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스크랩] 동영상...클라라 하스킬의 일생

바래미나 2012. 2. 7. 06:37

 

 

 

 

 

 

 

 

    부카레스트에서 유태계 양친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일찌기 세 살적부터 조숙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언니가 피아노로 치는 어떤 곡조든지 곧 따라할 뿐 아니라 아무 어려움없이 다른 조로 옮겨서 치곤 했다.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부모님의 집에 부카레스트 아카데미의 교수가 와서 Mozart소나타를 친 적이 있는데,

    그의 연주가 끝나자 마자 하스킬이 피아노에 앉아 한 음표도 틀림없이 그대로 쳐냈을뿐 아니라,

    더 높은 조로 바꾸어 연주하기까지했다.
    당시까지 하스킬은 어떤 음악교습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녀는 아저씨인 Avram Moscuna를 따라 Vienna로 가서 양육된다.

    유명한 피아노 교사였던 Anton Door가 거기서 그녀의 연주를 듣게 되는데,

    1902년 Neue Freie Presse의 기사에는 그가 연주를 한번 들려준 후 그녀가

    음표하나 틀리지 않게 얼마나 정확히 재현했는지,

    또 그가 지시하는 아무 조성으로나 쳐내는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초견 능력 또한 뛰어나 베토벤 소나타의 한 악장을 한번 보고 전혀 실수없이 쳐냈다.

    1903년에는 한때 Serkin과 Szell을 가르치기도 했던

    Richard Robert교수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작했다.

    그는 이 젊은 예술가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Mozart의 A major 협주곡 K.488의 연주로 음악의 도시 비엔나를 술렁이게 했다.
    2년 후, 열살의 나이에 첫번째 독주회를 열었으며

    1905년에는 Paris Conservatoire에 입학했는데

    교장이었던 Gabriel Faure는 그녀의 특이한 음악적 재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07년 12살짜리이었던 하스킬은 Cortot의 클래스에 입학했고

    15세에 일등으로 졸업하게 된다.


    부카레스트로에서의 귀국 연주회뿐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와 이태리에서

    엄청난 연주회 일정이 뒤따랐는데 스위스에서는 당시

    경력의 최정상에 있었던 부조니가 하스킬의 연주를 듣게된다.

    자신의 Bach Chaconne편곡을 뛰어난 솜씨로 연주하는 그녀를 보고

    그는 당장 베를린으로 가서 그와 함께 공부할 것을 초청하지만

    하스킬의 어머니는 딸이 너무 어리다는 구실로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대신 일련의 연주회를 갖게되지만 1913년이 되자

    그녀가 앓게될 여러 신체장애중 첫 증상이 나타나

    성공적인 연주회 경력은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척추만곡의 진행을 늦추고자 그녀는

    이후의 4년간을 plaster cast를 하고 지내야만 했다.

    피아노에 대한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하스킬은 어린시절

    Joseph Joachim을 들었을 때부터 바이올린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연주에 압도당한 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스위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Peter Rybar의 회고에 따르면

    1944년 Winterthur에서 리허설중 휴식시간동안

    (Rybar는 당시 하스킬이 누군지 몰랐었다고 한다) 

    그녀가 바이얼린을 집어들고는 이내 멘델스존 협주곡의 1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귀를 믿기 힘들정도의 솜씨였다고 한다.

    그는 그 연주가 '나무랄 데 없는 프레이징과 인토네이션을 갖춘,

    무엇보다도 극도로 섬세한 톤의 완벽한 연주'였다고 기억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겨우 3년 정도의 교습,

    그것도 레슨있는 날만 연습했을뿐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천재적인 소질을 설명해준다.

    연주경력동안 하스킬은 수많은 뛰어난 현악 연주자들과 파트너를 이뤘으며,

    그 중에는 Ysaye, Enesco, Casals, Grumiaux, Fournier, Szigeti, Francescatti, Stern,

    Menuhin, Szeryng, 그리고 그녀의 자매인 Jeanne등이 포함된다.

