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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사 패한 미 전술 공군기  .

바래미나 2016. 3. 25. 01:51

경쟁에사 패한 미 전술 공군기  .

미 공군의 LWF 사업에서 경쟁을 벌인 YF-16과 YF-17이 함께 시험 비행 중인 모습. 승자와 패자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보기 드문 사례다.
미 공군의 LWF 사업에서 경쟁을 벌인 YF-16과 YF-17이 함께 시험 비행 중인 모습. 승자와 패자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보기 드문 사례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고 종종 비인간적이라고도 비판을 받지만 경쟁에서 승리한 1등이 주목을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회 현상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1등이 아니고 굳이 치열하게 경쟁하여 1등의 위치에 오르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종종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분야도 분명히 있다. 이런 비정한 현실이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는 곳이 무기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싸움을 위한 도구다. 이를 사용하여 목숨을 걸고 벌이는 전쟁터에서 2등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승리하기 위해 내가 보유한 무기는 상대를 제압하는데 충분히 효과적이고 강해야 한다. 특히 개별 병사들의 능력보다 무기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현대전에 와서 그 중요성은 더하다. 따라서 최고의 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상당하다.

한국 공군의 제1차 F-X 사업과 관련하여 1996년에 있었던 서울 에어쇼 관련 기사. 이처럼 좋은 조건에 최고의 전투기를 도입하는데 참여 업체의 경쟁은 필수적이다.
한국 공군의 제1차 F-X 사업과 관련하여 1996년에 있었던 서울 에어쇼 관련 기사. 이처럼 좋은 조건에 최고의 전투기를 도입하는데 참여 업체의 경쟁은 필수적이다.

예외 없이 모든 나라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인 소총부터 전쟁의 흐름을 한 방에 바꿀 수 있는 전략 무기에 이르기까지, 경쟁국보다 강력한 무기를 갖기 원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을 모두 도입할 수 없다 보니 후보작이 많을 때는 경쟁을 거쳐 1등이 된 것을 채택한다. 무기도 상업적으로는 엄연히 하나의 상품이므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납품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군수 시장의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획득 시스템을 가진 미국에서 이런 사례는 흔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치열한 과정에서 1등이 되지 못한 수많은 무기는 소리 소문도 없이 도태되어 버린다. 성능이 선정작보다 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종종 간발의 차이로 아깝게 탈락한 경우도 많다. 다음에 소개할 몇몇 기종은 미 공군의 각종 전술기 사업 경쟁에서 패하여 정식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그 운명을 다 한 2등들이다.


YA-9


이륙 중인 YA-9. GAU-8 대신 M61 벌컨포를 장착하여 실험하였고 18,370파운드의 폭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YA-10과의 경쟁에서 패하였다.
이륙 중인 YA-9. GAU-8 대신 M61 벌컨포를 장착하여 실험하였고 18,370파운드의 폭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YA-10과의 경쟁에서 패하였다.

베트남 전쟁의 경험을 통해 미 공군은 기존 전투기들로는 저공 비행하며 지상군을 근접 지원하는 이른바 CAS(Close air support) 임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불어 서유럽을 위협하는 엄청난 소련군 기갑부대를 효과적으로 상대하여야 할 공격 수단도 함께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무장을 갖추고 저고도에서 장기간 체공이 가능하며 어지간한 대공 화기의 공격도 충분히 버텨낼 만큼 튼튼한 새로운 공격기의 소요가 제기되었다.

그렇게 해서 1966년 수립된 프로젝트가 'A-X(Attack Experimental)'였고 1970년 제안서가 각 방산 업체에 전달되면서 정식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최종적으로 두 모델이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노스럽의 YA-9와 페어차일드 리퍼블릭의 YA-10이었다. 마치 민항기처럼 동체의 후방 외부에 엔진을 배치한 YA-10과 달리 지극히 평범한 전통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YA-9가 비행 성능에서 좀 더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수부분은 A-10과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 소련의 Su-25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 때문에 조금 늦게 등장한 Su-25가 YA-9를 카피하였다는 주장도 종종 나온다.
기수부분은 A-10과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 소련의 Su-25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 때문에 조금 늦게 등장한 Su-25가 YA-9를 카피하였다는 주장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YA-10이 기본 무장으로 채택할 GAU-8 기관포 운용에서 안정성이 높고 방판 능력도 더 좋아 승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A-10이다. 반면 YA-9는 2기의 시제기를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미 공군이 A-X를 시작할 무렵 소련도 이에 대항하여 동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때 탄생한 걸작이 동구권 CAS기를 대표하는 Su-25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YA-9와 외형이 상당히 유사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YF-23

YF-23의 주익과 미익 그리고 배기구는 스텔스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로 설계 되었다.
YF-23의 주익과 미익 그리고 배기구는 스텔스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로 설계 되었다.

