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갱년기를 도와준 22세 청상과부 ★
정약용이 갱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22세 청상과부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여러가지 증상들이 나타나는 시기로서 초로기에 해당됩니다.
남성갱년기는 보통 55세경에서 65세 사이인데,
50세 혹은 그 이전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은 엘리트 관료였던 다산은 정조가 사망하자
대역죄로 몰려 40세부터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하게 됩니다.
다산은 온 집안이 풍비박산을 당하고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로
외딴 곳에서 혼자 귀양살이를 하였으니 요즘의 ‘기러기 아빠’보다 훨씬
더 어려운 형편이었죠. 그러니 건강에 큰 이상이 생길 수 있었고,
갱년기장애가 나타나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갱년기장애가 생기면
- 우울증, 위장장애, 전립선염, 전립선비대증, 성기능장애 등이 생기기 쉽고, 노화가 촉진됩다.
남성에 갱년기가 오는 원인은 뭘까요? 40대 중반 무렵부터 고환의
- 기능이 위축되면서 정자 수와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감소되고,
- 전립선 조직이 위축되며 부신이나 갑상선 등의 내분비기관이 쇠퇴해져
- 면역계통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뇌세포의 위축과 뇌세포 수의
- 감소로 인해 인체내 평형상태가 깨어지면서 신경계통과 정신활동이
- 저하되는 탓이죠. 특히 생활환경의 변화나 과도한 근심, 걱정,
- 긴장 등에 의해 촉진되므로 명예퇴직,
- 조기 실직 등을 겪는 경우에 나타나기 쉽습니다.
한의학 문헌에도 40세가 넘으면 음기가 반으로 줄고 50세가 넘으면
- 양기가 날로 쇠퇴해져서 건망증이 생기고 나태해지며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고 화를 잘 내며 식욕이 없고 불면증이 생긴다고 나와 있습니다.
- 이러한 갱년기장애 증상이 확실히 나타날 경우에는 노화도
- 빨라집니다.
- 주된 원인은 신장의 음기와 양기가 부족해진 것이며,
- 선천적으로 체질이 허약하거나 음식 섭취의 장애로
- 비위장이 손상되거나 과로하여 기가 소모되거나
- 신경을 많이 쓰고 짜증과 화를 내는 것 등이 신장과 심장,
- 비위장의 허약을 일으킨 것이죠. 다산이 남성갱년기를
- 극복하고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첫째, 충분한 운동을 꾸준히 한다
다산이 귀양지를 옮겨 오래 머물렀던 다산초당은 남해바다가
-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이는 만덕산(전라남도 강진군) 자락에 있었죠.
- 초당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산길은 그림 같은 바다를 감상할 수
- 있습니다.
-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몸은 산에 두고 마음과 눈은 바다에 두고
- 걸을 정도라고 합니다. 야생 차나무와 접목들이 우거져서
- 건강낙원이나 다름없는 바로 그 길을 다산이 매일 걸었던 것이죠.
- 이처럼 남성갱년기를 극복하고 성인병을 예방하려면 허리와 하체의
-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날마다 허리 체조를 하고 매일 40분 이상 약간 빠른 속도로 걷는
- 것이 좋습니다. 물론 땀이 약간 날 정도로 해야 효과가 있지요.
- 특히 체중이 많은 분들은 더 열심히 운동해서 땀을 많이 흘리고 배가
- 나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면역력도 증가되지요.
콜레스테롤은 남성호르몬의 원료인데, 동물성 식품에는 이들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또한 채식으로 얻을 수 있는 영양에는
한계가 있고, 채식만 하면 기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이 많거나 기력이 쇠약해진 경우에는
육식을 해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산은 넉넉지 못한 형편에 먼 타향으로 귀양을 갔는데 어떻게
육식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강진 인근에 살고 있던 다산 부친의 친구가
인근에서 가장 부호였고, 훗날 사돈이 되는 그의 아들은 다산의
죽마고우였기 때문입니다.
농산(農山)에 있는 농막에서 잠을 잔 뒤에, 말을 타고 다산으로
돌아오던 것이 늘상 하던 일이다. 윤서유와 그의 사촌아우가
술과 물고기를 가지고 와서 때로는 석문에서 기다리고,
때로는 용혈에서 기다리거나 때로는 청라곡에서
기다렸다. 취하도록 마시고 배불리 먹은 뒤에는 그들과 함께
농막에서 낮잠을 자는 것도 늘상 하는 일이었다
<조석루기(朝夕樓記)>
인근에서 가장 부호였던 사돈네 집의 ‘조석루’라는 정자의 기(記)로
지은 글에 그 당시 즐기던 생활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던 것이죠.
친구이자 나중에 사돈이 되는 윤서유 집안에서 자기를 대접하던
모습이었으니, 이만하면 죄인의 유배 생활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였죠. 이만하면 유배를 갈 만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다산처럼 18년이나 길게 하지만 않는다면 귀양살이가
건강장수에 도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귀양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장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암 송시열은 늙어서 7년 정도나 귀양살이를 했지만 83세까지
살다가 사약을 마시고서야 죽었고,
고산 윤선도는 14년 넘게 귀양을 다녔지만 85세까지 장수했으며,
추사 김정희도 9년이나 귀양을 다녀왔으나 71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잡한 관직생활과
극심한 당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심신을 편안케 할 수
있는 기회였고, 맑은 공기와 소박한 음식에다 매일같이 산책을
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귀양을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혹은 장기간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휴양을 하였던 경우에도 장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셋째, 적당한 성생활을 한다
괴롭고 외로운 귀양살이를 오래 하는 다산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표서방의 딸입니다. 표서방은 음식 솜씨 좋은 딸이 만든
음식을 다산에게 매일 날라다 주었는데, 표씨 여인의 음식으로
다산이 입맛과 기력을 되찾은 낌새를 눈치 챈 주모는 아예 다산의
밥상까지 그녀에게 들려 방안으로 들여보냈죠.