    하스킬의 첫 영국연주는 1926년 Sir Hamilton Harty와 그의 유명한 할레 오케스트라와였다.

    1946년에는 위그모어홀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는데 그 해에 그녀는 BBC를 위해

    여섯 번의 연주회를 열기도 했었다. Thomas Beecham이 그 연주실황을 듣고

    즉시 Mozart협주곡 연주에 초청했다. 후일 50년대 내내,

    그녀는 자주 영국에서 연주회를 갖곤 했었고, 이때에야 국제적인 명성을 갖추고

    중요한 음악 페스티발에 일류 지휘자들과 함께 등장하게됐다.


     Boston Symphony Orchestra와 Charles Munch가 함께한

    보스턴과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일련의 연주는 청중들을 열광시켰다고 Time에 실려있다.

    Rudolf Eli는 Boston Herald지에

    " 음악 역사상 한 세대에 한번이나 일어나는 마법같은 계시이다...

    여태까지 들은, 그리고 앞으로 들을 연주중 가장 아름다운 Beethoven 3번 협주곡 연주였다"

    라고 쓰고 있다.
    1957년 프랑스 정부는 그녀에게 Chevalier of the Legion d'honneur를 수여한다.

    생애의 마지막 10년동안 그녀는 '왜 사람들이 갑자기 내 연주를 들으려고 하지?

    전과 달리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하고 종종 궁금해하곤 했다.

    상상컨대 Haskil이 '사실 전보다 더 안좋은데...'라고 첨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토록 많은 고난과 건강상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 연약한 여인이

    완벽함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건 정말 기적이다.
    1960년 12월,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 Grumiaux와 함께 빠리에서

    의기양양한 연주회를 함께한 며칠 후 자매인 Lili와 함께 브뤼셀에 도착하면서

    하스킬은 기차역의 딱딱한 콘크리트 계단에서 구르게 된다.

    Clinique Longchamps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그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사들은 최선을 다한다.

    잠시 의식이 돌아오자 하스킬은 Lili와 Paris에서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여동생 Jeanne에게 Grumiaux씨에게

    다음날 연주회를 함께하지 못해 얼마나 미안한지 전해달라고 말했다.

    힘없이 손을 마주잡고 창백한 미소를 띈 채,

    '그래도 이 손은 다치지 않았잖아'하고 중얼댔다.
    12월 7일의 이른 아침, 정확히 66살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클라라 하스킬은 죽었다.


     


    Clara Haskil 
    클라라 하스킬

     

    출생: 1895/01/07, Bucharest, Romania
    사망: 1960/12/07, Brussels, Belgium

     

    "나는 그녀의 집에서, 때로는 내 집에서 그녀의 연주를 듣고 다양한 작품들을 더듬어보고,

    운지법을 작성하며 곡을 해석하고 여러 곡들을 함께 훑어보는 특권을 가졌었다.

    모방할 수 없는 스타일로 연주하던 Debussy의 Etude chromatique,

    Rachmaninov의 E flat minor Etude tableau, Liszt의 totentanz나 Chopin의 rondo중

    어떤 passage들이 내 기억에 생생한 건 그 덕분이다.
    가장 화려한 내 동료들중에서도 그처럼 믿을 수 없이 뛰어난 솜씨로 쉽게 피아노를 연주해

    자발적이고, 계산적이지 않은 음악이 흐르도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작업과 연구, 숙고를 통해 얻어내는 것들이

    클라라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Clara Haskil의 친한 친구였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Nikita Magaloff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른 동료들도 그녀에게 열광적이긴 마찬가지여서

    Dinu Lipatti는 그녀의 Abegg Variations을 듣고난 후

    그녀의 연주를 '지상에 있는 완벽함의 총합'이라고 했으며

    Wilhelm Backhaus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했다.
    Tatiana Nikolaieva는 처음 그녀의 연주를 듣고 울음을 터뜨렸으며

    Rudolf Serkin은 완벽한 클라라'라고 불러 그녀를 놀라게 했다.
    당세기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들로부터의 그런 칭송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불운이 함께하던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은 경력의 말년에야 찾아왔다.

