어 경쟁에 돌입해야만 했다.

기종 선정 경쟁 중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YF-16(왼쪽)과 노스럽의 YF-17(오른쪽) <출처: 미 공군>

시제기들 사이의 대결

제일 먼저 시제기를 만든 것은 제너럴 다이내믹스였다. YF-16의 수석설계자는 전투기 마피아의 일원이던 해리 힐레이커로, 그의 손을 거친 YF-16 시제1호기는 계약일로부터 21개월 만인 1973년 12월 13일에 롤아웃되었다. 비행시험은 이듬해 1월 20일부터 에드워즈(Edwards) 공군기지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비행은 하이택싱(High-Taxing: 이륙은 하지 않고 활주로를 고속으로 달리는 것)만을 할 예정이었으나, 택싱 도중 기체가 불안하자 시험조종사인 필 외스트리허(Phil Oestricher)는 기체를 띄워서 안정시킨 후 주기했다.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플라이-바이-와이어(FBW, Fly-By-Wire)’ 디지털 조종계통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으로 곧바로 수정되었다. 이후 YF-16 시제1호기는 1974년 2월 2일 정식으로 초도비행을 실시했다. YF-16 시제2호기는 5월 9일이 비행에 나섰다. 노스럽은 몇 개월 뒤인 6월 9일에 YF-17 시제1호기를, 8월 21일에 시제2호기를 띄웠다. 이에 따라 1974년부터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4년 1월 20일 디지털 조종계통 이상으로 예정에 없던 초도비행을 실시하게 된 YF-16의 모습 <출처: 록히드 마틴>

한편 1974년 4월 당시 슐레진저(James Schlesinger) 국방장관은 경전투기 사업을 제공전투기(ACF, Air Combat Fighter) 사업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전투기 기종은 주간전투기에서 다목적 전투기로 전환되었으며, F-X 사업을 보완하여 F-4와 F-105 전투기를 대체하는 기종으로 다량 구매할 계획이었다. 게다가 NATO 회원국들 가운데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F-104G를 대신할 기종을 찾고 있었는데, 이들은 미 공군과의 협약을 통해 경전투기 선정 기종을 전투기로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한편 미 의회는 공군과 해군의 전투기사업을 일원화하라면서 해군제공전투기(NACF, Navy Air Combat Fighter) 사업에 예산을 돌려 경전투기 사업의 결과와 연동시킬 수 있는 고리를 마련했다.

선정 과정에서 YF-16은 현저하게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며 경전투기로 선정되었다. <출처: 록히드 마틴>

경전투기의 시험평가는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미 공군과 해군 조종사들이 참여한 시험평가에서 각 기종은 A-37B 드래곤플라이(Dragonfly)부터 F-106 델타 다트(Delta Dart), F-4 팬텀 II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소련제 MiG-17과 MiG-21하고도 모의공중전을 벌이면서 능력을 과시했다. 공중전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인 것은 단연 YF-16이었다. YF-16은 공중기동에서 F-4E 기종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체공시간도 훨씬 길었다. 또한 경전투기가 다목적 전투기가 됨에 따라 타격 능력도 시험평가 대상이 되었다. 시험평가 결과,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인 것은 YF-16이었다. 미 공군은 1975년 1월 13일 YF-16을 경전투기 사업 기종으로 선정했다.

YF-16(왼쪽)과 나란히 주기된 FSD 1호기(오른쪽) <출처: 록히드 마틴>

시제에서 양산으로

YF-16의 양산이 결정되면서 체계 개발이 진행되어 단좌형인 F-16A가 6대, 복좌형인 F-16B가 2대로 모두 8대의 체계 개발(Full Scale Development) 기체가 만들어졌다. 워낙 항공역학적으로 뛰어난 기체였으므로 양산화하는 과정에서 시제기의 비행 성능을 감소시킬 만한 변화는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APG-66 다기능 레이더를 기수에 장착하는 등 새롭게 채택된 항전장비를 통합했고 기골도 보강했다. 또한 주익 면적이 약 10%, 수직미익과 벤트럴 핀(ventral fin)이 15%, 플래퍼론(flaperon)과 스피드 브레이크(speed brake)가 10% 커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FSD 1호기는 1976년 10월 20일에 출고되어 12월 8일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F-16은 통상 블록으로 구분되는데, FSD기는 부여된 공식 명칭이 없이 블록 0로 일컬어진다. 블록 0 기체들은 모두 시험평가를 위해 사용되었다.

노르웨이 공군의 F-16 블록 1 <출처: 록히드 마틴>

사실 체계 개발 과정에서도 과연 미 공군이 경전투기를 구매할 것이냐를 놓고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미 공군은 1977년 초에 모두 738대의 F-16을 주문했다. 양산은 1978년부터 시작되어 블록 1 F-16 초호기(기체번호 78-0001)는 1978년 8월 7일에 초도비행을 실시한 후에 미 공군에 인도되었다. 미 공군 기체는 텍사스 주 포트 워스(Fort Worth)의 미 공군 제4번 플랜트에서 생산되었다. NATO 공군용 기체는 벨기에 116대, 덴마크 58대, 네덜란드 102대, 노르웨이 72대였는데, 네덜란드의 포커(Fokker) 사와 벨기에의 SABCA(Sociétés Anonyme Belge de Constructions Aéronautiques) 사에서 면허생산되었다.

