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아담한 전차 탱켓
눈부실 정도로 빠른 IT 분야의 발전 속도는 한때 최신이라고 여겨지던 기술도 순식간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다. 디스켓(Diskette)이라 불리던 플로피디스크(Floppy Disk, 이하 플로피)도 그러한 예 중 하나다. 이제는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모르는 이들도 있겠지만 한때는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저장에 가장 많이 사용한 기록 매체였다. 한마디로 당대 디지털 문화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컴퓨터 역사에서 커다란 흔적을 남긴 플로피는 1971년에 IBM이 만들었다. 최초의 플로피는 8인치 규격으로, 이는 기록 용량이 아니라 단순히 외형의 크기에 따른 구분이다. 그러다가 더 많은 정보를 촘촘히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1976년에 크기가 5.25인치로 축소된 플로피가 탄생하였다. 이를 표준이던 8인치와 구분하려고 미니 플로피, 미니 디스크 혹은 작다는 접미사인 ~ette를 붙여 디스켓이라 부르게 되었다.
- ▲ 스웨덴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카든-로이드. 최초의 탱켓으로 인정받는 이 소형 전차는 2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빅커스 기관총으로 무장하였다. <출처 (cc) Carsten Krüger Wassen at Wikimedia.org>
1978년 애플 사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애플 II 컴퓨터의 보조 기억 장치로 디스켓을 사용하는 디스크 II를 채택하면서 폭발적으로 대중화되었다. 이후 디스켓은 8인치 플로피를 도태시켜 버리면서 순식간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좀더 사용하기 편리한 3.5인치 규격의 마이크로 플로피(마이크로 디스켓)와 더불어 199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지금은 비록 보기 힘든 유물이 되었지만 이처럼 디스켓은 짧고 굵게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무기의 세계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변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강력하고 새로운 무기라도 효용 가치가 없어진다면 언제 그런 무기를 사용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상대에게 더 이상 효과적으로 타격을 가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스켓과 비슷한 형식의 이름을 가진 탱켓(Tankette)도 그러한 무기였다.
- ▲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Mk II 전차. 최초의 전차에서 오늘날 전차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출처 (cc) Mick Knapton at Wikimedia.org>
전차의 탄생과 진화
1916년 9월 15일 솜(Somme) 전투 당시에 독일군은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거대한 물체를 목격하였다. 철갑을 두른 처음 보는 거대한 차량은 손 쓸 틈도 없이 진지를 넘어와 기관총을 난사하였고 그때서야 독일군은 이것이 영국군의 신무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전쟁의 방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전차의 충격적인 데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상적인 등장과 달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투입한 49대의 전차 중 많은 수가 고장이 나서 제대로 후속 작전을 펼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생각만큼 독일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전선 돌파에도 실패하자 일선에서는 전차무용론까지 제기되었다. 새로운 개념의 무기다 보니 정작 어떻게 운용하고 작전을 펼치는 것이 효율적인지 전혀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약하게 출발한 전차는 현재도 지상전의 왕자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 ▲ 최초로 회전식 포탑을 장착한 르노 FT 전차. 하지만 전차라고 하기에는 장갑이 상당히 빈약하다. <출처 (cc) Paul Hermans at Wikimedia.org>
- ▲ 프랑스에 파견된 영국 원정군 소속의 유니버설 캐리어. 카든-로이드를 기초로 해서 10만대가 양산된 베스트셀러 다목적 차량이다.
전차라고 불리기를 원하다
제1차 대전 후 많은 군관계자들은 전차가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하였다. 하지만 전후 나라별로 사정이 달랐기에 1930년대 초반까지는 목적을 달리하는 다양한 경, 중형(中型), 중(重) 전차가 등장하였다. 한마디로 전차 개발 역사의 백가쟁명(百家爭鳴)기라 할 수 있을 만큼 종류도 많았고 단지 실험작으로만 그친 경우도 있었다. 탱켓으로 불린 전투 차량도 바로 이때 등장하였다.
탱켓은 작은 무한궤도 차량에 기관총이나 유탄발사기 정도를 탑재하여 보병 근접 지원 또는 정찰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지프(Jeep)나 험비(HMMWV) 같은 야전 이동 수단에 가깝지만 당시 전차의 모습이나 규격도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기에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전차와도 유사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시에도 전차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였는지 소형 전차 정도의 의미가 있는 탱켓으로 불렀다.
