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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운학문상감청자(雲鶴紋象嵌靑瓷)와 찻사발

바래미나 2009. 3. 3. 04:45

[도자기] 운학문상감청자(雲鶴紋象嵌靑瓷)와 찻사발

 

 

전성기의 고려 상감청자완에는 청자의 푸른 표면 위에 구름(雲)과 학(鶴)이 시문된 운학문(雲鶴紋)이 등장하여,

고려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운문(雲紋)은 자연현상과 관련이 있어 고대부터 신성시 된 것으로 장수와 장생의 길상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 단군신화 속에 등장하는 구름의 경우도 인간에게 신비로운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환웅이 인간세상을 다스리고자 무리 3천명을 이끌고 지상에 내려올 때,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를 거느리고 내려와 곡식, 질병, 생명,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렸다.
당시 농경생활을 주로 하던 사람들에게 바람, 구름, 비를 다스리는 주술사 또는 신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였을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러한 것들이 벽화나 종, 와당 등에 시문됐다. 고구려는 S자형 운문을 괴운(怪雲)처럼 나타내고 있다.

우현리 현실에 그려진 운문으로 기운 생동하는 선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는 형과 선이 부드러운 과운문(㎐雲紋)을 이루는데, 연화문전의 운문이 그것이다.

신라의 운문은 구름의 선이 길고 그 긴 모양에 3~5개의 연꽃문양을 나타내는데, 성덕대왕 신종이 그 예다. 
고려인들은 운문(雲紋)을 삼국시대의 것과 다르게 나타냈다.

 

곡선이 풍부한 구름머리[雲頭]를 길게 끄는 꼬리를 나타내어 바람에 날리는 비운(飛雲)이 즐겨 표현되었는데,

이 곡선미는 고려 운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인들은 구름문을 짧은 S자형 곡선을 세 겹으로

국한시켜 구름머리를 화개형으로 표현하여 즐겼으며,

후기에 와서 영지형운문(靈之形雲紋)을 나타내 영지를 구름형으로 표현했다.
 상감청자에 시문된 구름의 형태는 영지버섯, 한여름의 뭉게구름, 之자 모습과도 비슷하다.

구름의 머리는 대부분 3~5개 정도의 굵고 가는 것이 있고, 꼬리 부분은 가늘면서도 길게 표현되어 경쾌한

느낌의 비운(飛雲)이 주종을 이루며, 점차 도안화되어 간다.
 학문(鶴紋)은 운문과 짝을 이루어 상감청자의 문양으로 꾸준히 사용된다.

학은 그 자체가 본래 우아한 형태와 순수 담백한 생태를 가져 온갖 새들 중에서도 빼어난 새이며,

고아한 인상은 귀족취향의 고려사회에서 신분의 상징적 표현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학은 날짐승의 우두머리로 신선들을 공중으로 실어 나르는 새로 알려져 있다.

장례식 행렬 때는 날개를 펼치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모습을 한 학을 만들어

관 중앙에 올려 놓기도 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등에 태워 서쪽 하늘로 싣고 가라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창공 너머 신선이 사는 선계를 동경해 마지않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운학문을 널리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의종년간에 도교사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신선을 태워 나르는 운학문이 청자의 기면에 음각과 양각 수법으로

시문되기 시작했다.  61쪽의 청자음각운학문완(靑瓷陰刻雲鶴紋碗)은 운학문으로서는 가장 이른 작품의 하나이다.

청자 내면에 구름 속을 날고 있는 학의 사실적인 모습을 가는 음각 수법으로 섬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학을 대칭으로 나타내고, 그 주변에 비운(飛雲)의 약동하

구름 문양을 예리하게 새겼다. 약간 벌어진 완의

구름은 학의 비행 또는 휴식 상태를 보조하여 표현하는 소재로 학과 함께 기면을 교차적으로 장식해 왔는데,

운학문의 경우 학의 비상방향과 배치, 학의 표현방법에 따라 서로 다르게 시문된 구름의 형상과 배치된 표현을 발견하기도 한다.
상감청자에 시문된 학의 형태는 머리, 몸통, 다리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부리, 벼슬, 눈 등에 흑상감을 사용했고,

몸통 부분인 날개는 백상감으로 시문하여 학의 색상을 표현했으며 꼬리와 다리 부분은 흑상감으로 처리하여 사실성을 강조했다.
초기 운학문(雲鶴紋)은 음각, 양각, 음각과 상감된 형태로 12세기 후반 의종년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유래된 학의 상징적 의미는 고려청자의 푸른 표면을 창공으로 생각했고,  사선을 이룬 선과 작고 낮은 굽다리가 어울린 12세기 후반의 청자찻사발이다.

 청자양각연당초 상감운학문완(靑瓷陽刻蓮唐草 象嵌雲鶴紋碗)
 높이 5cm, 입지름 16.2cm. 12세기 후반. 개인소장

 

처음의 운학문이 시문된 완은 이처럼 화려한 음각수법으로 전남 강진 사당리 가마에서 시도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위 사진의 청자양각연당초, 상감운학문완처럼 내면은 양각수법으로

연못 속의 연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외면에 구름과 학을 시문한 상감의 운학문이 나타난다.

즉 양각수법과 상감수법이 함께 한 청자완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흑백 상감된 운학문이 선을 보이게 된다.

또한 청자상감운학문완에서 보듯 외면은 문양이 없고 내면에만 구름과 학을 번갈아 세 곳 또는 네 곳에 배치하여

전형적인 운학문완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실적인 학과 구름이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13세기 전반에 들어서서 다음 쪽의 청자상감운학문완에서 처럼 내면에 구름과 학을 네 곳에 배치하고,

내연은 당초문대로 장식하고 있으며, 외면은 운학과 보상당초문을 상감하여 내ㆍ외면이 모두 상감청자로 완성되게 된다.
청자완의 입이 벌어지거나 사선으로 된 것에서 이처럼 안으로 오므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색은 점차 투명해지고 있으며, 유가 얇게 시유됨에 따라 유빙렬이 기면에 나타나고 있다. 

 

 

청자상감운학문완(靑瓷陰刻雲鶴紋碗)
높이 6.3cm, 입지름 14.8cm. 13세기 전반. 개인소장

 

강진 사당리요 뿐만 아니라, 부안 유천리요에서 상감청자가 널리 제작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보이는 이 청자상감운학문완의 운학문은 이 완에 차를 담아 마셨던 찻사발로 추정되며,

차를 마실 때 마다 신선들이 사는 선계(仙界)를 그리워했던 고려인들의 마음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 청자상감운학문완에서 보는 운학문의 학은 양(陽)을 뜻하고, 그 정기는 금기(金氣)로써 화정(火精)을 나타낸다고 한다.

학의 고고한 기상은 귀족의 이상적인 성품을 상징해 왔으며, 장수를 나타내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음(陰)에 들어있는 운(云)자는 옛날의 雲자이다. 따라서 음의 본뜻은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기(氣)는 구름의 기운이다. 상형문자이다.라고 했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기(氣)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물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구름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청자상감운학문완의 바닥 가운데에 음각한 8개의 꽃잎은 태극의 자리에 위치하여 영원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고,

푸른 하늘을 우주의 공간으로 삼아 음 또는 기를 상징하는 구름과 양을 상징하는 학이 짝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사시(四時)를 영원히 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