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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1 워커 불독

바래미나 2016. 8. 1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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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주의 포트 조지 G. 미드 요새 박물관에 전시 중인 M41 워커 불독 <출처: (cc) Wilson44691 at Wikimedia.org>

메릴랜드 주의 포트 조지 G. 미드 요새 박물관에 전시 중인 M41 워커 불독 <출처: (cc) Wilson44691 at Wikimedia.org>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스미스 특임대가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죽미령에서 참패를 당하자, 미 제24사단 34연대는 천안 일대에 다음 방어선을 설치했다. 전황은 불리해 보였지만 이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1950년 7월 8일, M24 채피(Chaffee) 경전차 8대로 구성된 미 제78전차대대 소속 전차소대가 막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서둘러 전개한 전차소대원들은 앞으로 그들이 맞붙어야 할 북한군의 T-34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전차소대장은 전선 시찰 도중 마주한 미 제8군 사령관으로부터 “귀관은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가?”란 질문을 받았을 때 “무조건 돌격할 예정입니다.”라고 대답했을 만큼 자신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그 사령관은 제2차 대전 당시 패튼 휘하의 제20군단을 지휘했기에 기갑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경전차로 T-34를 향해 정면 돌격하는 전술은 상당히 무모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혈기왕성한 젊은 소대장에게 신중한 작전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7월 10일, 전의1) 부근에서 매복하던 8대의 M24가 경부가도를 따라 멀리서 등장한 11대의 북한군 T-34를 향해 선제 포격을 가한 후 일제히 돌격하면서 마침내 전차부대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기습에 나선 미군은 선두에 있던 T-34를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사령관의 우려대로 곧 전세가 역전되었다. 결국 반 시간도 안 되어 2대의 M24가 처참한 최후를 맞고 5대는 반파되어 전선에서 이탈하면서 한국전쟁 최초의 기갑전은 막을 내렸다.

사실 M24는 제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한 정찰 및 보병 지원용 경전차여서 기갑전을 펼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에 따라 미군 당국도 이미 1947년부터 이를 대체할 보다 강력한 경전차 제작에 나선 상태였다. 그렇게 해서 1951년부터 본격 양산된 새로운 경전차는 전차소대장의 만용을 걱정했던 사령관을 기려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전차가 바로 작지만 강력한 공격력으로 유명했던 M41 워커 불독(Walker Bulldog)이다.

 

 

 



경전차의 이상과 현실

 

전의 전투에서 생존한 M24 채피 전차와 대원들. M24의 빈약한 화력으로는 T-34와 대적하기 어려웠다. 제2차 대전 당시 이러한 약점을 절감한 미군 당국은 이미 1947년부터 새로운 경전차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출처: 미 육군>
전의 전투에서 생존한 M24 채피 전차와 대원들. M24의 빈약한 화력으로는 T-34와 대적하기 어려웠다. 제2차 대전 당시 이러한 약점을 절감한 미군 당국은 이미 1947년부터 새로운 경전차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출처: 미 육군>


1916년, 지옥의 참호전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Mk I이 출현하면서 현대식 전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Mk I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최초의 장갑차 또는 최초의 자주포로도 언급될 만큼, 현존하는 다양한 무기들의 시조로 대접받고 있다. 바꿔 말하면 Mk I에서 오늘날 전차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차는 탄생 이후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M41 워커 불독 도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역사의 산물이다. Mk I 이후 등장한 초기의 전차들은 위험지대 돌파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주로 방어력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전차를 이용해 다양한 종류의 전투를 벌이게 되면서 기동력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동력을 향상시키려면 전차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방어력의 감소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디젤 엔진을 장착하여 주행 능력을 높이고 표적 시스템을 개량하여 현재도 현역에서 활동 중인 대만군의 M41D. 하지만 빈약한 방어력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cc) 玄史生 at Wikimedia.org>
디젤 엔진을 장착하여 주행 능력을 높이고 표적 시스템을 개량하여 현재도 현역에서 활동 중인 대만군의 M41D. 하지만 빈약한 방어력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cc) 玄史生 at Wikimedia.org>

