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스 아메리칸사의 YF-100 슈퍼 세이버 시제기. <출처: 미공군>
한국전을 계기로 서둘러 개발
F-100 슈퍼 세이버 전폭기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이다. 1949년 2월에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기존 F-86D 세이버 요격기의 주날개를 전용하는 것으로 설계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1950년 한국전 발발 직후 등장한 MiG-15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완성하게 된다. 한국전에서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1954년 9월부터 미공군에 인도되었고, 초기형인 F-100A 슈퍼 세이버는 공중전 수행을 위한 제공전투기로 개발되어 1955년 4월까지 203대가 납품되었다.
무장은 공중전을 중심으로 채택되었다. 공중전용 레이더 거리측정기를 사용해 조준하는 M39형 20mm 기관포 4문이 전방동체 아래에 위치하였으며 1분당 발사속도는 1,500발로 F-86F 세이버의 12.7mm 기관총과 비교되는 강력한 화력이었다. 반면 폭탄 탑재는 0.9톤으로 기존 미군 제트전투기와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었다. 초기형 F-100A은 지상 공격을 위한 무장은 크게 강화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구소련 공군은 이에 맞서 1955년부터 비슷한 성능의 기체인 MiG-19 파머 초음속 전투기 초기형 139대를 생산 실전 배치했으나 미공군은 이미 203대의 F-100A 슈퍼 세이버를 배치한 상태여서 경쟁에서 앞서지는 못했다.
- ▲ CH-54 헬기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 F-100A. <출처: 미공군>
- ▲ 미항공우주국 NASA의 전신인 NACA에서 초음속 비행 성능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F-100A 슈퍼 세이버기를 테스트한 바 있다. <출처: 미공군>
전술핵폭탄 탑재기로 개량
미공군은 제공전투기인 F-86A/E/F 세이버 전투기 후속으로 F-100A를 대량으로 도입하려 했으나 미국 백악관이 소형 전술핵폭탄을 사용한다는 ‘대량 보복 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전폭기로 개량한 F-100C형을 도입하게 된다.
F-100C 슈퍼 세이버를 도입하기 전, 구형의 세이버 전투기 최종 모델인 아음속 전폭기 F-86H에는 전술핵폭탄을 운용하고 있었으며 서유럽의 나토지역용으로 아음속 전폭기 F-84F도 같은 용도로 대량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소련 및 중국 영공에 초음속으로 침공해 들어갈 수 있는 고성능 기체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F-100A 슈퍼 세이버를 개량한 전투폭격기 F-100C형 이었다.
- ▲ 미공군은 ‘대량 보복 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전술핵폭탄을 투발할 수 있는 개량형 F-100C 476대를 양산/도입하게 된다. <출처: 미공군>
F-100C는 0.9톤의 폭탄탑재가 한계였던 A형의 주날개를 튼튼한 것으로 교체하여 최대 2.27톤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탑재 파일런이 6개로 늘어났다. 한 개의 파일런에 탑재할 수 있는 한계는 340kg으로, 당시 소형 전술핵폭탄인 Mk.7형을 장착할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투기급에서 전술핵폭탄을 투발할 수 있는 비행전술인 토스 폭격이 적용되었고 저고도폭격시스템인 LABS 장치를 탑재했다. 또한 영국에서 탄생한 호스방식의 ‘프로브 앤 드로그’ 수유장치를 부착하여 공중급유가 가능하도록 했다.
- ▲ KB-50 공중급유기로부터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으로 급유를 받는 F-100C. <출처: 미공군>
폭탄을 더 많이 탑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엔진도 교체되어야 한다. 이에 추력이 증가한 J57-P-21형이 채택된다. 엔진의 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이유는 최대 속도인 음속의 1.3배 초음속 성능을 갖게 된 것이 엔진 교체 덕분이기 때문이다.
