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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만 3천명, 동물도 수컷만…‘세계 유일의 땅’

바래미나 2013. 1. 1. 00:10

남자만 3천명, 동물도 수컷만…‘세계 유일의 땅’

 

그리스 아토스산 해안에 서 있는 그레고리우 수도원. 조현 기자

[조현의 그리스 종교기행] ① 아토스산: 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
금녀의 땅, 애욕의 풍랑 맞서 동굴수행

■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휴심정> 바로가기

요즘 경제 위기의 진앙으로 지목되는 그리스는 서구문명의 진원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세계 제국과 동서회통의

개창자였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들은 서양 학문과 철학의 아버지였고, 근엄함에 벗어난,

 ‘19금’ 영화 같은 그리스 신화는 최장기 상영 드라마였다. 이를 전파한 것은 ‘스승’ 그리스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로마와

그 뒤를 이은 서구 열강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질문과 토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그리스 철학과 달리 박제된

진리가 되고, 일방의 정의가 되기도 했다. 지난 4~5월 그리스로 떠났다. 2천여년 동안 입에 채워진 재갈을 풀고서.

 ● 아토스산은

사제 등 남자만 3천여명 사는 세계서 유일한 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수도원공화국이다. 모든 게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그리스와는 별도의 비자를 받아야만

입국이 허락되는 반자치공화국이다. 그리스 북서부 반도의 2033m의 산이며 산 주위는 절벽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사실상 외딴섬과 다름없다. 사제와 수도사 등 3천명가량의 성인 남성들이 산다.

이곳은 ‘성모 마리아의 정원’으로 불린다. 정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해 승천한 뒤,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나자로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하던 중 표류하다 아토스산에 내렸다 한다. 마리아는 아토스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해 이 산을 선물로 달라고 하느님한테 기도해 승낙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아만을 위해서

다른 여성은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조현 기자

아토스산 디오니시유수도원.

노새를 앞세우고 트레킹 순례중인 수도사들.

 

수도원 숙박 예약을 못한 터라 혹시 한뎃잠을 잘 때에 대비해 나무 지팡이를 들고 탔다. 아토스산엔 야생늑대가 많단다.

그런데 아토스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늑대뿐이다. 그리스정교회 전통을 존중한다는 듯 하나같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성인 남자들만이 배 안에 가득하다. 동물도 암컷은 반입되지 않는다는 곳이다.

남자와 여자는 자석처럼 붙어 환희의 찬가를 부르면서도, 족쇄의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기 때문인가. 기독교는 동정녀

잉태설로 남성을 배제했고, 아토스산에선 여성을 배제했다. 영성과 이성(異性)은 공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여자 없이 천국에 이를 수 있을까. 저바다를 헤엄쳐 건너야 할만큼이나 막막하다.

한 시간쯤 지나 디오니시우 수도원에 내렸다. 성산엔 사제와 수도사들만이 아니라 의사와 목수와 요리사와 일꾼 등도 있다.

그 가운데 한명의 안내로 작은 사당처럼 생긴 곳을 돌아서니, 철망 속에 해골이 가득 쌓여 있다. 엽기적인 사체 유기의 현장을

발견한 양 눈이 커진 것을 보자 그는 여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아니란다. 수도사들의 유골이다. 이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아니 떠나지 않는다.  

빨랫줄에 빨래를 걸고 있는 수도사.

밀실엔 수도원을 설립한 성인의 관이 놓여 있다. 안내자는 대문을 빠져나와 위쪽 절벽을 가리켰다. 벼랑 끝에 걸려 있는

암자가 보인다. 성인이 암자 안 동굴에서 40년을 수도했다고 한다. 뭔가 잘못 이해하지 않도록 하려는 듯 안내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조했다. “4년이 아니고, 40년!”

험한 경사로를 따라 10여분 오르니 동굴 수도터에 지은 암자다. 낭떠러지 아래로는 시퍼런 풍랑이 일고 있다. 욕망의 파도, 애욕의 격랑이다. 몸이 쉬면 마음은 풀어지기 쉽다. 육신을 고단케 하는 것은 애욕에 휘말려 부서질 영혼을 붙들어 매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절벽의 수도원과 수도원 사이에 가로놓인 산을 넘는 트레킹 순례야말로 가장 훌륭한 수도의 하나다.

