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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65m 폭풍 ‘골프공’으로 잠재운다… 남극 제2기지 ‘장보고’ 탄생의 비밀

바래미나 2011. 9. 30. 01:04

초속 65m 폭풍 ‘골프공’으로 잠재운다… 남극 제2기지 ‘장보고’ 탄생의 비밀

국민일보 | 입력 2011.09.29 17:56 | 수정 2011.09.29 21:34

 칼날 같은 바람이 문제였다. 초속 40m의 매서운 바람이 시시때때로 분다. 순간 최대풍속은 64.9m나 된다. 이 정도 폭풍 속에 있으면 사람은 날아간다. 나무는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힌다. 건물이라고 온전할 수가 없다. 아주 견고한 구조물도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요동치거나 파괴될 수 있다. 하물며 동절기 9개월간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건물 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안전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한 달이 넘도록 밤낮으로 궁리했다. 바람. 바람. 바람…. 초강력 태풍 수준의 무지막지한 바람을 수십 년 견딜 수 있는 유체역학적 형태를 어디에서 착안할 것인가. 호주 원주민들이 던지는 부메랑? 무서운 속도로 대기를 뚫는 우주선? 바람에 대한 모든 자료와 정보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심지어 CIA(미국 중앙정보국) 홈페이지까지 들어갔다. 거기서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다보니 문득 골프공에 대한 어떤 보고서가 눈에 띄었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한 교수가 '딤플'(골프공의 표면에 있는 분화구 형태의 홈)의 효과를 연구한 것이었다. 골프공은 매끈매끈한 구체에 비해 훨씬 긴 비거리를 기록한다. 표면의 많은 홈이 이른바 와류 현상(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물체 뒤편에서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그 물체의 진행을 방해하는 현상)을 현저히 줄이면서 바람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자동차 외피(外皮)에 딤플을 잔뜩 만들어 고속 주행 테스트를 해보니 이전보다 주행 속도가 20% 빨라지고 연비도 20% 감소했다. 그래서 이를 우주왕복선 표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남규(41) 공간건축 설계부문 소장은 무릎을 쳤다. 아, 이거다. 골프공이다! 미친 듯 휘몰아치는 강풍의 압력을 골프공 모양의 외피로 극복할 수 있겠구나! 남극 제2기지의 가장 독창적인 외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박 소장은 골프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었다.

내륙 전초 기지 건설 앞둔 최종 현지 실사

다음 달 2일 한국 최초의 쇄빙선인 7487t급 아라온호가 인천항을 출발한다. 대한민국의 남극 제2기지인 '장보고 과학기지' 건설을 앞두고 마지막 사전 조사를 하기 위한 항해다. 아라온호가 장비와 물품을 싣고 먼저 떠나고, 조사단은 12월 18일 비행기로 출발해 뉴질랜드에서 아라온호에 탑승할 예정이다. 최종 목적지는 장보고기지가 들어설 남극대륙 동남쪽 로스해에 접한 테라노바 만(Tera Nova Bay). 40명 규모의 조사단은 이곳에서 한 달 일정으로 기지 건설의 '실전'에 대비한 물품 하역 루트 점검과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

테라노바 만에는 아무 때나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남극의 여름철(한국의 겨울철)에 두꺼운 해빙이 녹아 아라온호의 쇄빙이 가능한 65일간만 드나들 수 있다. 그래서 1차 조사를 지난해 1월에, 2차 조사를 올해 2월에 실시했다. 3차 조사단이 이번에 실사를 마치고 나오면 내년 12월 해빙기 때는 실제 건설단이 기자재를 갖고 투입돼 착공에 들어간다. 역시 65일 안에 공사를 마치고 빠져나와야 한다. 사전준비를 위한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최종 설계는 지난 6월에 다 끝났고, 각종 부품 제작을 위한 하청업체 선정은 11월쯤 이뤄진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국민이 장보고기지 건설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 '이미 세종기지가 있는데 뭐 하러 기지를 또 만드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장보고기지는 세종기지만큼 중요하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하다.

