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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Danny boy 오 대니 보이 ( 아 목동아 ) 아일랜드 민요

바래미나 2013. 8. 2. 01:18

Oh Danny boy 오 대니 보이 ( 아 목동아 ) 아일랜드 민요 





Sil Austin이 섹스폰으로 연주하는 <오 대니 보이>



우리가 거의 영국 민요로 알고 있는 <아 목동아>는 수세기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유럽 서쪽의 섬나라 아일랜드의 민요이다.
아일랜드는 1921년 32개 주 중남부의 26개주가 자치령이 되었고.
북부 얼스타 지방은 영국이 놓지 않아 영국에 흡수되었다.
그래서 남부의 에이레는 1949년 영연방에서 탈퇴하여
독립 공화국이 되었지만, 영국의 식민화가 먼저 시작되어
살던 사람들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지금도 영국 땅이다.



아일랜드란 말은 본래 ‘녹색의 땅’ 이란 뜻이다.
아일랜드의 산하는 녹색이 눈부시고 아름답다.
땅덩어리 전체가 국립공원 같다.
아일랜드에는 40가지의 녹색이 있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아일랜드의 별명이 에메랄드 섬인 것도
녹색 때문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의 민요<아 목동아>는 바로 이 초록의 노래인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소절마다 초록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일랜드 섬의 최북단이며 제2의 도시 런던데리는
바로<아 목동아>의 원산지이다.
<대니 보이>는 곡 자체만으로는
<런던데리 에어(London-derry Air)>라 부른다.
가사가 붙였을 때 곡명이 <대니 보이(Danny Boy)>요
우리 말 번역은 <아 목동아>이다.



<런던데리 에어>란 이름은 이 노래의 곡조가
런던데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런던데리 에어>의 악보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55년 조지 페트리란 사람이 더블린에서 펴낸
<아일랜드 고가(古歌)집>제1권을 통해서이다. 이 곡은 아무
제목도 없이‘ 제인 로스 양 채집’이라는 설명만 붙어 있었다.
어떻게 전해왔는지 모르는 이 노래의 작곡자는 미상이다.

이 곡의 작곡자는 영국에 저항하던 아일랜드의
영웅 ‘휴 오닐’을 따라다니던 하프 연주자
‘로리 오케이헌’이라는 말도 있고, 또 다른 눈 먼 하프 연주자
‘데니스 오헴프시’라는 말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그리고 ‘제인 로스’가 채집 했을 당시는 멜로디뿐이었고,
<아일랜드 고가(古歌)집>에 실릴 때는 피아노곡으로
편곡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런던데리 에어>로만 전해져 왔다.
그 멜로디가 하도 고와서 뒤에 여러 사람이 가사를 붙였다.



그 중의 하나가 <대니 보이>다.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 시인 F. E. 웨덜 리가 1913년에 쓴 시다.
가사가 붙여지면서 이 노래는 전 세계에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런던데리 에어>는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어둡게
그림자 지어져 마디마디에 비애가 절절한 곡이다.
또한 아일랜드 민요에 공통된 노스탤지어(nostalgia)가
회한처럼 서려 있는 곡이다.

<대니 보이>의 가사는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번역해서 부르는 우리말 가사는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 마다 울려나오고’로 시작한다.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로 연결하고 있다.



원 가사를 번역하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갈 때가 왔다.
나는 기다리겠다.
목장에 여름이 오거든 돌아오려무나
아니면 산골짜기에 눈이 덮이거든
돌아오려무나. 비가 오나 눈이오나
나는 너를 기다리겠다.’의 뜻으로 되어있다.

<대니 보이>란 말을 목동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대니’는 ‘다니엘’이란 이름의 애칭이다.
이 다니엘 소년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더블린의 도서관 직원이었던 제임스 피츠패트릭의 아들이라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다니엘 소년은 젊어서 죽었다고 한다.



<대니 보이> 외에 <런던데리 에어>의 곡에 붙여진 지금도
불려지고 있는 가사로는 <델리의 계곡에서>라는 것이 있다.
런던데리의 골짜기를 떠나 멀리 바다를 건너간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런던데리를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의 북서 지방은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다.
데리 계곡이라 불리는 이 일대의 경치가 <대니 보이>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낳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곳에 잠들어있는 제인 로스라는 한 시골 여인의 소박한 정성이
온 세계인이 즐겨 듣고 부르는 명곡을 탄생시켰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심산(深山)의 초록처럼 자생하는 것이 아닐까......



오, 대니 보이
골짜기마다에서 저 산 언저리까지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단다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roses are falling
It's you, it'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여름은 지나고
장미는 떨어지고 있어
넌 떠나야 하는데
난 그럴 수가 없단다

Someday may he come
when all the flowers are dying
And I am dead, as dead I will may be

꽃들이 시들어 가면
언젠가 아들이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난 싸늘히 죽어 있겠지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and kneel and say
And I'll be there for me

네가 돌아와 내가 누워 있는 곳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할테지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But come you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And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Yes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저 초원에 여름이 오면
네가 돌아와 줄까
계곡이 숨을 죽이고
눈으로 뒤덮일 때면 돌아 올까
햇빛이 비추어도, 그늘이 드리워도
난 여기 있을 거야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난 정말 널 사랑한단다



해마다 3월 17일,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페트릭을 기념하는 St. Patrick's Day 가 가까워지면
미국 곳곳에서는 Oh Danny Boy가 수없이 불려진다.

미국에 살고있는 아일랜드계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아일랜드 민요라는 사실에 누구도 반론이 없다.

그러나 새롭게 미국에 이민 오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Danny Boy는
같은 멜로디로 만들어진 100여곡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이다.
작곡가는 엔터테이너이자 작곡가이고 변호사인 아일랜드의
웨덜리(Frederic Edward Weatherly, 1848-1929)이다.
1910년, Danny Boy의 가사와 곡을 썼던 것이다.

나나 무스쿠리가 부르는 오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페티 페이지 >



그런데 1912년에 미국에 사는
그의 며느리가 Londonderry Air라는
표제가 붙어있는 악보를 보냈다. Londonderry Air라는 노래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웨덜리는 그 노래가 기가 막히게도
자기가 쓴 Danny Boy와 꼭 같은 노래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1913년에 개정된 악보를 출판했다.
물론 웨덜리는 단 한번도 아일랜드를 벗어나 본 일이 없었다.

데니 보이의 다른 이름인 Londonderry Air는
아마도 정치적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보아진다.

Londonderry Air라는 단어는 17세기초에 잉글랜드(England)에
의해서 점령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북부 아일랜드와 브리튼
(Britain) 지역의 단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용어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일랜드 애국주의자들은
Derry라는 용어 쓰기를 좋아했다.
그 말은 아일랜드 북부 도시와
그 일대 지역을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Air, 즉 '하늘'이라는 말도 그 지역에서 즐겨 사용되는 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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