    Clara Haskil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된 건 스위스 여행중 리파티의 연주회 후

    그의 방에서였는데, 그의 Mozart연주에 대해 축하의 말을 건네자

    '2주 후에 클라라가 Mozart를 연주하는 걸 들어봐야해요,

    그 후에야 우리가 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알게될 겁니다'

    라고 리파티가 말했다. 그 때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클라라라는 이름은 또렷이 각인되었다.

    이 신비스런 클라라는 연주자는 누구인가?

    그 신비를 풀게된 건 5년이 지난 후의 스위스 여행에서였다.

    1952년 9월 7일 Zurich Tonhalle에서 Hans Munch의 지휘,

    클라라는 Mozart의 E flat 협주곡, K.271의 독주자였다.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질문으로 시작되어 둘째마디에서 독주자가 바로 대답하고,

    질문이 되풀이되면 독주는 두번째 대답을 강조하게 된다.

    독주자의 반응이 나를 집중시키고 궁금증을 유발시켰지만

    다음에 올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tutti가 이어진 후 갑자기 B flat 트릴이 시작되면서 나는

    Mary Garden(Debussy의 첫 Melisande)이 La Boheme1막의 끝부분에 나오는

    Melba의 top C에 대해 묘사한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됐다.
    "Melba는 그 high C를 내 생애에 들어본 가장 낯설고 기묘한 방식으로 노래했어요.

    그 음은 코벤트 가든의 객석을 부유했답니다. 그 음은 멜바의 인후부, 멜바의 몸,

    모든 것을 떠나서 별처럼 다가와 박스에 있는 우리를 지나 영원으로 나가버렸지요.

    나는 그 때까지 그런 비슷한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 이후로 어느 가수에서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음은 코벤트 가든의 홀을 굴러갔어요. 맙소사,

    얼마나 아름다왔던지!

    그 때부터 나는 라보헴의 1막을 들을 때면 늘 그 음을 기다리게 된답니다"

    비슷하게 나도 이 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B flat 트릴이 기다려진다.

    하스킬이 K271협주곡을 녹음하긴 했지만 어떤 녹음도 그녀의 연주를 재현시켜주진 못한다.

    녹음이란 말로할 수 없는 것, 반복될 수 없는 것을 재생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뭔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대해질 수밖에.

    Tonhalle concert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이미 매진된 연주회에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건

    제일 값싼 좌석으로 홀의 뒤쪽에 붙은 별관의 자리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자리는 기둥 뒤쪽에 있어 잘 들리기는 했지만 연주자를 볼 수 없었다.
    협주곡이 끝나고 폭풍같은 박수소리가 시작되자 나는

    기적같은 연주를 들려준 연주자를 보기위해 기둥 뒤에서 나왔다.
    그녀는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띈 채 확신이 필요한듯 지휘자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 런던의 한 비평가의 표현에 의하면

    '신을 위해 Mozart를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을 처음 대면하게 됐다.

    내게는 영원히 감사할만한 경험이었다.
    Haskil은 말년에 동세대 연주자중 가장 뛰어난 Mozartean으로 인정받았지만

    젊은 시절 그녀는 Islamey, The Great Gate of Kiev, Feux follets와

    브람스의 B flat concerto(이틀만에 익혔다고 한다)등의 연주로 성가를 높였다.
    그녀의 인생은 10대에 시작된 척추만곡증으로부터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되어있다.

    1942년 6월, 나찌점령하의 Paris를 탈출한 직후에는

    안신경을 누르는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아야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불굴의 정신으로 이런 좌절들을 극복했다.


