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식 보병전투차
개발의 배경
냉전 시기 일본 자위대의 작전 목표는 소련 침공 방어였다. 해상에서 작전하는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는 물론이고 항공자위대(航空自衛隊)도 대함공격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육상자위대(陸上自衛隊)도 상륙하려는 또는 상륙한 적을 해안가에서 저지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상정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군단급인 방면대 5개, 사단 9개, 그리고 여단 5개를 보유하고 있는 육상자위대는 소련과 접한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를 방어하는 북부방면대(北部方面隊)에 제2·7사단과 제5·11여단을 배치했다. 전체 병력 대비 홋카이도에 배치한 병력 규모를 볼 때 소련의 침공에 많은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홋카이도에 배치된 제7사단은 육상자위대에서 유일한 기갑사단으로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까지 육상자위대는 74식(式) 전차와 함께 움직일 보병수송용 60식(式) 장갑차와 73식 장갑차를 운용하고 있었다. 60식 장갑차는 유선유도방식의 64식 대전차유도탄(MAT, Missile Anti Tank)을 장착하기도 했지만, 두 장갑차 모두 기본 무장은 12.7mm와 7.62mm 기관총에 불과했고, 장갑도 기관총탄 정도를 막는 수준으로 후방 병력실에 탑승한 보병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서독과 소련, 그리고 미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장과 장갑을 강화한 보병전투차(IFV, Infantry Fighting Vehicle)라는 새로운 장갑차량을 개발하여 배치했다. 세계 최초의 보병전투차는 소련이 1967년 군사 퍼레이드에서 공개한 BMP-1이다. 73mm 포와 AT-3 대전차미사일로 무장한 BMP-1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이 사용하면서 최초로 실전을 치렀고, 서독의 마르더(Marder), 미국의 M2 브래들리(Bradley)와 같은 다른 국가들의 보병전투차 개발을 자극했다.

일본 육상자위대도 이들 국가처럼 전차와 함께 작전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을 갖춘 보병 수송이 가능한 장갑차를 원하게 되었다. 당시 방위청(현 방위성) 기술연구본부가 신형 장갑차량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포탑과 차체는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이, 35mm 기관포는 일본제강소(日本製鋼所)가, 그리고 유도탄 발사장치는 가와사키중공업 (川崎重工)이 개발을 담당했다.

육상자위대는 당시 개발 중이던 90식 전차의 배치 시기에 맞춰 신형 보병전투차를 개발하길 원했다. 신형 보병전투차 개발은 1980년부터 시작되었고, 1984년에 시제차량 2대가 완성되었다. 1986년부터 시제차량에 대한 기술 시험과 실용 시험을 거쳐, 1989년 육상자위대에 89식 장갑전투차라는 이름으로 제식화되었다.
특징
육상자위대에서 89FV(Fighting Vehicle)로도 불리는 89식 보병전투차는 상륙한 소련 기갑차량을 장거리에서 파괴하기 위해 강력한 화력을 요구 받았지만, 군수지원 문제로 인해 육상자위대가 기존에 보유한 탄약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육상자위대가 사용하던 기관포 중에서 가장 큰 35mm 기관포와 탄약을 채택했다.

35mm 기관포로는 스위스 욀리콘 콘트라베스(Oerlikon Contraves)의 GDF-001 기관포를 일본제강소가 L-90 견인대공포용으로 면허생산한 90구경 35mm KDA 기관포를 개량한 KDE 기관포를 채택했다. KDE 기관포는 KDA 기관포 포구에 달린 포구 속도 측정 장치가 생략되고 대신 나팔형 소염기가 장착되었다. 발사속도도 KDA 기관포의 분당 550발에서 분당 200발로 조정되었다.
35mm 포탄으로는 장갑차량용 철갑탄(AP, Armor Piercing)과 분리식 철갑예광탄(APFS-T, Armour Piercing Fin Stabilized-Tracer), 그리고 대전차미사일 진지나 기관포 진지용 고폭소이예광탄(HEI-T, High-Explosive Incendiary-Tracer)을 사용한다. APDS-T탄은 400m 거리에서 70mm 두께의 압연 균질 강판(RHA, Rolled homogeneous armour)을 관통할 수 있다. 35mm 기관포탄은 251발이 탑재되며, 최대사거리는 3,000m다.

정면에서 봤을 때 기관포 오른쪽에 장착된 74식 동축 기관총은 근접제압사격용으로 7.62mm 62식 기관총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실탄 2,000발이 탑재된다. 포탑 양옆에는 상륙주정과 전차 공격이 가능한 79식 대주정 대전차 유도탄 발사기가 1개씩 장착되어 있다. 79식 대주정 대전차 유도탄은 사정거리가 4,000m이며, 적 상륙정과 상륙에 성공한 적 장갑차량 저지를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대전차고폭(HEAT, High Explosive Anti Tank) 탄두를 사용하지만, 상륙주정의 경우 근접신관을 사용한 고폭탄 모드, 전차의 경우 폭발력이 집중되는 HEAT탄 모드로 기폭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유도 방식은 유선 반자동 지령유도(SACLOS, Semi-Automatic Command to Line of Sight) 방식을 사용한다. 차체 후방 병력실에 예비탄 2발을 적재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재장전이 가능하지만, 조준장치와 삼각대를 사용하여 독립 운용도 가능하다.

