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제국을 무릎 꿇게 한 보고서[98]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알려지고 난 후 계속해서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이 결국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죠. 독일 내에서는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과 그가 회장 재임 시 벌어진 일이니 사건을 자기 책임 하에 직접 마무리하라는 의미로 물러나선 안된다는 의견이 비등했는데요.하지만 후임 회장이 사태를 수습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라 포르쉐 최고경영자 마티아스 뮐러(62세)가 금요일 새로운 그룹의 회장의 자리에 오르게 됐습니다.
마티아스 뮐러 / 사진=포르쉐
또한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만 물러날 것이 아니라 책임질 위치에 있는 고위직들도 퇴진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대상자 이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과 함께 자동차 제조사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뉴스가 하나 더 전해졌습니다. EU 집행위원회 마로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이 한국의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배출가스 측정을 실제 주행하며 확인하는 RDE 방식을 적용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출시된 디젤차들 또한 이 방식을 통해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점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연비측정법과 함께 2017년 9월로 예정돼 있던 RDE (Real Driving Emissions) 방식이 당장 내년부터 적용이 된다면, 그래서 이미 판매된 유로6 차량들까지 검사하게 된다면, 많은 디젤차들이 유로6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게 세상에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제조사들 입장에선 날벼락을 맞은 셈이죠.
업체들은 이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2017년이 아니라 2020년까지 신 배출가스 측정법을 연기해 달라 요구하고 로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VW 디젤 스캔들이 EU로 하여금 결단을 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아직까지 EU에 의해 공식화 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위원장이라는 책임 있는 위치에서 없는 얘기를 하진 않았겠죠.
조작 의심은 ICCT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이제 폴크스바겐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계 전체로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불똥은 거대한 불길이 돼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건의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ICCT의 2014년 보고서 / 출처=ICCT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청정운송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on Clean Transportation)는 디젤차들이 유로5와 6의 기준을 실제로 충족시키고 있는지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메타분석의 핵심은 질소산화물 배출량이었죠. 우선 영국으로부터 유로6 기준에 든다는 6개 차량의 RDE 측정 결과를 받았습니다. 또 RDE 측정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로부터 6개의 차량 데이터를 더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ICCT는 배출가스 실주행 측정에 있어 최고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의 한 연구팀에게 테스트를 의뢰 하게 됩니다. 이때 3대의 독일 차가 실험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테스트에 참여한 차량 정보 / 출처=ICCT 보고서
위에 표에 붉은 박스로 표시한 것이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이 직접 테스트를 한 차량들입니다. 15대 중 이 3대는 유로5를 충족하는 모델들이고 나머지는 유로6를 충족하는 디젤차들입니다. 맨 우측을 보면 각 테스트차량들의 실제 주행거리가 표시돼 있습니다. 최소 200km에서 최대 63,000km까지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달렸는데요. 시내, 국도, 고속도로, 그리고 오르막과 내리막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도로를 주행하며 배기가스를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가로축 CO2, 세로축 NOx 배출가스 분포도 / 출처=ICCT 보고서
15개의 테스트 디젤차들 중 질소산화물 배출 억제에 상대적으로 효과적이라는 '선택적환원법(SCR)'이 적용된 차가 10대, 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한 번 더 순환시켜 연소 온도를 낮춰 질소산화물 발생을 줄이는 '배기가스재연소장치(EGR)'가 달린 차가 4대, 그리고 엔진에 질소촉매를 더해 질소산화물 발생을 줄이는 '희박질소촉매' 시스템을 적용한 차량이 1대였습니다.
SCR은 2.0리터 이하급 차에 달기에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주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사용하고 있고 시트로엥도 일부 적용하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과 현대차 등은 LNT, 마쯔다는 거의 모든 모델에 EGR을 적용하는데요.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모델에 따라 LNT 등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이 결과에서 유로6을 만족시키는 모델은 'C' (녹색표시) 하나뿐이었습니다. 'D'와 'B'가 유로5(주황색 라인)를 만족시켰고 나머지는 모두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평균 7배 이상 질소산화물이 뿜어져 나왔고 가장 나쁜 건 25.4배, 그 다음이 24.3배였습니다. 그런데 F와 H가 문제였습니다. 미 대학연구팀이 직접 테스트한 B는 BMW X5, F는 폴크스바겐 파사트, 그리고 H는 제타였습니다. X5는 언덕에서만 기준치를 조금 초과했을 뿐 당시 기준인 유로5를 만족시켰다고 보고됐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테스트를 한 결과를 보고 놀란 ICCT와 웨스트버지니아 대학 연구팀은 이 내용을 미국 국립환경청(EPA)과 캘리포니아대기보전협회(CARB) 등과 공유했고 국립환경청은 폴크스바겐에 해명을 요구하게 됩니다. 처음엔 발뺌을 하던 VW측에서 자발적 리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으나 조사를 통해 리콜이 문제 해결이 될 수 없음을 파악한 당국은 강하게 대응했고 결국 폴크스바겐은 프로그램 조작이 있었음을 시인하기에 이릅니다.
만약 6개 회사 15개 모델 모두를 ICCT와 WVU가 테스트를 했다면 기준치를 초과한 회사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다 프로그램 조작이 있었다고 볼 순 없습니다만 '배출가스조작게이트'가 아니라 '디젤게이트'로 확대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이 터짐으로 독일 정부는 자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디젤차에 대해 무작위 조사를 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미국도 다른 브랜드들까지 조사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그 결과에 따라 또다른 조작이나 업계의 잘못된 관행 등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타 / 사진=VW
아우토빌트의 BMW 의혹 제기
펄쩍 뛴 BMW
이 와중에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 자동차잡지 아우토빌트는 BMW X3 20d 모델이 질소산화물을 기준치 11배를 넘겨 배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ICCT가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질소산화물 메타분석을 했고 그 중 한 테스트에 참여한 X3가 문제가 됐다는 것인데요.
BMW는 펄쩍 뛰었습니다. ICCT의 두 차례 조사 어디에도 BMW가 문제 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볼보(15배)나 르노(9배), 현대(7배, 준대형 모델) 등이 높은 질소산화물 배출 결과를 보였던 ICCT의 올해 9월 보고서에서는 참여한 10개 브랜드들 중 BMW만이 유일하게 유로6 기준치를 만족시킨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래 표를 한 번 보십시오.
자료=ICCT 보고서
앞서 보여드린 작년 보고서의 테스트 차량 목록 일부인데 이 중 A와 B, 그리고 C가 같은 제조사(M1)로 표시돼 있습니다. B는 말씀 드린 것처럼 BMW X5입니다. 그렇다면 SUV로 표시된 A 역시 BMW 모델일 것입니다. 유일하게 유로6 합격점을 받은 C 모델 역시 BMW 세단으로 보입니다. 특히 SCR+LNT라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얘기되는 '복합후처리기술'을 즐겨 적용하는 곳도 BMW입니다. 그렇다면 아우토빌트가 이야기한 X3 20d가 이 'A' 모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 아우토빌트가 정확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나마 가장 질소산화물 배출에서 안전하다고 조사된 BMW이지만 엔진에 따라, 그리고 후처리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같은 브랜드 내에서도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다는 짐작은 가능케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폴크스바겐의 조작 사건으로 인한 파장은 이제 디젤 전체에 대한 조사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격변을 만든 ICCT의 프로젝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아무 것도 모른 체 지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문득, 디젤 엔진을 만든 루돌프 디젤이 지금 상황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지네요.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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