     

     

     

    아래글 출처:http://www.boseong51.net/user/ftp/free/relax/50212-Clara%20Haskil.html

     

    세 남자를 사랑한 아름다운 그녀

    Clara Haskil

     

    Clara Haskil

     


     

       Inner Link

     

       피아노의 성녀. 클라라 하스킬

     
     
     

     


     

    음, 이 때는 언제지?

     

    피아노 앞에 앉은 하스킬(마치 르노와르의 피아노치는 소녀를 연상케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클라라 하스킬
    - 발병하기 전의 모습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하스킬(마치 르노와르의 피아노치는 소녀를 연상케한다.) 

     

    그녀와 함께했던 연주자들은 하스킬의 손가락이 엄청나게 길고 넓게 벌어졌다는 말을 전한다. 그녀가 손을 펼치면 부채가 펴진 모양이 되었으며,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이 손목에 직접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클라라 하스킬

    1895년 1월7일: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출생,           부모는 스페인계 유태인
    1899년:아버지 사망
    1905년:뵈젠도르프 협회에서
              솔로 리사이틀로 데뷔
    1906년:파리 음악원 입학
    1910년:파리 음악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1913년:세포경화증으로 입원,
              이후 8년간의 연주생활 공백
    1918년:어머니 사망
    1921년:연주 생활 재개
    1924년:북미 연주회
    1926년:영국 데뷔 연주회
    1927년:파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
    1947년:첫 레코딩. 런던 필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1949년:스위스 국적 취득
    1956~58년:아르투르 그뤼미오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녹음
    1960년 11월:마르케비치와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24번 녹음
    1960년 12월 7일:벨기에 브뤼셀 병원에서
             사망
     

     

       클래식 음악 에 대해 접근하면 할수록 새삼 느끼게 되는 일들 중 하나는 이 분야에 유독 천재도 많고, 선천적 혹은 후천적 장애로 인해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이 말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냄새가 묻어나는가?)시켰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그랬고(청력상실), 자클린느 뒤프레(다중경화증), 오토 클렘페러(워낙 사고 종류가 많아서 한 마디로 어떤 치명적 사고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휘자) 역시 그랬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클라라 하스킬의 예술적 생애 역시 그러하다. 솔직히 하스킬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어린 소녀의 수줍음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녀의 연주에서는 프로 연주자의 강박같은 것이 없다. 대신 그녀의 연주에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딜레탕티즘이 느껴지곤 한다.(순전히 개인적인 사견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천의무봉한 연주라는 격찬을 받는 그녀의 연주를 아마추어 애호가의 연주와 빗대는 것은 아니나 하스킬의 연주는 듣는다기보다는 즐기게 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아무리 격렬한 음악도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그녀의 신산한 삶에 비하면 그녀의 음악은 막 바닷가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해물의 비릿한 냄새 같은 것이 묻어나는 것 같다.

      신비평(New criticism)은 문학을 실증주의적이거나 비평가 개인의 감상, 역사,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지만, 작품과 작가를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게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도 그녀의 연주만으로 하스킬의 일생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그녀의 인생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는 사람들은 그녀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 그녀의 연주가 단순히 천의무봉한 테크니션의 그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승화된 성녀의 연주로 들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몽환적 아름다움을 겸비한 천재 소녀

        하스킬 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에피소드는 그녀의 천재성에 관한 것들이다. 가령 그녀의 나이 여섯 살 때 하스킬은 모차르트 소나타의 한 악장을 단 한 번 듣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따라 쳤다고 한다. 물론 악보를 전혀 알지 못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뿐이 아니라 그녀는 그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바꾸어서 연주했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그녀의 천재성에 대해 뭐라고 더이상 말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 자신도 천재 중 하나라고 분류되곤 하는 찰리 채플린은 하스킬을 만나고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하스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스킬이 만약 20세기 초엽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그녀의 음반은 플래티넘은 우습게 넘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신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하지 않는다.