1981년 미 공군은 'ATF(Advanced Tactical Fighter)'로 명명된 차기 제공전투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제 막 F-15가 한창 배치되는 중이었음에도 이미 그때부터 다음을 생각할 만큼 미 공군의 준비는 철저했다. 당연히 현존하는 혹은 가까운 시일 내 등장이 예상되는 모든 경쟁자를 제압할 수 있는 전투기가 개발 목표였다.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요구되는 기술이 고난도였고 사업의 규모도 커서 수많은 업체가 편을 나누어 참여하였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경쟁에 오른 후보 기종은 록히드 마틴-제너럴 다이나믹스-보잉 연합의 YF-22와 노스럽-맥도넬 더글러스 컨소시엄의 YF-23이었다. 각각 2기씩 제작된 두 시제기는 1990년에 각각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고 이후 치열한 실험에 들어갔다. F-15와 유사한 전통적인 형태의 YF-22에 비해 스텔스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YF-23의 특징적인 기체 구조는 상당히 미래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험 비행 중인 YF-22와 YF-23. 비록 ATF 경쟁에서 패하였지만 YF-23도 최강의 전투기의 후보로 손색이 없는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험 비행 중인 YF-22와 YF-23. 비록 ATF 경쟁에서 패하였지만 YF-23도 최강의 전투기의 후보로 손색이 없는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YF-22의 스텔스 능력도 상대적으로 약간 뒤지는 수준이어서 그다지 차이는 없었다. 반면 YF-23은 기동력, 무장 능력 그리고 가격에서 불리하다고 판정되어 결국 경쟁에서 탈락하였다. 이에 따라 YF-22는 현존하는 최강의 전투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F-22로 거듭나게 된 반면 YF-23은 박물관의 전시물로 그 생을 마감하였다. 만일 YF-22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F-22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엄청난 전투기의 쓸쓸한 말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X-32

해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X-32.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일설에는 특이한 모습이 군 관계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해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X-32.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일설에는 특이한 모습이 군 관계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엄청난 국방비를 사용하는 미군도 예산 삭감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패권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여야 했으므로 다양한 방법으로 군사력을 유지할 방법을 찾기에 골몰하였다. 더구나 갈수록 전투기 같은 고성능 무기의 개발 및 생산비도 천문학적으로 증가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신예 다목적 전투기 도입 사업이 ‘JSF(Joint Strike Fighter Program)’이다.

미 공군, 해군, 해병대가 운용 중인 F-16, F/A-18, A-10, AV-8을 단일 플랫폼으로 대체하는 계획이었는데, 노후 전투기 대체를 목전에 둔 여타 동맹국들의 참여를 처음부터 유도하여 개발비와 생산비를 낮추고자 하였다. 당시 프로젝트 구상 당시만 해도 5,000여기 생산 물량이 예상되는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이에 따라 보잉이 주도한 X-32와 록히드 마틴 컨소시엄의 X-35의 실증 실험기가 치열하게 채택 경쟁을 벌였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B형은 해병대 및 영국 해군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안정성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B형은 해병대 및 영국 해군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안정성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보잉은 X-32에 많은 신기술을 도입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실제 적용하는데 많은 애를 먹으며 개발이 지연되었다. 특히 AV-8을 대체할 예정인 B형은 수직 이착륙과 관계된 여러 애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결국 경쟁 끝에 2001년 승자는 X-35가 되었고 X-32는 쓸쓸히 무기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F-35도 예상치 못한 여러 난제를 해결하느라 양산에 상당한 애를 겪고 있다. 그만큼 새로운 전투기 개발은 어려운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YF-17

                     한국 공군도 대량 사용한 F-5 전투기를 기반으로 제작된 YF-17. 미 공군의 LWF 사업에서 YF-16에 패하였다.
한국 공군도 대량 사용한 F-5 전투기를 기반으로 제작된 YF-17. 미 공군의 LWF 사업에서 YF-16에 패하였다.

아무리 세계 최강의 평가를 받는 미 공군이라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말미암아 최고급 전투기만으로 전력을 구성하기는 어렵다. 무기의 세계에서 고성능이라는 것은 값이 비싸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력을 구성하는데 양적으로도 충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현대 공군은 고성능의 비싼 전투기와 그에 비해 성능이 뒤지지만 보다 저렴한 전투기를 섞어서 전력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 공군의 ‘LWF(Lightweight Fighter)’ 사업은 이처럼 성능에는 만족하였지만 가격이 비싼 F-15로 모든 노후 전투기를 대체할 수 없었던 사정 때문에 시작되었다. 당시 경합을 벌인 이들은 제너럴 다이나믹스의 YF-16과 노스럽의 YF-17이었다. 시제기의 성능은 막상막하라고 평가될 정도로 엇비슷하였으나 YF-16이 근소한 차이로 승자가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양산된 F-16은 이후 무기사의 한 면을 장식하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YF-17을 기반으로 탄생한 F/A-18A 시제기. 어렵게 부활하였지만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전투기가 되었다.
YF-17을 기반으로 탄생한 F/A-18A 시제기. 어렵게 부활하였지만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전투기가 되었다.

탈락한 YF-17은 앞서 언급한 여타 사례의 패자처럼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미 공군과 비슷한 이유로 보조 전투기 도입을 고려하던 미 해군에게 눈에 띄었다. 함재기 제작 경험이 많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해군용으로 부활한 이 전투기가 바로 F/A-18로, 승자였던 F-16 못지않게 항공 무기사에 커다란 한 장을 장식하였다. 경쟁에서 패한 전투기로는 보기 드문 극적인 반전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