포탑은 2인승이며, 정면에 봤을 때 왼쪽에 위치한 차장용 조준경에는 레이저거리측정기가, 오른쪽에 있는 포수용 조준경에는 열영상장비가 장착되어 있다. 포수용 열영상 조준경은 목표 자동 추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 야간에도 작전이 가능하다. 포탑 앞쪽 중앙부에는 적 레이저 유도무기 조준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저경보기(LWR, Laser Warning Receiver )가 장착되어 있는데, 포탑 양쪽의 4연장 연막탄 발사기가 여기에 연동되어 있다.
차체는 방탄 성능이 우수한 압연 강판을 사용했고, 전면과 측면 모두 경사를 가지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개발한 600마력의 6SY31WA 6기통 수랭식 디젤엔진과 히타치 제작소(日立製作所)가 제작한 전진 4단 후진 2단의 GSE 자동변속기로 구성된 파워팩(powerpack) 은 앞에서 봤을 때 차체 전방 오른쪽에 장착되며, 조종수는 반대편인 왼쪽에 탑승한다. 톤당 마력비는 22.72이며, 최고속도는 70km/h지만 후진할 때도 42km/h로 달릴 수 있다.

차체 후방에는 7명의 보병이 탑승하는 병력실이 위치하며, 병력실 중앙 바닥에 예비 미사일을 포함한 분대 장비를 탑재하고 서로 등을 대고 3명씩, 6명이 탑승하도록 되어 있다. 병력실 위 양쪽과 탑승구 위에는 밖을 볼 수 있도록 잠망경이 2개씩 달려 있다. 또한, 탑승 보병이 89식 소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총안구가 차체 양 측면에 각각 3개, 후방 탑승구에 1개가 있다.
총안구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 차체 좌측과 우측의 배치가 틀리다. 우측면은 파워팩이 있어 3개가 모여 있는데, 맨 앞쪽 총안구는 최대한 전방을 향하고 있으며, 나머지 2개는 옆을 향해 있다. 좌측면은 조종석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조종석 바로 뒤에 위치한 총안구는 최대한 전방을 향하며, 병력실에 있는 나머지 2개는 각각 전방 우측과 옆을 향하고 있다. 이런 배치로 병력실 내부의 병력 배치 간섭을 해결했다. 총안구는 평상시에는 막아두고 있다가 필요할 경우 개방할 수 있다.

89식 보병전투차의 총안구 채택은 육상자위대의 상륙저지라는 목표 때문에 나온 것이다. 상륙저지를 위해서 적에게 측면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서 육상자위대의 90식 전차, 그리고 함께 작전할 89식 보병전투차는 전면 방어에 치중하게 되었다. 89식 보병전투차는 중량 제한으로 측면 장갑을 늘리지 못하면서 발생한 측면 방어력 부족을 탑승 보병을 활용할 수 있는 총안구로 보강하고 있다.
89식 보병전투차는 자체 도하 능력이 없는데, 도로망이 발달했고 대부분 하천에는 다리가 놓여 있다는 일본 국내 사정을 감안한 결정이다.

운용 현황
육상자위대는 89식 보병전투차를 300대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1989년부터 2004년까지 68대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1989년 8대를 시작으로 1990년과 1991년 9대씩을 도입했지만, 이후 매년 생산량이 줄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제작사의 제작 라인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1대씩만 생산했다. 적은 생산량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68대라는 숫자는 90식 전차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341대 생산된 것에 비해서도 매우 적은 수치다. 이는 전차와 89식 보병전투차를 함께 생산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여 90식 전차 생산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배치 수량이 적기 때문에 89식 보병전투차로 대체하려던 73식 장갑차도 계속 운용되고 있다 (2018년 1월 기준).
68대라는 적은 생산량 때문에 배치된 부대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북부방면대에는 제7사단 제11 보병연대 3개 중대와 혼성단 교육대에 배치되었다. 교육훈련을 하는 시즈오카(静岡)현 고텐바(御殿場)시에 있는 후지교도단(富士教導団)에도 1개 중대가 배치되었다.

파생형
89식 보병전투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99식 155mm 자주포와 탄약운반장갑차가 개발되었다. 하지만 155mm 곡사포를 탑재한 포탑의 중량 때문에 주행륜이 7개로 늘어났다.

제원
- 구분: 보병전투차(IFV)
- 제작사:
└ 포탑과 차체 -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
└ 35mm 기관포 - 일본제강소(日本製鋼所)
└ 유도탄 발사장치 - 가와사키중공업(川崎重工)
- 차량 길이: 6.8m
- 차량 전폭: 3.2m
- 차량 전고: 2.5m
- 전투중량: 27톤
- 엔진: 미쓰비시 6SY31WA 6기통 수랭식 디젤엔진, 600마력
- 변속기: 히타치 제작소 GSE 자동변속기, 전진 4단 후진 2단
- 최고속도: 70km/h(전진) / 42km/h(후진)
- 항속거리: 400km
- 무장:
└ KDE 35mm 기관포 1문, 251발
└ 74식 7.62mm 동축기관총 1정, 2,000발
└ 79식 대주정 대전차 유도탄 발사기 2기, 미사일 4발(예비탄 2발 포함)
- 탑승인원: 승무원 3명(차장 1명, 조종수 1명, 포수 1명) + 기계화보병 7명
- 가격: 6억 엔
저자 소개
최현호 | 군사 칼럼니스트
오랫동안 군사 매니아로 활동해오면서 다양한 무기 및 방위산업 관련 정보를 입수해왔고, 2013년부터 군사커뮤니티 밀리돔(milidom)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현재 방위산업진흥회 <국방과 기술>, 국방홍보원 <국방저널> 등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고, 기타 매체들에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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