      하스킬은 18세(1913년)에 발병하여 숨지던 그날(1960년)까지 일생동안 병마와 전쟁, 고독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병은‘세포경화증’(Sclerosis)이라는, 뼈와 근육이 붙거나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의 병이었다. 그녀는 이후 4년간 몸에 깁스를 댄 채 살아야 했으며 당연히 연주도 할 수 없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시기에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댄 채 누워있어야 했다. 불행한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아름다움을 잃어 버렸다. 마치 저주에 걸린 공주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꼽추가 되어 버렸다. 20대의 나이에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워 일어난 그녀는 다시 연주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예전의 인기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행복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녀는 유태인이었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그녀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극도의 공포와 피곤으로 인한 뇌졸증을 일으켰다. 실명의 위기에 부닥쳤으며 각종 신경계에도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명한 유태계 의사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달려왔고, 어려운 수술을 통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스킬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돌아섰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그녀는 전쟁 기간 동안 마르세유 근교에 숨어 지내야 했다. 당시 그녀에게는 바이올린 한 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일찍 부모를 잃고, 오랫동안 병마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클라라 하스킬의 친구는 고양이었다. 

    (출처 : http://windshoes.new21.org/classic-haskil.htm)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전설 속의 거장 - 20세기를 매혹시킨 클래식의 천재들』/ 조희창 지음 / 황금가지 / 1998년
      - 오랫동안 <객석>의 기자로 일했던 조희창 씨가 자신이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매혹적이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거장들의 이야기가 대중적인 필치로 잘 그려져 있다. 강력 추천한다.

      이 한장의 명반』/ 안동림 지음 / 현암사 / 1999년
      -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 음반에 관한한 고전 중 하나가 된 책이다.
    클래식 음악 초심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길잡이다. 애호가들에게도 지휘자와 지휘자의 차이, 가수와 가수의 차이까지 식별하는 심미안을 키우는 데 유익한 길동무다. 음악사에 빛나는 명곡들을 망라하면서, 한편 한편마다 곡해설은 물론 작곡가의 생애, 시대적 배경, 작곡과정에 얽킨 사연, 녹음과정, 다른 음반과의 차이점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 클라라 하스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콩쿠르 사이트이다.(불어)

      Clara Haskil A/A(M/M)

     


    하스킬의 연주와 죽음

      하스킬은 평생을 고독과 싸워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고집세고 편협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당대의 연주자들이 그녀에 대해서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본 데에는 그녀의 한없는 겸손함과 인격에서 비롯된 바가 크기 때문이다. 하스킬은 일찍부터 일류 음악가들과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코드 녹음은 1947년 그의 나이 52세에 이르러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하스킬의 음악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였고, 그녀의 연주는 명징했으며 아름다웠다. 어떤 꾸밈이나 과장없이 다만 마음을 다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모’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처음으로 잘츠부르크를 방문한 때의 일이었다. 떠나기 전 러시아의 음악인들은 니콜라예바에게 “서방에 가거든 카라얀이란 지휘자의 콘서트에 꼭 가보도록 해. 그는 새로운 토스카니니로 알려져 있어”라고 조언했다. 때마침 잘츠부르크에서 카라얀의 모차르트 연주회가 있어 이에 참석했다. 당시의 협연자가 클라라 하스킬이었지만 니콜라예바로선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 피아노의 거장이 토로한 하스킬에 대한 감동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녀의 몸은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카라얀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건반으로 손을 옮기자 곧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내가 평생 동안 들은 최고의 모차르트 전문가였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력해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다시 울려퍼질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풍부하면서도 자연스런 음이 오케스트라로 전달되어 지휘자마저 마술에 걸려 있었다. 그녀 덕택에 그들 모두는 음악적 진실을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콘서트가 되었다.”