그녀가 끼니마다 정성껏 마련해 주는 음식은 보약이 되어 다산의 건강을 회복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표씨 여인은 다산의 잔심부름까지 맡게 되고 귀양살이하는 다산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표씨 여인은 스물 두 살의 청상과부로서 15세 때 가난하고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갔다가 자식도 낳지 못한 채 남편이 돌림병으로 죽자
친정에 돌아와 있었는데,워낙 가난한 친정 형편 때문에 고을 부자
양반댁의 찬모로 들어가 전라도 음식을 하나하나 익혔다는 겁니다.
다산과 그녀 사이에 딸이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남성갱년기를 극복하는 데는 잘 먹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것과 더불어 적당한 간격의 성생활이 필수적입니다.
왜냐하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생활이 부족하게 되면
성 호르몬의 생성도 부족하게 되어 성기능이 더욱 떨어지면서
갱년기장애 증상이 더 심해지게 되기 때문이죠.
또 성 호르몬의 역할이 성기능 뿐만 아니라 뇌기능, 골 대사,
근육과 지방 분포, 심장혈관계 등
우리 몸의 곳곳에 영향을 나타내므로 적당한 간격의 성생활을
가져 성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다산이 그린 특별한 매조도 ‘의증종혜포옹매조도(擬贈種蕙圃翁梅鳥圖)’는 2009년 6월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 그림과 글은 강진 유배 시절 다산이 소실에게서
얻은 딸에게 보내는 애틋한 심정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르고 썩은 가지에 새싹이 돋아 꽃을 피웠다는 것은 자신이
뜻하지 않게 이 곳에서 새 인연을 맺게 된 사정을 암시하며,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털의 작은 새는 그 사이에서 얻은 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죠.
고미술품 전문가에 의하면 “매조도의 가치도 의미 있지만 다산의
행서는 명필의 반열에 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빼어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용문산에도 오르고 용문사에 들러 글을 지었고,
강원도의 명승지도 찾아 나서
젊은 시절에 형제들과 함께 노닐었던 천진암에서 당대의 학자들과
함께 글을 짓기도 했습니다.
외롭고 쓸쓸했던 유배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노년기의
다산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다산은 75세 때 회혼일에 자손과 친척들이
모인 상태에서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장수한 다산의 삶은 감동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다산의 의술은 어느 정도였을까?
다산은 의원으로서 조정의 부름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69세에 당시 세자였던 익종의 병세가 위독하자 부호군에 임명되어 남양주에서 궁궐로 불려왔지요. 그런데 약을 올리기 전에 익종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산이 요행히 세자의 병을 낫게 하면 좋고, 만약 세자가 다산이 지어 올린 탕약을 복용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책임을 물어 다산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려는 노론의 술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산은 세자의 상태를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으로 정확히 파악하고는 집에 있는 특별한 약을 써야 한다며 사람을 보내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죠. 그래서 약을 가져왔는데 그 사이에 세자가 사망했던 겁니다. 이것은 환자의 생사 예후를 정확히 진찰하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서 다산이 용한 한의사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그리고 73세 때 순조임금의 환후가 급해 또다시 소명을 받고 상경하게 되는데, 도성에 도착할 무렵에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했습니다.
다산의 그림 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 매화쌍조도
심신이 고달팠던 다산에게 활력을 되찾게 해 준 호박죽
다산은 장기현에서 1년 만에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고는 전남 강진으로 내려와 17년을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강진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만나주지 않고 방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천주교도로 몰렸던 대역죄인이기에 재앙을 부르는 인물로 여겼기 때문이었죠. 다행히 읍성의 동문 밖에 있던 밥과 술을 파는 주막집 노파가 선심을 써서 방을 주었는데요, 흙으로 담을 쌓아 위에 몇 개의 서까래를 걸치고 짚으로 이은 집이라 겨우 비바람을 가려주는 정도였습니다. 거기서 4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주막집에 있을 때 다산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죠. 팔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병치레도 잦았는데요, 입맛도 떨어져 곡기를 입에 넣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병치레로 입맛을 잃은 다산은 주모가 미음도 쑤어 올리고 입맛 당길 만한 젓갈도 만들어 줬지만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마침 주막에서 일을 거들던 표서방이라는 사람이 유배지에서 고생하는 다산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는 음식 솜씨 좋은 딸을 시켜 호박씨를 까서 갈아 만든 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산은 고소한 냄새가 나는 호박죽을 대하고는 모처럼 입맛을 찾아 한 그릇을 다 비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고 산책도 했다는 것이죠.
늙은 호박은 따뜻한 성질로서 비위장을 보충하고 기를 끌어올려 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호박의 노란 색은 오장 중의 비장에 해당되는 색으로서 주로 비장에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늙은 호박은 소화 흡수가 잘 되어 비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질병을 앓은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에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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