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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집권부터 하수구까지...사진으로 본 카다피의 일생

바래미나 2011. 10. 23. 01:21

쿠데타 집권부터 하수구까지...사진으로 본 카다피의 일생

머니투데이 | 뉴스 | 입력 2011.10.21 14:55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서울=뉴스1 박소영 기자)


AFP=News1

1969년 9월 27일. 당시 27세 청년무아마르 카다피 대위는 리비아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신병 치료 차 수도 트리폴리를 비운 사이 동료 장교들과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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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 9일 알제리에서 열린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76개 나라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카다피. 제 3세계 비동맹의 주역으로 패기 넘치는 31살의 젊음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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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 3일 카다피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사피야(앉아있는 사람)가 세네갈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이다. 집권 15년을 넘긴 그에게서는 차츰 독선적인 절대권력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카다피는 결혼을 두 번 했고 모두 8명(아들 7명, 딸 1명)의 자녀를 뒀다. 첫 부인과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고, 두 번째 부인이 아들 6명과 딸 하나를 낳았다.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 당시 그는 수양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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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가 쿠데타를 통해 리비아의 국가원수로 등극한 후,1970년대의 카다피 모친(왼쪽)과 부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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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10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 열린 아랍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재자' 카다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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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10일 카다피는 현재는 축출된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와 만나기 위해 카이로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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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6일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주최한 식량 안보에 대한 세계 정상 회담 창립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이다. 67세 독재자 카다피의 얼굴은 주름과 탐욕이 가득 차 보인다.

기행을 일삼던 그는 성형도 마다하지 않았다. 1995년에는 자신의 복부 지방을 얼굴에 주입해 주름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2004년에는 '테러리스트'로 비쳐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특별히 120만 달러를 들여 미국의 한 회사를 고용해 자신을 잘 포장하는 법을 배웠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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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중 살아남은 카다피의 일족이다. 카다피 부인 사피야(왼쪽부터)와 아들 한니발, 모함메드 그리고 딸 아이샤. 이들은 모두 지난달 29일 알제리로 도피해 화를 모면했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는 현재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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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0일 카다피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15일 벵가지에서 자신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첫 발발한 이래3월 말부터 국제 사회의 공격이 개시됐지만 카다피는 8개월간의 거친 항전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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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카다피는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과의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심한 부상을 입은 채 시민군에 생포된 카다피는 미쓰라타로 이송 도중 숨을 거뒀다. 69세 짧지 않은 삶이었지만 누구보다 화끈하고 격동적으로 보낸 일생이었다. 미쓰라타에 카다피의 시신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최후를 휴대폰으로 찍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