     

     말년에 이르러 하스킬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요,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  


         

     

     

    Clara Haskil: The Salzburg Recital

    루마니아 부쿠레시티 출신의 여류 피아니스트 하스킬(Clara Haskil 1895~1960)은

    파리 음악원에서 코르토, 포레에게 사사했고

    에네스코, 이자이와같은 바이올린의 거장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모짜르트에 정평했던 그녀는 신체적 불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초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죽은 해에 연주한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 24번>·

    <어머님께 말씀 드리지요에 의한 변주곡 K·265>,
    그뤼미오(vn)와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 K·301, 304, 376&378>은

    길이 그 빛을 잃지 않을 그녀의 소중한 유산이다.

    유태계 루마니아인이었던 클라라 하스킬은 악보도 전혀 알지 못하던 여섯 살 때
    모차르트 소나타의 한 악장을 단 한 번 듣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따라 쳤으며

    그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바꾸어서 연주했다고 할 정도의 천재소녀였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모차르트곡들은 한결같이 꾸밈이나 과장됨이 없이
    모차르트의 순수함을 그대로 듣는 저에게 전해주곤 합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태어났고 음악적인 재능을 타고난 꿈많은 그녀는 18세에 세포경화증
    (뼈와 근육이 붙고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의 병)을 앓게 됩니다.
    온몸에 깁스를 한 상태로 고통속에서 하루 하루를 지내게 됩니다.

    병마로 인해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난 뒤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 다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 그녀는,

    늘 헝클어진 잿빛 머리칼에 온 몸이 뒤틀린 모습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야만 했고
    196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경계의 갖가지 합병증과 후유증으로 병마와 고독한 투쟁을 하며
    일생동안 세 남자를(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열렬히 사랑했다. 라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연주는 처연한 아름다움이라 감히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뼈를 깍는듯한 아픔속에서도 좌절하지않고 아름다움으로 순수함으로 세남자를 사랑하며
    신이 내려주신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하스킬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격렬한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듣는 저에게 숨가프게 들리지 않음은
    그녀가 온몸으로 감싸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 찰리 채플린-

    “클라라 하스킬, 1960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녀는 거의 피아노의 성자로 살았다.”
     - 독일의 비평가 요하임 카이저-

    "천의무봉(天衣無縫 - 천사의 옷은 기운 자욱이 없다)"
    -‘이 한 장의 명반’ 저자 안동림-

    하스킬 할머니는 모차르트의 스페셜 리스트다.
    많은 음악가와 평론가들이 그녀의 모차르트에 대해 찬양했다고 한다.
    같은 루마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는 그녀의 모차르트 연주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진실에 가까운 모차르트’라고 찬탄까지 했다 한다.

    1895년 루마니아 태생의 유태인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타고난 하늘이 보낸 천재 그 자체였다.
    불과 6살 때 단 한번 들은 모짜르트 소나타를 그 자리에서 재현해 냈다던가 하는

    일화가 수 없이 전해진다.

    그녀는 또 북구 특유의 환상적인, 천상의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젊었을때 남자 팬들을 압도했던 그녀의 미모의 사진을 보길 바람)

    사진을 보면 그 예지에 빛나는 눈과 반듯한 이마, 단정한 입매등

    그 녀가 신의 축복속에 태어난 특별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파리 콘서바토리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15세이후 한창

    그녀의 천재성을 과시할 무렵  갑작스러운 병에 걸리게 된다.

    세포경화증 이라는 불치의 병이었는데 18세부터 무려 4년이나 깁스를 한채 지내게 된다.

    그녀의 연주 공백은 8년이나 이어 졌다. 더구나 그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결국 곱추가 된다.

    그녀 나이 불과 25살때의 일이다.

    미모의 연주자가 곱추가 된것이다...

    그녀는 고독했다..자신의 천재적 영혼속에서 갇혀 살면서 일생 피아노와 고양이뿐인

    고독한 생활을 영위했다 한다.

