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산림문화사진전 입선작인 박요진의 ‘대왕암 공원의 여름’. |
휴일이면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야외로 등산이나 하이킹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새로운 기분으로 한 주일을 시작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건강증진과 함께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웰빙 붐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산림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숲속에 한 발짝 발을 들여 놓으면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른바 산림욕 효과 때문이다. 이 산림욕 효과를 높여주는 정체가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이다. 주로 나무가 만들어 외부로 발산하는 휘발성물질(나무향)로서 그 주성분은 테르펜(terpene)이라고 하는 유기화합물이다. 테르펜이 떠도는 상태의 대기에 인간이 접하는 것을 산림욕이라 부르고 있다. 피톤치드는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좋은 효능을 주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는 건강의 묘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산림요법의 키워드 피톤치드
산림욕의 의학적 효능으로서 제일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피톤치드 효과이다. 휘발성 향기물질인 피톤치드는 ‘식물체가 주위의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산하는 일종의 항생물질’이다. 그러나 항생물질과 달리 피톤치드는 특정한 균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고 인간의 신체에 무리없이 부드럽게 흡수되며, 그리고 화학합성 물질이 아니라는 장점이 있다.
또 항생물질은 그 강력한 살균력에 의해 병원균을 변화시키고, 진화시켜서 내성이 있는 새로운 질병을 유발시키는 데 반해, 피톤치드는 전염병에 효과가 있는 약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인간에 기생하는 병원체의 활동을 억제하여 인간이 갖는 면역력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대만편백에서 처음 발견된 히노키티올(hinokitiol)이라는 물질은 병원 내 감염의 원인이 되는 항생제내성균(MRSA)의 생육을 완벽하게 저지하며 내성균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면역기구를 강화시켜 주는 요소로는 마사지, 영양가 높은 음식물, 애정, 비타민C, 아연, 긍정적인 사고, 반사요법, 피톤치드가 포함된다. 이상 열거한 것들만으로 모두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피톤치드는 매우 복잡하고 정밀한 면역기구(임파계)의 기능을 돕는 역할을 한다.
피톤치드가 면역기구를 건강하게 하는 외에 또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면역기구를 약화시키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을 없앤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담을 없애줌으로써 면역기구가 자신을 지키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즉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활성화시켜 주는 힘을 피톤치드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마우스에 전기자극으로 스트레스를 가한 후 피톤치드가 기화되어 있는 상자 속에 넣으면 스트레스 지표호르몬인 혈중 코르티솔 농도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소나무를 비롯한 피톤치드는 혈중 코르티솔 농도를 무려 70%까지 저하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피톤치드가 말끔히 씻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톤치드는 강력한 항균력을 가지는 외에도 우리 인간에게는 면역력 강화, 스트레스 해소, 긴장완화, 이뇨, 거담, 강장, 혈압강하 효과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이 밖에도 자폐증세가 있는 어린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노인들에게 자신감과 적극성을 갖게 해 주며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특별한 효과가 있어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독일·러시아·일본 등에서는 ‘산림요법’이라는 건강법이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숲 속에 들어가서 나무가 발산하는 향기를 마심으로써 정신의 안정효과, 진정효과를 기대하려는 것이다.
#생활에 이상적인 산림의 공기
병원 내 감염이나 실내오염 실태를 세밀하게 살펴보면 가히 절망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상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공기 중에 여러 종류의 부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또 실내를 완전한 무균상태로 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그 장소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우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늘 집먼지 진드기, 세균, 화학물질(VOCs)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새집증후군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세균이나 집먼지 진드기의 번식을 억제하고 화학물질을 제어하여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실내 환경을 실현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당연히 피톤치드로 가득한 산림의 공기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이상적인 공기는 바로 산림에 있는 것이다.
#요양시설에 피톤치드를 도입하자.
국민의 건강증진에 나무와 숲의 신비한 힘을 도입한 나라가 있다. 독일 정부는 산림욕을 포함하는 자연요법에 대해 많은 의료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 산림욕 프로그램이 개설된 휴양시설이 독일 전국에 약 400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산림치료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진단서를 가지고 산림욕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무료라고 한다. 산림욕과 같은 대체의학을 국민의 건강증진에 접목시킨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들도 의사가 하는 일의 절반을 숲에 맡기라고 권장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이 프로그램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의 ‘세계 인구추계’ 자료를 토대로 보건복지부가 노령화 지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9.1%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노인인 셈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고령화 속도가 더 빨라져 앞으로 20년 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막대한 의료비 지출이다. 지난 10년간 노인 의료비 지출이 9.3배나 폭증해 5조원(2005년)에 달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노인성 질환은 의학적 치료보다 포괄적이고 균형 있는 장기적인 요양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2004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실버타운은 49개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 피톤치드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책적으로는 생활습관 개선 등 건강증진 사업의 활성화, 노인 요양병상 확대, 의료수가 체계의 개선 등 다양한 방면의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예방의학이라는 차원에서 독일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실버타운의 실내를 목재로 처리하거나 공조장치에 의해 피톤치드를 공급해줌으로써 항시 피톤치드가 충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쾌적한 실내공기는 기분 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어느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위해 회복실(relax room)을 설치하고 여기에 특수한 공조를 사용하여 피톤치드를 흘려보내고 음악이나 환경TV를 방영하고 있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접목한 좋은 예이다.
또 다른 병원의 회복실에서는 400ppb(10억분의 1) 정도의 산림 내 농도 이상의 피톤치드를 공급하고 회복실에서 생활훈련을 하고 있는 환자들의 생리나 심리반응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어떤 메커니즘에 의한 것인지는 불명확하지만 동공반사, 맥박, 심장박동의 간격, 혈압 등의 생리반응과 작업능률 등 심리반응에서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환자들도 “이 방에 들어오면 좋은 향을 맡을 수 있어서 자연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대환영이다. 이른바 쾌적한 환경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리기능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나무향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피톤치드이다.
100년도 못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천 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
그 열쇠는 바로 생명 연장의 물질 피톤치드가 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하영/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