세종기지는 1988년 칠레에 인접한 맥스웰만 연안 킹조지섬에 세워졌다. 남위 62도, 서경 58도 지점이다. 세종기지의 문제는 바로 이 지리적 위치에 있다. 지구 온난화와 자원 고갈 문제로 남극 연구의 전략적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종기지는 위도가 낮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아남극권에 있어 고위도에서 가능한 오로라 관찰, 고층대기학, 빙하학, 지구자기학 등 극지 본연의 연구를 하는 데 제약이 많다. 광물 등 부존자원 조사도 불가능하다. 남극 진출 초기에는 혹한과 블리자드(Blizzard·강풍을 동반한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 기술력이 부족해 그나마 환경 조건이 좋은 킹조지 섬으로 일단 들어갔던 것이다.

제2기지는 이처럼 세종기지의 지리적 한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결국 정부는 남위 70도 이상의 고위도 내륙지역을 물색했고, 여러 가지로 입지가 적합한 남위 74도, 동경 164도 지점의 테라노바 만을 선택했다. 세종기지에서 직선거리로 4500㎞(서울-부산 거리의 약 10배)나 떨어진 남극대륙 깊숙한 지점이다. 남극점을 기준으로 하면 세종기지는 3100㎞, 장보고기지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1700㎞ 거리에 있다. 남극에 단 2%밖에 존재하지 않는 육지 위에 세워짐으로써 세종기지의 한계를 넘어 명실상부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기지를 내륙에 건설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강풍이다.

시속 230㎞가 넘는 '미친 바람'

"세종기지는 남극이 아니라 남극에 인접한 섬에 위치해 있어요. 기후조건이 그렇게 열악하지 않은 곳입니다. 내륙이 아니라서 지금 전초기지 역할은 못 하고 있지요. 그래서 제2기지를 세우려는 건데, 테라노바 만 쪽은 기후가 남극에서도 가장 나쁜 지역입니다. 다른 나라도 꺼려서 독일과 이탈리아만 이곳에 기지를 두고 있어요.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순간 최대 풍속이 65m에 달하는 강풍입니다. 시속으로 따지면 230㎞가 넘지요."

장보고기지를 설계한 박 소장을 지난 27일 서울 원서동 공간건축 사무실에서 만났다. 공간건축은 부산종합운동장(2002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대관령 알펜시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 카이스트 본관,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분당 차병원, 88올림픽 주경기장 등을 설계한 국내 최고 수준의 종합설계사무소다. 박 소장은 공간건축의 베테랑 중 한 명이지만, 바람 문제 때문에 어지간히 골치를 썩인 모양이었다.

"다른 나라는 기지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만든다고 지반에 철근콘크리트 파일(pile·말뚝)을 엄청나게 많이 박았습니다. 그런데 파일을 그렇게 박으려면 공사가 굉장히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요. 게다가 문제를 기술력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물리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이지요. 그렇게 해도 지붕이 뒤집어지곤 합니다. 장보고기지는 뭔가 유체역학적인 형태로 바람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초속 65m가 어느 정도 세기인지, 강풍의 상징 태풍과 비교해봤다. 우리나라가 기상예보를 한 이래 최악의 태풍이 1959년 9월에 한반도를 휩쓴 '사라'인데, 사라의 초속이 45m였다. '루사'는 41m, '곤파스'는 40m였다. 초속 65m면 그야말로 초강력 태풍인 것이다. 그런 바람이 테라 노바 만에 마구 불어대니, 지난해 조사단이 현지 실사 때 설치했던 베이스캠프는 겨울철로 접어들어 바람이 광포해지자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김예동(57) 남극대륙기지건설단 단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인천 송도동 극지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김 단장에게 현지의 바람이 얼마나 센 거냐고 물었더니 "초속 40m만 돼도 지프차가 그냥 굴러 간다"면서 "우리나라에 온 태풍 중에 제일 세다고 하는 게 40m 안팎"이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2004년 초대 극지연구소장을 지냈고, 지금까지 25회나 남극 탐사에 참여한 국내 최고의 극지 전문가다. 현재 장보고기지 건설 준비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폴란드 기지에서는 강풍에 차량과 건물 일부가 날아가고 유리창도 다 박살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영국 최고의 설계업체를 제압하다

파일을 박아 기지를 고정시키려는 건 좀 '무식한' 방법이다. 지난 2월 현지 실사 때 조사단이 테스트를 해봤더니, 지름 30㎝ 굵기로 2m 깊이의 구멍을 하나 뚫는데 인공 다이아몬드 드릴을 이용해도 10시간 이상이 걸렸다. 땅 속이 온통 꽝꽝 얼어붙은 영구동토(永久凍土)층이기 때문이다. 그걸 200개 이상 뚫어 파일을 박자면 짧은 공기(工期) 내에 기지를 완공할 수 없다. 한꺼번에 여러 구멍을 뚫을 수 있도록 인부와 장비를 대거 투입할 수도 없다. 남극 공사에는 한 번에 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된다.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국제적 지침 때문이다. 장보고기지 건설의 경우 최대 120명까지만 갈 수 있다.

