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좋은 이야기-

순간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바래미나 2015. 3. 8. 22:48

순간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순간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해왔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 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도 이해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바람 없는 밤의 눈처럼 마음에 조용히 쌓여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는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A.테니슨

릴리, 나 돌아갈까? 돌아가고 싶어. 어딘지는 모르지만
돌아가고 싶어. 분명히 난 미아가 되어버린 거야.
좀 더 시원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옛날에 그곳에 있었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릴리도 알고 있지? 향기가 그윽하게 퍼지는 큰 나무 아래같은 곳.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여기가 어디야?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Almost Transparent Blue)」

너는 어제 몇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


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상처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임을 명심해야 한다.
피해자처럼 행동하거나 필요 이상의 기도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피해를 입었다는 감정은 병을 덧나게 할 뿐이다.


캐롤라인 미스, 「영혼의 해부」

삶에는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의 무게가 있다.
지나친 의욕으로 자기가 들 수 없는 무게를
들 수 있다고 과장해서도 안되고,
자기가 들어야 하는 무게를
비겁하게 자꾸 줄여 가기만 해서도 안되고,
자신이 들어야 하는 무게를 남에게 모두 떠맡긴 채
무관심하게 돌아서 있어서도 안된다.


김명수, 「역기를 들면서」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 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왜 그리 또 두려웠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벽돌을 뚫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전에 나는 거짓말을 하는 남자들을 경멸했어. 거짓말이 비겁한 것으로 보였거든.
그래, 나는 비겁한 것을 싫어했어. 나는 물론 다른 사람의 비겁함도 말이야.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우리가 마치 밤을 필요로 하듯 비밀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예전에는 삶은 아주 투명하고 전부 공개되어야만 하며,
슈타인이 쓴 것처럼 통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면 우리는 밝은 햇빛 속에서 똑바로 거리를 걸어갈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원하는 모든 것을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외칠 수 있을 거라고.
자, 혹은 안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래요, 그러니 그렇게 할거예요. 다르게 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뿐인 궤도의 삶으로는 발전할 수가 없어.
이제 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어린아이들도 가끔 그렇게 해야만 해. 그것을 허락해야만 해.
아이들의 거짓말은 아무나 호기심을 가지고 건드리고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이들이 그들의 삶 위에 펼쳐놓은 베일이야.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서」

한 개 돌 속에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
그렇게 옮기어 가는
정연한 움직임 속에서

소조한 시야에 들어오는
미루나무의 나상
모여드는 원경을 흔들어 줄
바람도 없이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과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끝 가지 아슬히 사라져
하늘이 된다.


정한모, 「멸입(滅入)」

 

Everything is okay at the end.
If it is not okay, then that's not the end.                                            
결국 끝에는 다 괜찮아.
만약 괜찮지 않다면, 아직 끝이 아닌것일뿐.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진실을 중얼거리고 있어요.
진실을 발을 차갑게 하는 이불과 같은 것입니다.
잡아당겨도 늘어뜨려도 이불은 부족합니다.
무슨 수를 써봐도 이불은 우리를 덮어주질 못합니다.
울면서 태어난 날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날까지
울고 절규하고 신음하는 우리의 얼굴만을 덮을 겁니다.


죽은시인의 사회, 앤더스 토트의 대사

 

 

우리가 자각하지 못해도 같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교차한다.
비온 뒤 감자줄기를 잡아당기면 땅속에서 주렁주렁 감자알들이 이끌려 나올 때 같이,
잊혀진 일들이 들쑥날쑥 심연에서 끌려나와 나를 정지시켜놓고 있었다.

잊고 살아도, 만나지 못하고 살아도,
우리가 한순간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문정희,「 순간」

 

 

 

나의 사라짐이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슬픔을 가져다 주지 않고
그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백을 만들지 못한다 해도
혹은 그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조차 못 한다고 해도
그것은 나자신의 문제다.

분명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으며 살아왔다.
심지어 더이상 잃어버릴 만한 것이 나 자신 이외에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남자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내 안에는 상실된 것들의 잔재가 앙금처럼 남아 있어,
그것이 나를 여태껏 버텨오게 해 준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어릴적 병으로
눈이 잘 안보이게 된 이후로
소리를 듣는 습관이 생겼어.
때로는 귀가 눈보다 사물을 더 잘 봐.
아무리 행복한 모습처럼 가장해도
그가 내는 소리는 가장 못해.
네 목소리도 슬픈 거 같아..
여기에 너의 슬픔을 녹음해.
세상 끝에 묻어줄께."

 

녹음기에는 아무 소리도 녹음 되지 않았다.
단지 가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을 뿐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영화 Happy Together, 1997作

 

걸어라.

