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홀로 서면...서정윤
1
마른 들풀 서걱이는
바람 소리만 홀로 허허로운
추억의 강가에 서서
잠시 쉬어가는 철새 떼들의
모래 속에 묻어야 할 기억들
이젠 떠나야 하리, 홀로서기 위해
쓰러져도 다시 서 있는 미류나무.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걸,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 속으로 끝난다는 걸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2
가야 한다면 가고
아직 고통스럽다면
오래 방황해야 한다.
저 바람 지나는 들풀처럼
온 몸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그 들판의 삶을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지.
사랑한다는 말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없다.
3
이젠 떠나자.
전생의 끈으로
이루어오던 사랑도
다 나무 밑을 지나는 바람인 것을
가슴 속에 살아있는
어느 유목민의 사랑 흔적조차
별빛 아래에서 빛나는 먼 전설이다.
그냥 기다림으로 계속되는
사랑을 찾아 헤메다
깨어진 자신의 삶을
그래도 살아야 하고
이제 사랑은
내 속에서 찾아야 한다.
내 삶에서 진실을 보여야 하고
그리고 사랑하여야 한다.
먼 훗날
또하나의 전설을 위해.
4
하늘 푸른 들녘에
그대 홀로 서서
나에게 손을 내민다.
쓰러진 내 모습이
가련해서라면 나는
그 손을 잡을 수 없다.
그대 아직도
나를 위한 촛불을
꺼뜨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의 손을 잡고
기꺼이 그대의 밤을 밝히는
촛불이 되어 타리다.
5
사랑의 상처를
또다른 사랑으로
치유해선 안된다.
고통은
밤 하늘 개울음처럼
자꾸만 서로를 불러내올 뿐
아픔은 결국
내 속에서 고쳐야 한다.
절망하며
사랑으로 난 문을 닫아도
가슴속 깊은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6
먼 훗날
사랑으로 하여
내 몸이 깨어질지라도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두를
나는 바칠 수 있다.
아침은 언제나
춥고 긴 어둠 뒤에
오는 것.
사랑을 위해
바칠 수 있는 목숨이 있는 한
나는 아직도 행복하다.
쇼팽의 `녹턴`과 바하의 `실리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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