F-16은 다목적 전투기로서 페이브웨이(Paveway) 레이저 유도폭탄을 투하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출처: 록히드 마틴>

F-16은 1981년까지 초도양산형인 블록1 94대와 블록5 197대가 미 공군과 NATO 공군에 공급되었다. 한편 초도형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페이서 로프트(Pacer Loft)’ 사업이 실시되어 이들 기체는 1982년에 블록 10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블록 10은 1980년부터 생산되었고, 1982년부터는 블록 15가 양산되었다. 블록 15는 MSIP(Multinational Staged Improvement Program: 다국적 공통 성능개선사업) 개량 등을 거쳐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F-16 계열 가운데 가장 많이 생산된 버전이기도 하다.

RIM-7 시 스패로(Sea Sparrow) 미사일을 발사하는 F-16A 블록 15H 전투기 <출처: MSgt. Michael Ammons / 미 공군>

한편 1984년부터 생산된 블록 25부터는 웨스팅하우스의 APG-68 레이더가 장착되면서 F-16C/D형(C는 단좌형, D는 복좌형)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블록 25는 모두 244대가 만들어졌는데, 오직 미 공군에만 공급되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던 것은 블록 30/32부터다. 이들 기체부터는 PW(Pratt & Whitney) 사의 F100-PW-220 엔진과 GE(General Electric) 사의 F110-GE-100 엔진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도록 되었다. 블록 30은 1987년 7월부터 공급이 시작되면서 미 공군 기체의 근간을 이뤘으며, 1989년까지 모두 733대가 생산되었다. 블록 30 가운데는 미 해군 전투비행학교[Navy's Fighter Weapons School: 일명 탑건(Top Gun)]에서 어그레서(aggressor: 가상적기)로 사용될 F-16N 26대도 포함되었다.


첨단 전투기로 진화하다

F-16 블록 40/42부터는 랜턴(LANTIRN, Low Altitude Navigation and Targeting Infrared for Night)이 통합되면서 F-16C/D는 야간 전천후 다목적 전투기로 거듭나게 되었다. APG-68(V5) 레이더와 GPS 장비에 각종 전자전대책까지 통합되면서 현대전의 요구에 충실한 주력 타격기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블록 40/42는 1988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여 1995년까지 생산되었다.

주한 미 공군 소속의 F-16C 블록 40J 전투기 <출처: SSgt. Nicholas Wilson / 미 공군>

그러나 당대 F-16의 최첨단 사양은 1991년부터 미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한 블록 50/52였다. 블록 50/52는 적 방공망 제압 임무인 와일드 위즐(Wild Weasel)을 수행하는 기체로 HTS(HARM Targeting System) 포드와 함께 무려 4발의 AGM-88 HARM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었다. 또한 AGM-84 하푼(Harpoon) 대함미사일을 운용하도록 완벽히 통합된 것도 블록 50/52가 처음이었다. 블록 50/52는 1996년부터 발주되기 시작하여 미국, 한국, 터키 등에서 800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레드 플래그(Red Flag)' 15-3 훈련에 참가 중인 미 공군 블록 50 전투기 <출처: SSgt. Siuta B. Ika / 미 공군>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에 아랍에미리트(UAE, United Arab Emirates)가 장거리 타격기 80대 구매 의사를 타진해오자, 록히드 마틴은 블록 60을 제안했다. 블록 60은 CFT(conformal fuel tanks: 컨포멀 연료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출력이 향상된 GE-132 엔진을 장착했다. APG-80 AESA 레이더를 포함하여 각종 첨단 항전장비까지 탑재함으로써 블록 60은 명실공히 4.5세대 전투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블록 60부터는 F-16E/F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스라엘도 블록 60과 유사한 사양을 F-16I라는 형식명으로 102대를 2000년까지 도입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는 항전장치를 더욱 최첨단으로 바꾼 블록 61도 도입했다.

아랍에미리트 공군용 F-16E 블록 60 전투기 <출처: 록히드 마틴>

F-16은 여전히 생산 중으로 2012년에는 4,500번째 기체가 생산되었다.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은 여전히 F-16의 신형 기체를 판촉 중인데, 인도에서는 F-16IN 슈퍼 바이퍼(Super Viper)로 MRCA(Multi-Role Combat Aircraft: 다목적 전투기)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2016년에는 최신형 블록 70/72의 인도 생산까지 제안하여 현재 타타(Tata Advanced Systems Ltd.) 사와 협약을 맺은 상태다. 그러나 록히드 마틴은 현재 주력 생산 기종을 F-35로 바꾸고 있는 중으로, 포트 워스의 생산시설은 2017년 9월까지만 F-16을 생산하고 이후 2년간 이전 작업 후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빌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록히드 마틴이 여전히 세일즈 중인 F-16V 블록 70 전투기 <출처: 록히드 마틴>

그렇다고 해서 F-16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F-16은 현역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수명연장사업(SLEP, Service Life Extension Program)과 항전장비 업그레이드 사업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CAPES(Combat Avionics Programmed Extension Suite) 사업으로 레이더를 AESA로 교체하고 비행컴퓨터 등 항전장비를 첨단화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미 공군은 예산이 부족하여 수명연장사업과 CAPES 사업을 동시에 실시하지 못하고 F-16C/D 블록 40/42/50/52 300여 대를 대상으로 수명연장사업만을 실시하기로 했다. 한편 CAPES에 해당하는 업그레이드를 실시한 대만 공군의 F-16은 F-16V 바이퍼(Viper)로 분류된다. 최근 KF-16의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인 대한민국 공군은 애초에 BAE 시스템즈를 사업자로 선정했다가 가격 상승을 이유로 록히드 마틴으로 사업자를 재변경했다. 이에 따라 KF-16은 CAPES에 기반하는 ‘바이퍼’ 사양으로 개량될 예정이다.

* F-16 전투기의 특징과 운용 현황은 다음 회에 소개됩니다.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