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 P90.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진짜 총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출처 : fnherstal.com> |
문학이나 극 작품에 별도로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 장르가 있을 정도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크다. 가까운 시일 내 이루어지기 힘들거나 아니면 이론상으로 도저히 실현되기 곤란할 만큼 허무맹랑한 내용도 있지만, 스마트폰처럼 SF에 묘사 된 내용이 종종 현실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이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상과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한시도 그친 적이 없다.
SF 영화에 나올 듯한 모양의 총 그런데 이런 노력이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드시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기의 세계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굳이 발전하거나 진화할 필요가 없는 분야도 있는데 바로 무기가 그렇다. 하지만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무기는 그 어느 분야보다 빨리 진화하여 왔다. 그렇다 보니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무기들도 어느덧 현실에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 외계인의 도움으로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B-2 폭격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B-2의 특징인 전익기는 생각보다 오래된 기체 형태지만,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비행 제어 문제가 해결되면서 실용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구상이나 개발은 오래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등장 당시 기준으로 워낙 모양이 낯설어 최첨단, 혹은 시대를 초월한 무기로 보이게 되는 경향이 크다.
가장 단순한 무기인 총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SF영화에서는 멋진 광선총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M2 중기관총, M1911 권총의 예에서 보듯이 한 번 잘 만들어진 총은 오랫동안 사용된다. 그래서 총은 외형적인 변화가 가장 더딘 무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총이라면 대략 이러이러한 모양이라는 고정 관념을 깬 획기적인 괴물이 1990년대에 등장하였다. 바로 FN P90(이하 P90)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 특수부대에서 사용 중인 FN P90 <출처 (cc) Cypher3 at military.wikia.com> |
개인방어화기라는 개념 아무런 설명 없이 P90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희한하게 생겼다. 총이라는 설명을 듣고 사격에 나선다면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 것부터 심각하게 궁리를 하여야 할 만한 특이한 디자인이다. 일반 보병이라면 경우에 따라 백병전까지 생각하여야 하는데, 이것을 들고 격투를 벌이기도 난감하다. 이러한 이야기는 다시 말해 P90이 일반적인 총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관단총으로 보기도 하지만 P90은 이른바 "개인방어화기(Personal Defense Weapon-이하 PDW)"라고 한다. PDW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하는데 사용하는, 즉 호신용 무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PDW가 그 동안 존재하지 않다가 갑자기 등장한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총의 원초적인 목적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도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개인방어라면 총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위급한 경우이므로 항상 휴대가 가능하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선에서 직접 교전을 벌일 일이 거의 없는 장군이라도 권총을 휴대하는 이유는 만약을 위해서다. 그런데 현재 제식화 된 대부분의 소총은 이런 목적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특히 2차대전이후 보병 제식화기의 총아로 등장한 돌격소총은 근접전에서도 빠르고 강력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PDW가 존재하는 것은 특별히 그러한 목적에 더욱 적합한 총이 따로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PDW는 휴대가 더욱 편리하고 사격이 훨씬 용이한 총이다. 그것은 기존 총들이 충분히 커버하지 못한 틈새에 대응하기 위한 총이라는 뜻이다. 돌격소총보다 휴대하기 편리하면서도 최후의 호신 수단으로 많이 사용하는 권총보다는 화력이 강하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사이프러스 국경 경비대의 FN P90 |
고심 끝에 나온 해결책 이런 총기가 필요한 부류는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예를 들어 행정, 군수, 수송 같은 비전투 병과는 물론 포병, 기갑처럼 직접 소총을 들고 교전을 벌일 일이 흔하지 않는 병과 그리고 적진에 침투하여 후방 작전을 펼치는 특수병과의 요원들은 고성능이면서도 휴대가 편리한 경량의 총을 요구하였다. 이런 목적에 오랫동안 기관단총이 사용되었지만 권총탄을 사용하여 화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특별히 무게가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FN P90용 SS190탄 시리즈 <출처 (cc) Liftarn at Wikimedia.org> |
| 벨기에의 총기 명가인 ‘파브리크 나시오날 드 에르스탈(FN Herstal-이하 FN)’사는 냉전의 마지막 시기였던 1980년대 말에 이런 목적에 적합한 ‘프로젝트 90’으로 명명된 혁신적인 새로운 자동화기 연구에 나섰다. 개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접전에 특화된 가벼운 돌격소총 혹은 화력이 강화된 경량의 기관단총이었는데, 기존의 방탄복을 관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만 휴대가 편리하고 지속 사격 능력도 좋아야 했다.
이율배반적인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총기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 생각을 탈피하여야 했다. 100미터 내외의 근접 교전을 원칙으로 하므로 불펍 방식으로 총열을 최대한 단축시켜 극단적으로 컴팩트한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이에 걸맞게 탄 공급 체계도 변경하였고 클로즈드 볼트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였다. 더불어 무게를 감소시키기 위해 개머리판 등의 여러 부분을 축소시켰는데 문제는 반동 제어였다.
무게를 감소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가벼울수록 반동이 커서 정확도가 떨어지고 연사가 어렵다. 고심 끝에 FN은 해법을 탄에서 찾았다. 이른바 단소탄을 사용하는 돌격소총처럼 FN은 기존 돌격소총탄보다 더욱 작은 5.7x28mm SS190탄을 새롭게 개발하였다. 덕분에 근거리에서 관통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되 기존의 돌격소총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사격 시 반동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된 시대가 요구한 총 FN P90의 인상적인 50발 들이 탄창 <출처 (cc) ROG5728 at Wikimedia.org> |
FN P90 탄창의 작동원리를 보여주는 그림. <출처 : 미국 특허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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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완성된 새로운 소총은 P90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고 1991년부터 본격 제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이때 소련의 해체와 냉전의 종식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혁이 이루어지면서 양산은 난항에 부딪혔다. 사용 목적이 극히 제한 된 P90이 군사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수요가 줄어들게 되면서 벨기에군도 도입을 망설였을 정도였다. 결국 특수부대가 소량 도입하면서 간신히 제식화되었고 1991년 걸프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은 P90이 다른 쪽으로 빛을 보게 되는 기회를 만들었다. 강대국간의 전면전 위험이 급속히 감소된 대신, 제한적인 국지전이나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비정규전이 새로운 위협으로 대두된 것이다. 도심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백주대낮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중무장한 테러범들을 상대하려면 군경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보유가 간편하면서도 화력이 강한 총기를 보유하여야 했다.
바로 이때 P90이 대 테러 작전에 대단히 적합한 총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새롭게 각광을 받았다. 크기와 무게가 기존 돌격소총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어서 편리하게 휴대할 수 있지만 화력은 충분히 강력하였고 특히 50발이나 장탄되는 인상적인 막대탄창은 급박한 교전 시에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덕분에 현재까지 40여 개국에 판매가 되었는데, 총기에 관한 한 콧대가 센 미국과 독일도 구매를 주저하지 않았다.
개인방어화기라는 분야를 개척 총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P90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총이 되었다. 더구나 기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택한 극단적 모양의 디자인은 최첨단이라는 인식을 많이 이들에게 각인시켰고 총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만든 아이템이 되었다. 비록 범용성이 떨어지는 탄을 사용하여 운용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지만 P90은 PDW라는 분야를 확실히 개척한 기념비적 소총이라 할 수 있다.
민수용 반자동 버전인 FN PS90 <출처 (cc) ROG5728 at Wikimedia.org> |
제원 탄약 5.7x28mm (SS190탄) / 작동방식 블로우백, 클로즈드 볼트 / 전장 500mm / 중량 2.5kg / 발사속도 분당 900발 / 유효사거리 200m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