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단돈 5달러에 팔렸던 주미대사관..역사 현장으로 부활

SBS | 김우식 기자 | 입력 2015.10.21. 10:46 | 수정 2015.10.21. 14:19

미국 백악관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Rogan circle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로터리가 나오는데 그 한 쪽 면에 오래된 건물 하나가 고풍스런 모습을 간직한 채 서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대미외교를 위해 설치한 대한제국주미공사관, 공식 명칭은 ‘대조선주차 미국화성돈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公使館/주차는 주재를,화성돈은 워싱턴의 한자표기입니다)입니다. 당시 공사관은 지금의 대사관과 같은 개념이라 주미 대사관 격입니다.

이 공사관 복원을 위한 첫 삽을 뜨기에 앞서 이 곳을 찾았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빅토리아 양식에 따라 지하 1층, 지상 3층 175평 규모로 지어진 공사관은 100 여년 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주미 공사관
대한제국 주미 공사관

출입구 앞에 태극문양이 선명했던 포치(porch, 입구에 지붕이 얹혀 있고 벽이 둘러진 현관)가 사라졌는데 이는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건물 뒷편에도 지금은 없지만 창덕궁 후원을 본 뜬 한국식 정원도 만들기로 했습니다.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현재 모습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현재 모습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계단을 올라 건물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1층부터 3층까지 연결된 나선형 계단입니다.100년이 넘은 계단이지만 여전히 튼튼했습니다. 입구 좌우에는 거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오래된 벽난로도 눈에 띄었습니다.

미국인 부부가 얼마전까지 살았던 만큼 주방과 화장실은 모두 현대식으로 개량돼 있었습니다. 내부는 벽체가 훼손되고 창틀이 벌어진 곳 등 세월의 흔적을 담아 많이 낡기는 했지만 상당부분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공사관이 세워질 당시 조선은 러시아와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청나라의 내정간섭으로 미국에 상주공사관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하지만 고종은 자주권을 행사하겠다며 1887년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고 청의 반대속에 조건부로 공사파견 허락을 받게 됩니다.

공사단 일행은 배로 두 달이 걸려 미국에 도착한 뒤 청나라 주미공사관의 지시를 받아 대외업무를 수행해야한다는 조건부 허락을 무시하고 당시 22대 미국 대통령인 스티븐 클리블랜드에게 고종의 국서롤 전달하고 미국 정부에 건물을 임대해 업무를 시작한다고 통고하는 자주외교를 펼쳤습니다.

공사단
공사단

이렇게 해서 1888년 첫 주미 공사관이 탄생했는데 처음엔 건물을 임대해 쓰다가 1891년 고종이 자신의 내탕금, 즉 왕의 개인 돈 2만 5천달러를 주고 이 건물을 사들여 공사관 건물로 사용하게 됩니다. 당시 2만 5천달러는 대한제국 외교 예산의 5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큰 돈이었는데 청나라에 맞서 자주외교를 펼치겠다는 고종의 강한 의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주미 공사관을 마련해 운영했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 기능은 정지됐고
5년 뒤 일본은 한일강제병합후 공사관을 강탈한 뒤 미국인에게 단돈 5달러에 이 건물을 팔아넘깁니다. 그리고 세월이 100년 이상 흘러 지난 2012년 비로소 우리 정부가 이 공사관 건물을 미국인 부부로부터 350만달러,약 40억원을 주고 사면서 대한민국의 외교역사의 현장을 되찾게 됩니다.

각종 사진자료와 사료, 그리고 한 차례 화재가 났는데 이때 소방기록 등이 남아 있는 1층과 2층은 최대한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는게 문화재청과 복원공사를 책임지는 국회소재문화재재단의 입장입니다. 단, 3층은 추정자료가 없어 공사관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발전상 등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지하 1층은 건물 관리용도로 쓰일 예정입니다.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건물에 배치될 당시 집기들은 고증을 거쳐 구하거나 다시 만들어야하고 앞서 말한 정원과 포치 등도 새로 만들어야해 약 100억원 정도의 공사비가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1년간의 공사를 끝내면 시범운용을 거쳐 2017년 봄, 아직 명칭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가칭 '대한제국공사관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현재 워싱턴에 있는 주미대사관과 총영사관,한국문화원과 함께 우리나라 외교사 탐방로로 연계 운영한다는 복안입니다.

대한제국시절 워싱턴에는 30여개 국가가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운영했는데 대한제국공사관 건물만이 유일하게 내외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우리나라 서울에 설치한 재외공관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당시 원형을 아직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건물도 정동에 있는 미국의 첫 상주공사관이라고 하네요. 현재 주미대사관저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건축당시 기왓장이 올라간 한국식 가옥으로 지어졌는데 두 건물 모두 당시 그 나라의 건축양식에 맞춰 건물을 지었고 전쟁과 화재 등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문화재청의 위탁을 받아 복원사업을 맡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측은 대한제국주미공사관을  자주독립의 의지를 상징하는 역사의 장소, 미국을 우방으로 생각하고 16년간 우호관계를 유지한 한미 우호의 요람,발전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장소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주미공사관이 대미외교를 펼치던 1889년부터 1905년은 러시아와 청,일본이 한반도에서 각축전을 벌이던 때로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등 숱한 급변사태가 일어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공사관 복원이 건물 복원의 의미를 넘어 미국과 한국 두 나라가 그 격동의 시대를 다시 조명하고 평가하는 제대로된 역사의 작업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김우식 기자kwsik@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