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부터 8월1일까지 2박3일간 미 최신예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인 '채피'를
동승취재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미 최신예 이지스함을 며칠간 직접 타고 훈련에
동승한 것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입니다. 미 언론을 제외한 해외 언론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번 취재가 성사되는 데는 여러 달이 걸렸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고 외국
기자에게 최신예 함정을 공개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해군의 경우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난달 초 미 태평양 사령부와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취재 허용 결정이 내려져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취재기간중 함장실까지 내주며 취재를 지원해 주신 한국계 최희동 함장님과 일부
극비 시설을 제외하곤 CIC, 소나룸, 컴퓨터실, 어뢰 보관실 등 예민한 시설까지 모두 볼 수 있게
도와주신 채피 300여 승무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해군을 아시는 분들은 외부인에게
함장실을 며칠간 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한국계 함장이 백인,흑인,
중국계, 히스패닉, 유럽계, 아랍계, 인디언계 등 세계 각국 출신들로 구성된 300여명의 승무원을
잘 지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 뿌듯했습니다. 또 2박3일간의 길지 않은 훈련 일정속에서
10여차례나 쉴 새 없이 훈련을 하며 승무원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숙련을 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틀 동안 잠을 몇시간 못 잤습니다.
아울러 이 출장 때문에 지난달 29일 육군 기계화학교 견학에도 동참을 못해 우리 BEMIL 회원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사안의 성격상 보안을 유지하느라 회원님들께 불참한 자세한 사유를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국방부나 해군 등 군관계자들과 동료 출입 기자들에게도 29일부터 이번주초
까지 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본의 아니게 둘러댔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림팩 훈련을 끝내고 이날 오후
진주만에 입항한 문무대왕함을 방문하자 문무대왕함 관계자가 깜짝 놀라 서울의 해군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 해군측이 이를 확인하느라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도 보안유지를 위해
"하와이에 휴가차 왔다가 림팩 훈련에 참가한 우리 해군 함정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위문차
방문한 것"이라고 해군측에 둘러댔습니다. 다시 한번 본의 아니게 사실과 다른 말씀을 드리게 된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바다에 나간 배 위에서 몇시간씩 돌아다니며 취재했더니 하와이의 강렬한 햇볕 때문에 약한 화상을
입을 정도로 타더군요. 이런 지모습으로 나타났더니 제가 하와이로 휴가간 줄 아는 사람들은 휴가
제대로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실제로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와이키키 근처에도 못 가보고
귀국했습니다.
아래는 오늘 아침 조선닷컴에 실린 제 기사입니다. 신문 기사는 지면상 양이 적어 이와 다르게,
좀 길게 작성한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 --------------------------------------------------------------------------
지난달 30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 부두. 미 해군의 최신예 9000
급(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인 ‘채피(CHAFEE)’가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을 세차례 울렸다.
채피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7~9일만에 한반도로 긴급 출동해 미 7함대 소속으로 한국군을
지원하게 돼 있는 미 해군 함정중 하나다. 1300㎞ 이상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족집게처럼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수십발을 갖고 있어 유사시 북한 지역내 전략 목표물을
공격한다. 채피는 지난 3월 미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 전단 소속으로 한미 연합 독수리 연습에
참가한 뒤 강원도 동해시를 친선 방문하기도 했다.
채피와 한국과의 인연은 이 뿐 아니다. 함명(艦名)은 6•25전쟁 때 해병대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미 해군성 장관을 지낸 고(故) 채피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난 4월엔 미 해군 주요 전투
함정중 처음으로 한국계인 최희동(41) 중령이 이 배의 함장이 됐다. 최 중령은 인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채피는 지난달 31일 끝난 림팩(RIMPAC•환태평양) 2008 훈련에 참가했던 우리 해군의 구축함
문무대왕함과 양만춘함을 뒷바라지하는 ‘초청함’ 역할도 했다. 림팩은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
일본, 영국, 호주 등 10개국 해군이 참가해 2년마다 벌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합동 해군 훈련이다.