그래서 박 소장은 별별 궁리를 다했다. 지붕에 1m 두께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올려놓는 방법(장독 뚜껑 위에 돌을 올려놓듯이), 굵은 와이어(쇠줄)로 팽팽하게 당겨서 고정시키는 방법도 생각했다. 그렇게 고심하다 마침내 '골프공 딤플 공법'을 찾아낸 것이다. 지붕을 비롯한 기지의 외피에 무수한 홈을 파기로 했다. 엠보싱 화장지가 연상될 정도다.

아울러 기지의 전체적인 모양은 대칭형, 그 중에서도 삼각형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강풍에 대응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오각형이나 십자형보다 삼각형이 모든 방향의 바람에 대응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강희성(43) 공간건축 대표는 "바람이 건물을 비껴나가는 듯한 효과를 낼 것"이라며 "자동차 위에 종이딱지를 올려놓고 시속 300㎞로 달려도 딱지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 하에 적합한 구조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설계를 해서 캐나다와 영국에 있는 전문 연구소에 보내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끄떡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장보고기지는 단 한 개의 파일도 박지 않고 초속 90m의 바람까지 견딜 수 있다는 게 공인됐다. 그 어떤 나라의 기지에도 적용된 적이 없는, 세계 유일의 독창적 공법이다. 사실 공간건축이 지난해 11월 국토해양부 공모에서 영국의 막강한 설계업체 휴브로튼사를 제치고 사업자로 선정된 것도 이 딤플 공법을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공간건축은 이전까지 남극 기지 설계 경험이 전혀 없었다. 반면 영국의 남극 기지 '할리 식스(Halley VI)' 등을 설계했던 휴브로튼사는 기존 방식대로 잔뜩 파일을 박는 설계안을 제출해 오히려 공간건축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누적된 경험이 발상의 혁신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세계에 자랑할 명품 모델

장보고기지는 지상 4층, 15m 높이의 본관을 비롯해 우주기상 관측동, 지자기 관측동, 발전소, 비상대피동 등 10여개 건물로 이뤄진다. 디자인과 기능면에서 다른 나라의 기지들을 능가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탄생할 전망이다. 설계를 맡은 공간건축이나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 측 모두 국내 건설 기술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겠다며 최첨단 기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총공사비는 720억원이다.

장보고기지 본관은 우선 외관에서부터 뚜렷한 차별성을 띤다. 남극에는 현재 20개 국가가 운영하는 상주 기지 39곳이 존재한다. 세종기지를 포함해 이들 기지는 대부분 단층 컨테이너 박스나 열차 차량 스타일의 단조롭고 무질서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장보고기지는 강한 중심성을 갖는 방사형 배치에 미학적으로도 단연 돋보인다. 조감도를 보면 3개의 날개를 가진 UFO(미확인비행물체)가 설원에 착륙한 듯도 하고, 현란한 모양의 3각 스텔스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최저기온 -37.9도의 혹독한 추위와 블리자드에 맞서 외벽은 2중, 유리창은 5중으로 만들어진다. 화석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 발전소 가동 때 나오는 폐열을 100% 재사용, 난방과 온수 공급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나라 기지는 폐열 재사용률이 30% 수준이다.

특히 대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만전을 기했다. 1년 중 동절기 9개월 이상을 감옥에 갇힌 듯 고립된 실내에서 지내야 하는 대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무기력 증상을 보이기 쉽다. 킹조지 섬에 있는 한 외국 기지에서는 우울증을 앓던 월동대장이 방화를 해 기지가 다 타버린 일도 있었다. 강 대표는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보고기지는 한국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실내 정원 3곳을 꾸미기로 했다. 부들, 붓꽃, 청포 등 수생식물과 함께 상추, 파슬리, 파프리카, 콩나물, 토마토 등이 자라는 녹색 쉼터다. 노래방과 영화방, 스크린 골프방 등 오락시설도 갖춰진다. 여기에 1등급의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깔린다.