    그녀의 또다른 천재성은...
    브람스 협주곡을 단 이틀 만에 오케스트라 총보를 포함한 악보 전체를 암기하고 무대에 섰다던가..
    리스트 협주곡을 단 하루만에 암보했다던가 하는 일화가 무수히 많다..

    그녀의 모차르트 연주는 지금까지 아무도 추종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과장된 정열도 없고 지나친 재능의 과시도 없는 겸손한 그녀의 연주.
    차분한 그녀의 연주속에는 본인 마저 맏아 들일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육체적 정신적 아픔들..
    이후 그녀는 철도역에서 굴러떨어져 허무한 죽음을 66세에 맞는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그녀의 고틍을 짊어 지면서 연주 활동을 하고 무대에 서게 된다.
    그 절망을 딛고 곱추가 된 몸을 무대에 오른 클라라 하스킬이야 말로

    우리가 존경해야할 연주자이며 위대한 예술가 였다..
    팬들이 그를 원해서 선것이 결코 아닐것이다...

    의지? 그것은 아무나 갖고 있을수 있는것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천재에게는 그럼 감정 필요없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의지 노력 재기... 그이상의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클라라 할머니의 음악을 더욱 사랑한다... 



    출처 http://hyuni.pe.kr/ezboard/ezboard.cgi?db=column&action=read&dbf=190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는 클라라 하스킬의 묘>

     

    아래의 내용은 두권의 책[이 한장의 명반, 허재의 클래식 이야기]에서 읽고난 후 그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1960년 12월 7일 브루셀에서 클라라 하이킬은 갑자기 죽었다.
    철도역 층계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이때 나이 65세였다

    예술가로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인간으로서는 하스킬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었다.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고스란히 몸소 겪어야 했던 것은 동시대의 다 겪는 일이라 그녀만의 고통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등이 굽은 곱추로서는 남달리 전쟁의 혼란의 견디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병마는 그녀의 등만을 굽혀 놓은 것은 아니었다. 뇌종양이 그녀의 정신까지도 위협했다. 가까운 친척, 스승들도 차례로 그녀 곁을 떠나 저승으로 갔다. 만년의 클라라의 삶에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자기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뒤 스스로의 영혼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다. 피아노의 높은 정신적 세계속에서만 그녀는 삶의 의미와 희열을 맛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1895년 1월 7일,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태어난 클라라 하스킬은 어려서부터 빈으로 옮겨가
    리하르트 로베르토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7세에 이미 빈에서 데뷔한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천재적 소질을지니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후 파리 음악원으로 가서 포레와 코르토에게서 배웠다
    1910년에는 그 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고 이어 개인적으로 베를린의 부조니로부터 더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클라라는
    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자이의 반주자로 기용되었고 또 고국 루마니아의 대선배인 바이올리니스트
    에네스코와도 협연했으며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와도 협연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만년에는 스위스의 베베이의 정착하여 거기서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만년의 특기할 만한 연주 활동은 아들만큼 나이 차이가 나는 A. 그뤼미오와 소나타 연주를 한 것이다. 이 소나타 연주는 유럽 음악계의 명물로 높이 평가되었다

    하스킬은 청초하고 아름다운 터치를 지닌 매우 조심스런 연주 스타일을지니고 있어서 특히 모짜르트의 전문 연주가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결코 모짜르트에만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레코드로도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과 팔랴의 <스페인 정원의 밤> 같은 명반을 남기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낭만주의적 색채가 짙은 힘찬 연주를 들려주고있다

    특히 모짜르트 연주로는 그녀가 만년에 스테레오로 녹음한 마르케비치와의 피아노 협주곡 제20, 24번은 그 향기 높은 섬세함이 우리를사로잡는다. 또 프리차이와의 피아노 협주곡 제19, 27번도 하스킬의모짜르트로서는 중요한 레코드이다. 그리고 그뤼미오와 협연한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집(모노, 스테레오 2매)은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을 동반한 피아노 소나타로서는 완벽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클라라 하스킬의 모짜르트 연주중 귀중한 유산은 그녀 최만년의 녹음 레코드인이 <클라라 하스킬, 모짜르트 연주집 (Clara Haskil plays Mozart)>이다

    **20번 피아노 협주곡**은 모짜르트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색채를 띤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서가 풍부하고 단조의 조성에서 우러나오는 어두운 슬픔의 세계에대한 우수어린 동경이 펼쳐지고 있다.