양산과 배치도 신속히 진행되어 1955년 7월부터 1956년 4월까지 476대가 만들어져 납품되었다. 성능이 더욱 강화된 후기형 모델 F-100D는 초음속 비행 시 자동조종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했고 좀 더 작아진 전술핵폭탄인 Mk.38/43을 탑재한다. 반대로 주날개 아래 무장장착용 파일런 1개의 무장하중은 454kg으로 늘어났다.
F-100D 슈퍼세이버부터는 미공군 최초의 단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AGM-12 불펍 2발과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B 사이드 와인더 4발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D형의 양산대수는 940대 이다. 마지막 양산형인 복좌의 F-100F형은 1956년부터 1959년 10월까지 339대를 생산하였다.
- ▲ 전술핵 투발용 사양 외에 정찰형 RF-100A가 일부 생산되었는데 이 기체의 실제 사용국은 대만 공군뿐이었다. 대만 공군은 4대를 운용했다. <출처: 미공군>
동맹국에 대량 공급된 F-100
F-100은 1964년 기준으로 전술공군사령부(TAC) 휘하에 D형 10개 대대를 배치했으며 주방위공군(ANG)에는 C형 11개 대대를 배치했다. 이외에 1960년 대만 주둔 미공군에 전술핵폭탄 투발이 가능한 F-100A를 D형 규격으로 개량한 기체가 80대 배치되었고, 터키 주둔 미공군에 4개 대대를 배치하여 중국과 구소련을 전술핵폭탄으로 압박했다. 한편 나토군의 일원인 덴마크 공군에 3개 대대, 프랑스 공군에 2개 대대를 군사원조하여 동맹국의 전술핵 운반 능력을 별도로 갖추게 된다.
미국에서 개발한 슈퍼 세이버는, 냉전시대의 위기감 속에서 세계 각지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프랑스 공군은 1958년 5월1일부터 도입하기 시작하여 최종 100대를 보유했다. 단좌형 85대, 복좌형 15대로 분류되며 1978년 말까지 부대를 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1958년 도입 시기에 프랑스는 나토 회원국이었는데, 자국산 무기로 무장한다는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으나 당시 자국산 전투기가 부족하여 미국제 전폭기를 도입했다. 그러다 20년 후인 1978년 말 남은 기체들을 퇴역시키면서 자국산 미라지 F.1 전투기와 재규어 공격기로 대체하고 퇴역 기체 중 40대는 영국을 거쳐 미국에 반납했다. 이는 도입 당시 미국의 대외군사원조 프로그램(MAP)을 통해 기체를 받았기 때문이다.
덴마크 공군은 1959년 7월, 20대 도입을 시작으로 1961년 38대, 1974년 14대를 추가 인수했다. 덴마크 공군은 F-16A/B 전투기 전력화가 마무리 된 1982년에 F-100 슈퍼 세이버를 퇴역시켰다.
- ▲ 덴마크 공군이 운용했던 기체. <출처: 위키피디아>
이밖에 나토 회원국 중 터키 공군이 200여대를 인수받아 가장 많은 슈퍼세이버를 도입한 해외운용국으로 기록된다. 1958년 10월부터 C/D/F형 등 후기형을 골고루 받았다. 구소련 모스크바의 바로 아래 지역에 위치한 나토 회원국이 전술핵 투발을 전문으로 하는 기체를 200여대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구소련에게 대단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정작 터키 공군의 F-100이 실전에 데뷔한 것은 1974년 키프러스 분쟁 때였다. 같은 나토회원국이면서도 견원지간이었던 그리스군을 상대로 공습을 가한 것이다.
- ▲ 터키 공군이 운용했던 F-100 전폭기. 항공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슈퍼 세이버 해외도입국 중 네 번째 국가는 대만 공군이다. 대만 공군은 1958년 10월부터 F-100A 15대와 F-100F 1대를 시작으로 1960년 103대를 한번에 넘겨받았다. 대만 공군이 도입한 기체는 원래 A형이었지만 D형으로 개량된 사양을 받았다. 개량된 D형은 수직꼬리날개에 경계 레이더인 APS-54 안테나를 장착하여 적기의 공격을 미리 알 수 있었고 AIM-9B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어 공중전 성능이 우수했다.