지금은 전차가 맡은 거의 모든 임무를 MBT(Main Battle Tank)로 수행하지만 이전까지는 전투 목적에 부합되는 별도의 전차를 제각기 개발해 사용했다. 경전차도 그런 트렌드에 따라 탄생했다. 적 전차와의 대결보다 주로 정찰, 수색, 보병 근접 엄호를 위해 빠른 속도로 전선을 누비도록 제작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방어력이 부족했고 화력도 그다지 강하지 못했으나 처음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 운용해보니 당시의 경전차들은 모든 면에서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제2차 대전 초기에 활약한 독일의 제1, 2호 전차의 경우 어지간한 공격에도 맥없이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전차라고 하기가 민망할 만큼 화력도 빈약해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전차가 담당한 임무가 따로 있긴 했지만 전투가 그렇게 예상한 대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제 전차인 T41. 너무 고성능이라 제작단가가 비싸 일부 성능을 제거한 T41E1이 양산 모델로 결정되었고 M4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았다.
시제 전차인 T41. 너무 고성능이라 제작단가가 비싸 일부 성능을 제거한 T41E1이 양산 모델로 결정되었고 M4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았다.

 

 

 



실전에서 얻은 경험

 


경전차로 중형 전차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기갑전이 벌어졌을 때 무조건 도망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방어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도록 화력을 강화하는 차선책을 택하게 되었다. 초기 M4 전차의 주포인 75mm 구경 M6 포를 탑재해 화력을 강화한 M24가 바로 그러한 시도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1944년 처음 전선에 투입되었을 때는 M6 포도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미군의 주력 전차인 M4로도 상대하기 버거웠던 독일 제5, 6호 전차와의 교전은 되도록 피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상황에선 승패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독일 전차들과 그나마 제대로 맞섰던 소련 전차들에게도 M24가 무력할 것은 확실했다. 따라서 냉전이 시작되자 M24를 시급히 대체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당연히 새로운 경전차에는 다양한 요구 조건이 제시되었다.

에방 에마엘 요새 박물관에 전시 중인 M41. 강력한 76mm 구경 M32 포를 탑재해 화력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방어력이 빈약한 경전차임에도 기갑전이 가능했다. <출처: (cc) User:Les Meloures at Wikimedia.org>
에방 에마엘 요새 박물관에 전시 중인 M41. 강력한 76mm 구경 M32 포를 탑재해 화력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방어력이 빈약한 경전차임에도 기갑전이 가능했다. <출처: (cc) User:Les Meloures at Wikimedia.org>

비록 당시까지는 마땅한 수송기가 없어 설계에까지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경전차는 향후 있을지도 모를 공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 크기와 무게에도 제한을 받았다. 이처럼 제약 사항도 많고 당시까지 등장한 장갑 기술로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이번에도 개발에 중점을 둔 부분은 상대를 충분히 격파할 수 있는 공격력이었다. 그 결과 후기형 M4에도 사용된 76mm 구경 M32 포가 장착되었다.

비록 구경은 M6 포보다 불과 1mm 큰데 불과하지만 장포신이어서 포구 속도가 빨라 파괴력이 월등히 좋았다. 미 병기국의 주도하에 일사천리로 개발이 이루어져 1948년에 개발부호가 T37로 정해진 시제 전차의 제작이 완료되었다. T37은 개발 중에 드러난 단점을 보완하고 앞서 소개한 한국전쟁의 각종 경험 등이 새롭게 추가되면서 페이스(Phase) 1, 2, 3형 모델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M41A3. 화력이 강화되어 덩치에 비해 포탑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cc) Bukvoed at Wikimedia.org>
이스라엘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M41A3. 화력이 강화되어 덩치에 비해 포탑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cc)

 

미 8군 사령관의 이름으로 불린 경전차 한국전쟁 초기에 미 제8군을 이끌었던 월튼 워커. 1950년 12월 23일 전선 시찰 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였다. 그의 공적을 기려 M41에 워커 불독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 한국전쟁 초기에 미 제8군을 이끌었던 월튼 워커. 1950년 12월 23일 전선 시찰 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였다. 그의 공적을 기려 M41에 워커 불독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보다 개량된 주포 안정 장치 등이 추가된 페이스 3형은 특별히 T37과 구분해 T41로 명명되었다. 그런데 성능은 만족할 만했지만 최신기술이 많이 접목되다 보니 경전차로는 가격이 너무 비쌌다. 아무리 냉전 시기라지만 모든 무기를 최고급으로 구비하기에는 돈 많은 미군도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대안으로 등장한 T41E1은 광학식 거리 측정기를 제거하는 등, 성능의 일부를 낮춘 대신 제작비를 절감한 모델이었다.