건축 기법도 획기적이다. 국내에서 직사각형 박스 형태의 모듈을 100% 사전 제작해 운반한 뒤 현지에서 레고를 쌓듯이 조립하는 신기술을 적용한다. 이렇게 하면 공사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모듈은 내부에 가구와 전기 배선까지 모두 갖춘 '숙소 유니트' 등 3가지의 기본 타입이 있다. 각각 가로 폭 6m, 세포 폭 3m, 높이 3.1m 크기의 모듈 120여개를 순서에 따라 연결 부위 정도만 맞추면 기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장보고기지는 23년 전에 지어진 세종기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설계안은 이미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 6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34차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 회의(ATCM)'에 우리 대표단이 나가 기지 건설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남극은 유엔이 아니라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들이 전적으로 관장한다. 회의에서 33개 참가국 대표들이 만장일치의 지지를 보내줬다. 한국 대표단 핵심 멤버였던 김예동 단장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짓겠다고 30분간 공식 발표를 하고 나니까 20개국 대표가 잇따라 발언을 신청해 열렬한 지지와 감탄을 표시했다. 디자인과 기능, 친환경적 측면 등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혁신적인 기지라는 반응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내년 7월 국내에서 먼저 공개

강풍과 추위 외에도 남극에서의 건설 작업에는 이만저만 고충이 따르는 게 아니다. 특히 주변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아라온호에 탈 때부터 신발 바닥에 묻은 흙까지 다 털어내고 아주 깨끗한 상태로 남극에 들어가야 한다. 체류 기간 발생하는 그 어떤 쓰레기도 현지에 버려서는 안 된다. 남극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보고기지 근처에는 도둑갈매기(스쿠아)와 펭귄, 웨델 해표 등의 서식지가 있다. 심지어 대소변도 버리면 안 된다. 배설물을 전부 모아놨다가 나중에 배에 싣고 나와야 한다.

건설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앞서 얘기한 대로 최장 65일밖에 안 된다. 최대한 신속하게 작업하더라도 기지를 한 번에 완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1, 2차로 나눠 공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1차 공사(2012년 12월∼2013년 2월) 때 본관은 다 지을 계획이다. 그리고 2차 공사(2013년 12월∼2014년 2월) 때 각종 연구동 등 부대시설을 모두 세워 완공한다. 2차 공사 때는 작업인력과 함께 연구인력도 함께 들어가서 머물게 된다.

기지 건설 사업에는 설계나 시공을 맡은 기업체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 외교통상부 등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해마다 열리는 ATCM에서 한두 국가라도 한국의 기지 건설에 시비를 걸면 작업 진행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에 당사국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치밀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결국 성공적인 남극 기지 건설에는 전체적인 국력이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도 '돈'이 되느냐를 따지기보다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상징성에 의미를 두고 작업을 수행한다고 한다.

사실 남극 기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VIP 관심사업'이기도 하다. 세종기지는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 시공한 것이고, 장보고기지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 발주됐다. 이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된 2008년 2월 25일 0시 정각을 넘기자마자 세종기지 홍종국 대장에게 예고도 없이 격려 전화를 걸어 홍 대장을 깜짝 놀라게 한 일화가 있다. 장보고기지는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적으로 야심 차게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퍼포먼스도 열린다. 내년 7월 학생들 방학 때에 맞춰 기지 일부를 국내에서 먼저 공개하고 기념행사도 가진다는 것이다. 남극에 실제 건설할 본관 건물을 적당한 장소에 한 달 정도 설치(가조립)해 두고 국민들이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인데 서울 시청 앞 광장, 삼성동 코엑스 전시관, 경기도 일산 킨텍스 등이 전시장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는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다. 영국은 '할리 식스', 벨기에는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남극 기지를 자국 국민들에게 먼저 선보였더니 관람 인파가 쇄도했다고 한다.

장보고기지가 완공되면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2개 이상의 남극 상설기지를 보유하는 나라가 된다. 특히 기능과 형태 면에서 국제적으로 자랑할 만한 극지 건축물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다들 자신감이 넘친다. 인터뷰 말미에 강 대표가 웃으면서 말했다. "남극 기지가 계획대로 완성되면, 우리의 다음 목표는 우주 기지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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