- ▲ F-100D 슈퍼 세이버는 M39 20mm 기관포 4문을 고정무장으로 장착했다. <출처: 미공군>
- ▲ F-100D의 조종석 콕핏. 아날로그 계기판으로 꽉 차있다. <출처: 미공군>
베트남전에 투입되다
전술핵폭탄 투발 임무를 주목적으로 하던 F-100D는 지상폭격임무기로 전환되어 실전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1960년대 중반에 있었던 베트남전이었다. 초기에는 북베트남 공습에 주로 이용되었으나 전쟁 중반에는 지대공 미사일이나 MiG-21 전투기를 상대할 때의 생존 성능이 낮은 점을 고려하여 남베트남 지역에서 베트콩 게릴라를 공격하는 근접항공지원기로 사용되었다.
- ▲ 1967년 남베트남 작전 지역에 출격한 F-100D에서 2.75인치 로켓탄이 발사되는 장면. <출처: 미공군>
- ▲ 1965년 베트남 다낭에 배치됐던 F-100D 슈퍼 세이버. <출처: 미공군>
- ▲ 1971년 베트남 판랑 기지에 배치됐던 F-100F. <출처: 미공군>
베트남전 주력 사용기체는 후기형인 F-100D/F로 폭탄 탑재량은 1.8톤에 그쳤다. 또 다른 미공군의 전술핵폭탄 투발 전폭기인 F-105 선더치프에 비하면 성능이 너무 낮은 편이라서 서둘러 후속 모델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급하게 신형 대체기종을 도입하는데, A-7D 콜세어 공격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1970년부터 고성능의 F-4 팬텀 전폭기가 본격 배치됨에 따라 F-100D/F 슈퍼 세이버 전폭기는 베트남전에서 철수하게 된다.
한국 군산기지에 잠시 주둔한 F-100C/F
한편 한국에서는 1968년 북한이 미국의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를 납치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미국은 일본에 주둔하던 5공군 354전술전투비행단의 F-100C/F 슈퍼 세이버 2개 대대를 1970년까지 군산 공군기지에 고정 배치하고 대북 전력으로 운용했다. 전술핵 탑재 전폭기 2개 대대를 주둔시켜 북한과 중국에 도발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베트남전이 일어나기 전인 1964년까지 미공군은 9개 대대의 F-100을 주일 미공군기지에 배치하고 3개 대대는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 배치하여 각각 구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북한이 1968-1969년 사이에 미국에 대해 도발을 일삼자 전술핵폭탄 탑재 F-100C/F 슈퍼세이버 전폭기를 한반도에 주둔시킨 것이다.
F-100의 현역 은퇴
1979년 미공군은 F-100 슈퍼 세이버 전폭기를 퇴역시키고 후속 기체인 A-10 공격기로 부대를 개편한다. 이후 F-100은 사막에 보관되었으며, 대만 공군의 F-100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 교체 용도로 하나 둘씩 해체되었다. 재고가 충분했던 덕분에 대만 공군은 1988년까지 F-100을 운용할 수 있었다. 대만에서의 활동을 끝으로 F-100은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사족으로 슈퍼 세이버는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미공군 특수기동시범팀인 <선더버즈>의 기체로 사용된 바 있다.
- ▲ 미공군은 1979년 F-100D/F를 퇴역시켰으며 이후 비행 가능한 기체들은 타겟 드론기 QF-100으로 개조되어 최후의 임무를 수행했다. <출처: 미공군>
- ▲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미공군 특수기동시범팀인 <선더버즈>팀에서 F-100D를 운용한 바 있다. <출처: 미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