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큰 전투기 Tu-128 피들러
개발의 역사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되었지만 너무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다. 2,000여 만 명이 사망하고 보물 창고인 서부 러시아, 우크라이나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당연히 전쟁 재발을 막으려는 의지는 강고했다. 독일 분단에 앞장섰고 동유럽을 위성국가화한 것으로도 부족해 바르샤바 조약을 명분 삼아 엄청난 소련군을 전진 배치했다. 한마디로 전쟁이 다시 벌어진다면 소련 밖에서 싸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종전 직전에 등장한 미국의 원자폭탄은 소련의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응 전력을 갖추기 전까지 전략적 우위를 결코 담보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결국 4년 만인 1949년에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과 같은 공격 전력을 보유하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미국의 핵 공격을 막기 위한 시도를 병행했는데, 핵심은 당시 유일한 원자폭탄 운반 수단인 전략폭격기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폭격기는 뛰어나지만 소련 본토 공격에 나선다면 항속거리 때문에 호위기의 엄호 없이 작전을 벌여야 하므로 전투기로 충분히 막을 수는 있다. 문제는 조기 경보 수준이 떨어지던 시기여서 언제, 어디로 침투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에 미국의 움직임을 파악한 후 즉시 출격해 국경 밖에서 차단하는 것이고 만일 이것이 실패한다면 전략 목표에 다다르기 전에 격추시키는 것이 차선이었다.
이를 위해 전투기를 산개해서 배치해야 하지만 국토가 너무 커서 도대체 감이 서지 않았다. 더구나 이전에는 국방과 관련해 논외로 치던 북극도 막아야 했지만 혹한지여서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는 비행장이나 관제 기지를 설치하기가 불가능했다. 이에 1955년 소련 방공군(PVO, Protivo-Vozdushnaya Oborona)은 지상 기지의 제한을 덜 받는 장시간 체공이 가능하고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요격용 전투기의 도입을 고려했다.
다시 말해 전투기를 항상 주요 상공에 대기시켜놓고 있다가 유사시 즉시 요격에 들어간다는 생각이었다. 소련 전투기는 동체가 작아 기동력이 좋지만 작전 시간과 반경이 작았으며 지상관제의 유도를 받아 작전을 펼쳤다. 따라서 새로 구상한 전투기는 장시간,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고 단독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기체의 크기가 필연적으로 커져야 했으므로 소련 전투기 특유의 날렵한 기동력 등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유일한 목표인 미국의 폭격기도 기동력이 좋지 않았으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전투기의 트렌드는 속도였지만 막 실용화되기 시작한 공대공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으면 무조건 빠를 필요는 없었다. 다시 말해 전투기이지만 적 전투기와 공대공 전투를 벌일 능력은 필요 없고 폭격기만 요격할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이러한 당국의 요구에 따라 많은 설계국들이 개발에 참여했다.
소련 방공군의 요구 조건을 검토한 투폴레프(Andrei Tupolev)는 새로운 대형 전투기를 만드는 대신 기존의 폭격기를 기반으로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에 소련 최초의 초음속 폭격기 경쟁을 벌이다 Tu-22에 밀려 시제기 1기로 끝난 Tu-98을 기반으로 하는 전투기를 개발하기 시작해 1961년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소련의 방공 요격용 전투기였던 Tu-128 피들러(Fiddler)는 그렇게 탄생했다.
특징
Tu-128은 날렵한 후퇴익을 갖추어 목표물이 확인되면 최대 마하 1.5의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으면서도 효율이 좋은 률카(Lyulka) AL-7F-2 터보팬 엔진을 장착한 덕분에 장시간 비행이 가능했다. 3시간 이상 2,500km가 넘는 비행이 가능해서 이론적으로 3, 4개 기지에 배치하면 직선으로 거리가 5,000여 km 정도인 소련의 북극권 상공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별도의 요원이 탑승해 운용한 RP-S 레이더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인 50km 전방까지 추적이 가능하고 3, 4기가 편대를 이루면 조기경보기 역할까지 일부 수행할 수 있었다. 때문에 지상의 지시를 받지 않고 단독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개발 당시에는 Tu-28로 명명되었던 Tu-128은 모든 개발 목표를 달성하고 1963년부터 양산을 개시해 이듬해부터 실전에 배치되었다.
Tu-128은 폭격기가 기반이어서 길이만도 30m가 넘어 처음 보는 이라면 전투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기체가 크다. 덕분에 Tu-128은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큰 전투기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후계기인 MiG-31 등장 이전까지 최대이륙중량을 보유한 전투기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착한 무기는 사거리가 15km(초기형. 후기형은 25km)인 R-4 공대공미사일 4발이 유일하다.
운용 현황
Tu-128은 1970년까지 총 198기가 제작되어 소련의 항공 부대 중 최고 자산이 우선 배분되는 소련 방공군에서만 운용했다. 이처럼 비밀스럽게 취급되다 보니 공개된 자료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설사 대외 공급을 허용했다 하더라도 워낙 제한된 목적에만 투입할 수 있어서 도입할 만한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Tu-128은 냉전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1990년까지 활약하고 전량 퇴역했으며 실전 기록은 없다.
변형 및 파생형
● Tu-28(피들러-A): 프로토타입
● Tu-128(피들러-B): 1964년부터 실전 배치된 초기 양산형
● Tu-128UT(Tu-28UT): 레이더를 제거하고 콕핏(cockpit)을 추가한 훈련용 기종
● Tu-128M: 저고도 요격 능력을 향상시킨 개장형
제원
- 형식: 쌍발 터보제트 전투기
- 전폭: 30.06m
- 전장: 17.53m
- 전고: 7.15m
- 주익면적: 96.94㎡
- 최대이륙중량: 43,000kg
- 엔진: 률카(Lyulka) AL-7F-2 터보제트(22,270파운드)×2
- 최고속도: 시속 1665km(마하 1.5)
- 실용상승한도: 15,600m(51,184피트)
- 전투행동반경: 2,565km
- 무장: R-4 공대공미사일×4
- 항전장비: RP-SM Smerch-M 레이더
- 승무원: 3명(조종사 2명, 레이더 관제사 1명)
- 초도비행: 1961년 3월 18일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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