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서울 재탈환 후 서대문 근처의 1사단사령부를 방문한 맥아더(맨 왼쪽) 원수(51. 3. 24). 필자 제공
나는 평생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를 네 차례나 만났다. 전쟁터에서 두 번, 휴전 후 두 번 만났다.
이것은 군인인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전쟁터에서 우리는 사단장과 유엔군총사령관이라는 상하관계로 만났다.
나는 맥아더 원수가 1951년 2월 초순 킬러작전을 격려하기 위해 미8군을 시찰하러 왔을 때 수원비행장으로 출영(出迎) 나가 그를 처음 만났다. 이때 수원비행장에는 리지웨이 8군사령관을 비롯해 밀번 1군단장과 군단 예하 사단장들이 참석했다. 나는 그때 미1군단에 배속된 국군1사단장 자격으로 나갔다. 일본 제국을 무너뜨린 맥아더 원수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뵌 것은 처음이었다.
‘세기의 도박’ 인천상륙작전 구상
내가 두 번째로 맥아더 원수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서였다. 1951년 3월 15일 우리 1사단 에 의해 서울이 재탈환된 지 얼마 안 돼, 맥아더 원수가 직접 1사단사령부를 방문했다. 그때 나는 사단사령부를 서대문 근처의 한 초등학교에 두고 있었다. 맥아더 원수는 지프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앉은 채 우리 사단의 급양 상태를 물어본 후 한국군에 엄청난 양의 전투식량(K-레이션)을 보내 우리 사단뿐만 아니라 전 한국군을 기쁘게 해 준 적이 있다.
6·25전쟁 당시 맥아더 원수는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미 극동군사령관·극동육군사령관에 주일 연합군총사령관을 겸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서울이 함락된 다음날인6월29일 한국전선 상황을 정확히알아보기 위해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고, 전쟁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미 지상군 파견을 미 합참(JCS)을 통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구하기 위해 70세의 노구를 이끌고 한국전선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이에 한국전선에는 스미스 부대장을 선두로 미24사단의 딘 소장과 미8군사령관 워커 장군도 오게 됐다. 그는 이때 ‘세기(世紀)의 도박’이라고 하는 인천상륙작전을 구상,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어려운 전선상황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신념과 결단으로 11m에 달하는 간만의 차를 비롯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한군의 허리를 차단, 그들을 격멸했다.
우리 1사단이 평양을 탈환하고 미187공수연대와 평양이북에서 연결작전을 할 때 그는 평양을 방문해 미1기병사단의 의장대를 사열했고, 중공군 개입 후에는 단동의 압록강 상공을 공중 시찰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는 그를 전선에서 두 번이나 만난 행운을 얻었다.
휴전 후 참모총장으로 방미(訪美) 시 나는 뉴욕에 살고 있는 그를 방문했다. 한 번은 1953년 5월로 내 가 1차 참모총장을 할 때였다. 이때 미 정보국에 근무 중인 하우스만 중령(한국 육군참모총장 고문관 역임)의 안내로 남성인 대위와 함께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펜트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는 맥아더 원수를 방문했다.
나를 반갑게 맞이한 맥아더는 1시간 넘게 대화하면서 “휴전이 되면 한국방위는 어떻게 되느냐. 한국 군의 상태와 보급은 어떤가. 또 이승만 대통령의 근황은 어떻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통령 에 대해서는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후 내가 다시 방문한 것은 1958년 2차 참모총장을 할 때였다. 이때 나는 정래혁 육본작전국장과 백선진 국방부 군수차관보를 대동하고, 미 극동군사령부의 민사부장(G-5)을 지낸 휘트니 장군의 안내로 그를 방문했다.
한국의 은인이자 미국의 전쟁영웅
이때도 그는 한국과 아시아 정세에 궁금해하면서 이승만대통령의 근황과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봤다. 이때도 나는 그와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이때까지 그는 건강이 좋았으나 내가 프랑 스 대사로 있을 때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맥아더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될 때 내한해 축하했고, 1950년 9월 서울환도식 때도 이 대통령에게 서울을 반환할 정도로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는 6·25 때 한국을 통일시켜 보려고 무던히 애썼던 한국의 은인이자, 미국의 전쟁영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