이 모델은 소량이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는데, 전력화 이전에 실전에서의 성능 확인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각종 실험 결과에 만족한 미 육군은 1951년 이를 M41로 명명해 제식화하기로 결정하고 클리블랜드에 위치한 캐딜락 전차 공장에서 초도 물량 100대를 시작으로 양산에 착수했다. 1953년부터 일선에 본격 배치되기 시작한 M41은 기존의 M24를 신속히 대체해 나갔다.

M41은 방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크기가 작아 은폐가 유리했고 신속히 이동할 수 있었다. 76mm 주포는 당시까지 등장한 어지간한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을 만큼 화력이 충분했다. 원래는 리틀 불독(Little Bulldog)이란 명칭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양산 직전에 순직한 미 8군 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의 이름과 별명(워커의 추진력이 마치 불독 같다는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의 언급에서 유래)을 따서 워커 불독으로 명명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 5,500여 대가 생산되었지만 미 육군은 한국전쟁 이후 패튼 시리즈 위주로 기갑부대를 재편하면서 임무가 제한된 M41을 신속배치군용 비축 장비나 주방위군용처럼 2선급 무기로 사용했다. 오히려 M41의 명성은 이를 공급받은 외국에서 얻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여 개국에서 도입했는데 서독, 일본, 스페인 같은 나라는 물론 덴마크, 벨기에, 도미니카 같은 중소국가들도 애용했다.

2006년 쿠데타 당시 방콕 시내에 전개한 태국군의 M41. 태국은 총 200여 대를 운용한 M41의 주요 사용국이었는데, 현재는 전량 퇴역하였다. <출처: (cc) Roger jg at Wikimedia.org>
2006년 쿠데타 당시 방콕 시내에 전개한 태국군의 M41. 태국은 총 200여 대를 운용한 M41의 주요 사용국이었는데, 현재는 전량 퇴역하였다. <출처: (cc) Roger jg at Wikimedia.org>

 

 

 



기갑사의 한 장을 장식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정비가 용이한데다 경전차임에도 화력이 좋아 대만, 베트남, 태국 등에서는 M41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특히 베트남은 제대로 된 실전을 벌여 M41의 성능을 입증한 나라였다. 1968년 월맹군이 실시한 구정 공세 당시 주요 거점과 기지의 방어 임무를 수행하던 월남군의 M41은 상당한 전과를 보였다.

특히 1971년의 ‘람손 719 작전’ 당시 벌어진 기갑전에서 월남군의 M41은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월맹군의 T-54 전차 6대와 PT-76 경전차 16대를 격파했다. 비록 이후에 월맹군의 반격을 받고 퇴각할 때 많은 수의 M41이 유기되지만 단지 전차전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화력만 충분히 강하다면 경전차로도 어느 정도 기갑전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었다.

월남군의 M41. 뛰어난 화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실전에서 상당히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월남군의 M41. 뛰어난 화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실전에서 상당히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MBT 개념이 정립되면서 일부 국가들이 사용하는 공수전차나 수륙양용전차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는 더 이상 고전적 의미의 경전차는 없다고 봐도 된다. 흔히 M41의 후속작을 M551 셰리든(Sheridan) 전차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M41이 경전차 고유 임무에 최적화된 데 반해 M551은 처음부터 공수용으로 개발되어, 단지 작고 가볍다는 점을 제외하면 운용 개념상의 차이가 난다. 그래서 M41을 미국의 마지막 경전차로 부르기도 한다.

M41은 현재 일부가 대만, 우루과이, 과테말라 등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피치 못할 여러 이유가 있고 계속적인 개량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미국에서 생산이 종료된 지 50년 가까이 된 구형 경전차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M41은 충분히 훌륭하다. 비록 작지만 기갑사의 한 장을 당당히 장식한 거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벨기에 울빅에 전시 중인 M41.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애용되었다. <출처: (cc) Paul Hermans at Wikimedia.org>
벨기에 울빅에 전시 중인 M41.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애용되었다. <출처: (cc) Paul Hermans at Wikimedia.org>

 

 

 



▌제원

 


중량 23.5톤 / 전장 5.82m / 전폭 3.2m / 전고 2.71m / 항속거리 160km / 최대속도 72km/h / 승무원 4명 / 무장 76mm M32포 1문, 12.7mm 기관포 1문, 7.62mm 기관총 1정

 



▌주석

 

1) 충남 연기군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