    저음의 꿈틀거리는 어둡고 비극적인 시작의 첫악장으로 부터 그 비장감은 남다른데가 있다. 제 2악장의 로망스의 따스한 감정 그리고 지단조의 눈부신 강렬한 대조 격한 상승의 피날레 주제등이 그때까지의 여러 작품을 지나 새로운 지평을 열며 베토벤의 세계를 예견하는듯하다. 이곡은 훗날 여러작곡가들에게 공감을 주어 베토벤이나 브람스는 이곡의 카덴짜를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이곡의 비장하고 특출남이 듣는이들에게 여러 감정들로서 색다른 감동을 잔잔히 전해주고 있다.

    1785년 이곡의 초연을 지켜본 아버지 레오폴드 모짜르트는 편지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모짜르트가 무대에서 사라질때까지 황제께서 모자를 들고 고개를 흔들며 브라보 모짜르트를 외치셨다....."

    20번 연주는 그녀가 죽기 1년전에 남긴 감면깊은 명연주로 마치 그녀의 말년의 쓸쓸한 생을 투영하는듯한 달관의 기품이 일품인 연주이다

    피아노 협주곡 제 13번 C장조 K. 415는 모짜르트가 1782년--84년 동안빈 시대에 작곡한 것이다. 특히 제12, 13, 14번을 함께 묶어 <너무 쉽지도않고 또 너무 어렵지도 않게 알맞는 중간 정도로 만들었으며, 아주화려하게 들리면서도 공허해지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고말하고 있다. 작곡가가 빈의 청중의 보수적인 기호에 맞추어 모험을 피하고있음을 엿볼 수 있는 곡들이다. 그중에도 제13번은 파고트, 트럼펫,팀파니를 첨가한 대편성이어서 더욱 더 화려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스위스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던 클라라는 마침 새로이 발족한 루체른 훼스티벌 스트링즈의 지휘자 루톨프 바움가르트너의 간청에 못이겨 병마에 시달리는 몸을 이끌고 녹음한 것이다

    클라라 하스킬은 모짜르트가 18세 때 작곡한 초기 소나타를 남달리좋아했다.
    이 초기 곡들에는 모짜르트의 순진함과 천재성이 순수하게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짜르트는 잘츠부르크 시대에 작곡한 이 소나타 K. 280을 초보자에게 치게 했다고 한다

    모짜르트의 <어머님께 말씀드릴께요>에의한 변주곡은 1778년 여름 파리에서 작곡된 4곡 중의 하나이다.
    흔히 <반짝 반짝 작은별>변주곡이라고 널리 알려진 이 곡은 본래 그 테마를 프랑스의 민요에서 따온 것이다 뭔가 동심의 세계를 그린 듯한 청순함이 이 곡 전체에 넘친다

    하스킬의 천의무봉한 청초한 연주는 우리 가슴에 쌓인 세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 하다


    출처 http://hyuni.pe.kr/ezboard/ezboard.cgi?db=column&action=read&dbf=190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아온 그녀의 마지막 고백을 옮겨봅니다.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요,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Clara Haskil - Digital & Analog(LP) Source

     

    바이올린 소나타 18,21,24,26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 24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9, 27번외

    Beethoven Sonatas for Piano and Violin (4LP)

    Mozart piano variations(반짝 반짝 작은별 변주곡) k265
    "아, 어머니 당신께 말씀드리죠"
    연주-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1895-1960)

     

     

     

    연주 모음 바로 가기http://cafe.daum.net/musicgarden/5var/3012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별초롱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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