무릎에서 모래가 흘러 나오다
어느덧 네 온몸이 모래가 되어
언덕을 뒤덮어 버릴때까지.

그때까지는 아픔을 말하지 마라.

산산히 부서져 모래뿐인 이곳에서
너보다 더 아프지 않은 것들이 없으니.


연왕모, 「황토」

 

 

불을 끄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
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또한 쓸쓸한 것이어서
짐을 들이고 정리하면서
바닥에서 발견한 새까만 손톱 발톱 조각들을
한참 만지작거리곤 하였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
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방 곳곳에 남아 있는 얼룩이
그를 어룽어룽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이 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지하에
붉은 열을 내려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김경주, 「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 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상대가 눈앞에서 멀어지면

보통 사랑은 점점 멀어지고

큰 사랑은 점점 커져간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고 큰 불은 불길이 더 센 것처럼.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Moments.

Our life is series of moments.

Each one is journey to the end.

Let them go, Let them all go.

이런 순간.

삶은 이런 순간의 연속이다.

모든 순간이 끝을 향한 여정이다.

내버려두면 된다.

그냥 나두면 된다..

(순간들이 모두 모여 생명이 되니까..)

 

영화 Now is good, 2012作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치는 일상의 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있는 그대여.

 

기형도, 노을 中

 

나는 그때 그 핏빛을 사색했다

지는 해 지는 해 거기에서 나는 청춘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춘으로 살아야 한다고

애쓰는 너희를 보았다 그런 너희가 지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황혼의 힘으로 모서리를 날카롭게 빛내는 이곳에서 나는 외롭다, 라는 말을 천천히 발음해본다

로움이 부족해 피가 마르는 세상이 있고 중무장된 평화에 천천히 질식되는 너희가 있고

지금은 마지막 사랑, 더이상 꿈꿀 사랑이 없다, 라는 사실을 날마다 애써 외우는 내가 있다

삶이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돌아앉아 추억에게 먹이를 준다

돌아누워 내 추억을 먹이로 받아먹다 잠든 세상이여, 바람 소리 굉장해서 나는 사나운 꿈들을 불러들였노라

지금 찬란하게 지는 해의 저 사무치는 평화는 여전하고 여전하지 않는 나는

노엽게, 진창처럼 부드러운 생을 바라보고 있다

김소연 , 학살의 일부11

 

 

만남은 열려있지만 이별은 닫혀있다

자유로운 문과도 같은 만남은
언제나 수많은 결과와 가능성을 향해
수많은 길을 열어 놓는다

그러나 이별의 문은 폐쇄의 문이다

그렇게 기억을 닫아놓고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문을 열고 뛰쳐나오려 아우성치는 기억과
추억들은 끝끝내 그 문을 망가트리고 부숴버린다

그래서 헤어짐은 어렵다
닫힌 문을 억지로 헤집고 나와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문 주변에 수많은 상처를 낸뒤에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 후에야 가능한것이 이별, 이니까

 

본인 노트, 「습작1」

 

 


대관령 고개를 넘는 초입에 한 할머니가 애타게 옷깃을 잡는다

아가씨 언덕 너머까지만 좀 태워다 줄 수 없을까

몇 번의 사정 끝에 겨우 차를 얻어 탔다며 무연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은 소를 닮았다
계절 내내 쟁기질에 온 몸을 다 바치고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길이라는 걸 예감한 소의 눈망울이다

여름 내내 갈던 밭에는 거식증 환자처럼 바짝 마른 흙이 있다 바짝바짝 마른 거죽이 튼살처럼 쩍쩍 갈라진다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부서지고도, 혈관을 차단당해 누런 나뭇잎이 추락할 즈음 흙이 가진 것은 공간(空間) 뿐.
그 안에서는 살점을 다 빼앗기고 뼈만 남은 벼의 사체가 뒹군다 배를 갈라 무거운 뼈만 덜어낸 채다
살점들은 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한 계절을 그 흙과 함께 무던히 부서졌을 소의 눈망울만 오도카니 남은 풍경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소를 태우고 고개를 넘는데 저만치 보이는
낙석주의
사포같이 거칠었던 여름 끝자락 태풍이 지난 길에서 이정표는 부러져 바닥을 뒹군다
할머니의 이마에 내려앉은 주름살처럼 구불구불한 길은 내 이마에 선뜩 몰려와 갈 길을 재촉하는데
부러진 이정표는 가야할 길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태풍이 놓쳤는지 애꿎은 바람 한줄기가 벌겋게 얼굴을 할퀴고
가을에 쫓겨 가는 여름처럼 여름 내 세찬 채찍질에 쫓기던 소의 눈망울만 오도카니 남은 풍경이다

 

본인 시작노트 , 「미아(迷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