해군 환태평양훈련분대 사령관 박래범(49) 대령은 “이번 훈련에서 최 함장 등 채피 승무원들의
적극적인 지원 덕택에 고생을 덜했다”고 말했다. 미 태평양사령부 고위 관계자는 “최 함장과
채피는 한미 군사동맹의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채피가 2박3일의 훈련 일정으로 진주만 해군기지를 출항할 때 기자는 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미국의 최신예 함정에 동승해 훈련 전(全)기간을 취재했다. 종전에 미 이지스함들은 항구에
정박했을 때에만 단편적으로 국내 언론에 공개됐을 뿐이다.
채피는 취역(就役)한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12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짜리 첨단 함정이다.
2박3일 동안 채피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정예 함정으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30분쯤 하와이 남서쪽 80여㎞ 해상에서 채피에 탑재돼 있는 SH-60B ‘시호크(Seahawk)’
헬기는 함정 뒷부분 비행갑판에서 2시간30분 동안이나 수십 차례 뜨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고유가(高油價) 때문에 기동훈련이 대폭 축소된 한국군으로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장면이다.
특히 시속 60여㎞의 강풍과 칠흑같은 어둠 속에 파도가 높이 2~3로 일어 헬기와 배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훈련이 계속돼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MK-46 어뢰와 ‘헬파이어’
미사일로 적 잠수함이나 소형 함정을 공격하는 SH-60은 3~4 높이에서 떨썩 주저앉듯이 갑판에
내려앉았다가 떠오르기를 되풀이했다.
온갖 작전정보가 종합돼 채피의 두뇌이자 심장부에 해당하는 전투정보센터(CIC)에서의 훈련장면도
이례적으로 공개됐다. 가로•세로 2 크기의 대형 스크린 2대에는 가상 적 항공기와 대함(對艦)
미사일이 한꺼번에 3,4대가 채피를 향해 달려들자 이지스 전투체계 컴퓨터가 위협 순위를 스스로
판단,SM-2 및 ESSM 대공(對空)미사일, 구경 20㎜ 근접방공시스템 등으로 이들을 격추하는 상황이
각종 기호로 표시됐다. 채피의 이지스 전투체계 레이더는 1000㎞ 밖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발견하고, 한꺼번에 18대의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다. 구경 127㎜ 함포탄
12발과 구경 12.7㎜ 기관총탄 1200발을 실제로 쏘는 훈련도 이뤄졌다.
훈련 기간중 ‘대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이라 불리는 위기 대처 훈련도 인상 깊었다.
적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화재와 침수 등에 대비한 소화(消火) 및 방수(防水) 훈련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7시40분쯤 첫번째 미사일이 함정 오른쪽 뒷부분을 강타, 식당 등에서 불이 나
6명의 인명피해가 생기는 상황이 가상으로 벌어졌다. 이내 방화복과 산소통 등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불을 껐다. 적 미사일은 세 차례나 채피를 가상으로 타격했고,
이 가상 상황에 따라 승무원들은 불을 끈 뒤 함정에 난 구멍으로 물이 새들어오는 것을 막고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훈련을 2시간 가까이 했다. 함장 최 중령은 “2차대전부터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 수많은 실전에서 터득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해군에 비해 여군이 훨씬 많은 것도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전체 승무원 300명 가운데 여군은
10%가 넘는 40여명에 달했다. 장교 27명중 6명이, ‘대미지 컨트롤’ 훈련 때 종합상황실인
CCS(Central Control Station) 요원 10명 중 9명이 각각 여군이었다. 모병제인 미국에서 이들이 해군을 지원한 이유도 궁금했다. 장병 10명중 9명 꼴로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작전장교 푸게이트(34) 대위는
“9년간 21개국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장병 후생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써 음식 메뉴가 50~60여종에 달해 21일을 주기로 같은 메뉴가
나온다고 한다.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배에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소각하고
플래스틱은 압축기로 납작하게 찌그러뜨려 보관했다가 항구에 도착하면 처리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와이=유용원 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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