시모노페트라 수도원까지 트레킹한 데 이어 다음날 아침 다시 반대 방향으로 트레킹에 나선다. 하지만 ‘연인’의 얼굴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빗길에 헤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온 디오니시우 수도원에서 보았던 노수도사의 눈빛이다. “나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상처까지 다 알고 있다네. 그리고 다 이해할 수 있다네. 아파하지 말게. 신은 그대를 참으로 사랑하신다네.”

수도 동굴 내부.

비록 아토스산 설산 고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전설의 은자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다정한 침묵의 언어를 건네준 ‘내 마음의 연인’과 함께 최고의 선경을 걷는다.

너덜바위들이 많은 곳에 있는 바위대문에 쉬고 있으니 노새에 짐을 실은 두 명의 수도사들이 지난다. 물질문명의 세계에 고속도로를 놓은 유럽의 한켠에서 세상에 아랑곳없이 고대의 모습 그대로 유유자적하며 하늘이 준 정원을 거니는 이들이 있다.

 이 문을 지나니 다른 세상이다. 바위산 정상 부근에서부터 아래쪽까지 암자와 동굴들이 벌집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저 벌집 같은 동굴 속엔 어떤 단꿀이 숨어 있는 것일까.

동물도 암컷은 금지한 곳,욕망하는 마음과 단절의 삶
예배당 촛불만 켠 채 영혼 교감,수도사 얼굴엔 달님의 미소가

존 에프. 케네디 사후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과 재혼한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만약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 돈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해안에 별장을 두고 지냈던 오나시스는 아토스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한 침략지의 여자들을 나눠갖는 것으로 전투의욕을 고양시켰던 북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드로스가 이들을 봤다면 또 어땠을까.

산의 한쪽 경사면에 별처럼 박혀 있는 암자의 숲을 헤치고, 아기아니 수도원에 들어섰다. 이곳이 천국임을 아는 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해맑은 바다와 벌집 같은 암자들, 성 조지 성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하 제일경에 양지 바른 정자에 앉은

수도사들과 순례객들이 따스한 담소를 나누는 정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기아니수도원에서 사제와 수도사들이 철야 예배 중.

눈이 선한 수도사가 반갑게 맞아주면서 ‘치푸로’ 한 잔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치푸로는 포도로 만든 그리스 정통의 독주다.

고독한 남자들에게도 벗은 있는 법이다. 이곳에도 역시 아기아니 수도원 설립자인 실루안 성인이 수도한 동굴이 있다. 왜 성인들은 이렇게 동굴에서 은둔하며 수도했을까. 공자는 70살에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희로애락애오욕을 자극하고 마음의 풍랑을 일게 하는 외부 환경과 단절해

그 단계임을 느끼게 하는 성인의 눈매가 칼날이 되어 애욕을 자른다.

저녁 8시가 되자 부활절 예배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정교회 수도원의 예배당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촛불만을 사용해 어둡다.

성서를 낭송하는 탁자 위도 불빛이 성서만을 비추고 외부에는 새지 않도록 차단한 것을 보면, 내부 공간을 최대한

 어둡게 하려는 것 같다. 어두움은 육체를 잠재우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일까.

정교회의 예배는 가톨릭의 미사나 개신교의 예배와 달리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찬송도 반음계를 사용하지 않는

그 단순함이 오직 한 곳만을 뚫어 오히려 의식과 무의식의 담을 허문다.

아토스산 성조지수도원.

깊은 밤 천상의 음악을 따라 마당에 나오니 둥근 보름달 주위로는 오색 채운이 감돌고 바람결 따라 물속에서 너울너울 춤춘다.

바다는 달빛을 마음껏 머금고 남아 대자연에 되돌려 주고 있다. 넉넉한 나눔의 잔치다.

예배당에서 밤을 꼬박 세운 수도사들의 얼굴에 달님의 미소가 담겨 있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최초의 인류처럼 한몸에

여성과 남성이 합일된 것일까. 성욕의 강을 건너 자기 안의 아니마(여성성)와 아니무스(남성성)를 통합했다는 베네딕토

성인의 평화에 이른 것일까. 21세기 욕망으로 가득 찬 욕계의 한켠에서 ‘또다른 인류’를 만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동양의 현자의 노래는 이들을 위한 축가였으리라.

‘마음 쉴 때면 문득 달 떠오르고 바람 불어오니, 이 세상 반드시 고해는 아니네.’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