- ▲ 베오그라드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L3/33 탱켓. 카든-로이드를 이탈리아에서 라이선스 생산한 모델이다. <출처 (cc) Pudelek at wikimedia.org>
192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개발한 Carden-Loyd Mk.IV(이하 카든-로이드)가 탱켓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다. 카든-로이드는 지난 제1차 대전 당시에 보병이 전선을 돌파하다 너무 많이 희생되자 안전하게 보병들이 전선을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면서 탄생하였다. 이것은 이후 1960년대까지 영국군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 다목적 차량으로 사용한 유니버설 캐리어(Universal Carrier)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L3 시리즈(/33, /35, /38)는 카든-로이드를 라이선스 한 것인데, 이탈리아군에서는 경전차로 취급되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장갑차 수준에 불과한 1호, 2호 전차가 제2차 대전 초기에 독일군의 주력 전차로 활약하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탈리아군의 판단이 무리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독일뿐만 아니라 1930년대 초반 이전에 탄생한 대부분의 전차는 이후 급속히 도태되었을 만큼 성능이 미약했다.
- ▲ 베오그라드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L3/33 탱켓. 카든-로이드를 이탈리아에서 라이선스 생산한 모델이다. <출처 (cc) Pudelek at wikimedia.org>
- ▲ 카든-로이드의 섀시를 기반으로 폴란드에서 제작한 TKS 탱켓. <출처 © http://www.wp.mil.pl>
시대의 자화상
카든-로이드는 소련에서 T-27이라는 제식명으로 면허 제작되었는데, 마치 오늘날 BMD 공정(空挺)장갑차처럼 TB-3 폭격기를 이용하여 T-27을 전개하는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 폴란드가 제작한 TKS도 카든-로이드의 섀시를 이용한 것이다. 영국에서 450대가 생산된 것과 달리 L3 시리즈가 5,000여대, T-27이 2,500여대, TKS가 550여대 양산된 점을 고려한다면 카든-로이드는 밖에서 더 큰 명성을 얻은 무기라 할 수 있다.
카든-로이드 계열이 아닌 탱켓으로는 5,000여대가 넘게 생산된 프랑스의 르노 UE(Renault UE Chenillette)가 유명하나 대부분이 프랑스군에 공급되었다. 반면 체코슬로바키아의 AH-IV은 제작 물량이 많지 않았지만 이란, 루마니아, 스웨덴, 에티오피아 등에 수출되었다. 일본도 92식, 94식, 97식 같은 다양한 경장갑차량을 만들었는데, 일부러 탱켓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술력이 부족하여 전차를 그 정도 수준으로밖에 만들지 못하였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 ▲ 르노 UE 탱켓. 1930년대 후반부터 양산된 최신 탱켓이었지만 정작 개발국인 프랑스를 위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대부분 독일이 노획하여 요긴하게 이용하였다. <출처 (cc) PpPachy at wikimedia.org>
이처럼 제2차 대전 전에 마치 유행처럼 엄청난 수량의 탱켓들이 공급되었다. 하지만 실전에서의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장갑이 너무 얇아 웬만한 소화기에도 구멍이 뻥뻥 뚫리면서 탑승한 병사들을 보호해주지 못하였고 화력이 약하여 전차처럼 적진을 돌파하여 전과를 올리기도 어려웠다. 결국 단지 탑승 공간이 좁은 불편한 차량 정도의 인식이 퍼지게 되면서 급격히 전선에서 도태되어갔다.
오늘날 독일군의 비젤(Wiesel) 공정장갑차를 보면 탱켓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지만 탱켓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 소형 전차는 제2차 대전 초반기를 끝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탄생 당시부터 전차도 장갑차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존재하다가 순식간 자취를 감춘 탱켓은 비록 실패한 무기라고 단정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기갑 차량 개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된다.
- ▲ (좌)오키나와 전투에서 격파 된 일본의 94식 탱켓. 일본은 경전차처럼 사용하고자 했지만 모든 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였을 때 탱켓 정도의 능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다.
(우)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제작한 AH-IV. 비록 제작 물량이 많지 않았지만 성능이 좋아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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