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Koni Priveredlivie - Vladimir Vysotsky│White Nights 백야 (1985 OST)

바래미나 2008. 2. 25. 05:00
                                      [영화음악] Koni Priveredlivie - Vladimir Vysotsky│White Nights 백야 (1985 OST)
Koni Priveredlivie - Vladimir Vysotsky
White Nights 백야 1985 O.S.T
Vladimir Semyonovich Vysotsky (1938–1980)
 Koni Priveredlivie 뒷거름질 치는 말
 
 
     
White Nights 백야
STAFF : 감독-테일러 핵포드/ 제작-테일러 핵포드, 윌리엄 길모어/ 촬영-데이비드 와왓킨/ 음악-미셸 콜롬비에, 필 레이몬/ 안무-트윌라 다프, 롤랑 쁘띠
CAST :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그레고리 하인즈/ 이사벨라 로셀리니/ 헬렌 미렌/ 제르지 스콜리모우스키/ 제랄딘 페이지
개봉 1985년
 
 
     
이 한 곡의 노래, 지친 투사의 절규
한 남자가 텅 빈 무대에서 격정적인 춤을 춘다. 그 춤은 열정을 불사르는 춤이 아니라 오열을 토해 내는 춤이다. 낡은 녹음기에선 오래된 러시아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그 곁엔 통곡하는 여인이 있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듯한 이 남과 여는 어떤 사연을 안고서 이 곳에 함께 한 것일까?
우측 사진 설명  :  감독 테일러 핵포드 ▶
 
누군가 한 편의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 영화를 자주 찾게 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 때문이라든지,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라든지, 미려한 영상미 때문이라든지, 영화 전체를 수놓는 아름다운 음악 때문이라든지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저 장면 때문에 산지기는 한 편의 영화를 1년에 몇 번씩 다시 찾는다.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하는 발레리노의 고뇌에 찬 춤과 스피커를 뚫고 나올 듯한 한 사내의 노래 때문에 파렴치한 영화의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무던히도 자주 한 편의 영화를 다시 본다. 개봉 당시 단체관람 온 고교생들 틈에 끼어서 봤던,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 영화. 망명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쉬니코프Mikhail Baryshnikov 주연의 [White Nights 백야(1985)].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미국 출신의 상업영화 감독 테일러 핵포드Taylor Hackford다. 이 영화는 [An Officer And A Gentlemen 사관과 신사(1982)], [Against All Odes 어게인스트 올 오즈(1984)]를 거쳐 테일러 핵포드Taylor Hackford가 연출한 세 번째 작품으로 철저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불공정한 정치관을 가진 영화다.
관객의 환호 속에 공연을 끝낸 망명 무용가 니콜라이 로드첸코(미하일 바리쉬니코프Mikhail Baryshnikov)는 다음 공연을 위해 비행기에 오르고, 비행기는 해가 져도 밤이 오지 않는 백야의 땅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간다. 니콜라이의 바람은 그저 단 1초라도 빨리 이 '하얀 밤'을 통과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이런 니콜라이의 바람을 묵살하고, 비행기는 기체 고장으로 백야의 땅에 불시착한다. 니콜라이는 이제 자신의 예술과 자유를 위해 도망쳐 나온 그 구속의 땅에 되돌아 온 것이다.
오랫동안 니콜라이를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KGB가 굴러들어 온 떡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 KGB는 월남전에 반대하여 부대를 탈영하고, 소련으로 망명한 미국 출신의 전직 탭 댄서 레이몬드(그레고리 하인즈Gregory Hines)와 소련인 아내 다르야(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의 집에 니콜라이를 머물게 하며 회유에 들어간다. 거기에 더해 니콜라이의 옛 연인이자 현재는 소련 당국의 간부가 되어 있는 갈리나 이바노바(헬렌 미렌Helen Mirren)를 보내 그의 본국 귀환을 종용한다.
이후의 스토리는 구태의연하다. 니콜라이 회유작전에 참여했던 세 명의 남녀가 모두 니콜라이의 자유에 대한 의지에 감동 받아 니콜라이 백야 탈출극의 공범이 되고, 갈리나를 제외한 모두가 미국 대사관으로 무사히 탈출하는 그런 내용이다. 영화 자체의 재미는 둘째 치고,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결코 옳지 못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결론이 갈등의 축이었던 니콜라이와 레이몬드를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설정에 이르게 되면 이 영화의 골자가 너무나 노골적인 '자유주의 미국 만세'임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영화의 주제는 '빵보다 소중한 자유'인 셈인데, 흑인 탭 댄서인 레이몬드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도 '빵보다 소중한 자유' 때문일까? 산지기의 생각에는 아마도, 신념보다 소중한 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인 니콜라이 로드첸코를 연기한 배우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실제 구 소련에서 서방세계로 망명한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쉬니코프Mikhail Baryshnikov다. 볼쇼이 발레 이전에 구 소련의 발레를 대표했던 키로프 극단이 탄생시킨 세계적인 스타로, 금세기 최고의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미하일 바리쉬니코프Mikhail Baryshnikov는 표현의 자유라는 예술가들의 으뜸 덕목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해 무용가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의 무용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은 이 영화의 도입부에 실연 된 현대 무용 [Le Jeune Homme Et La Mort' Choreographed 젊은이의 죽음]에서 관객들에게 입증이 되었으며, 또 다른 춤에 관한 영화인 허버트 로스Herbert Ross 연출의 [Gigell 지젤(1987)]에도 주연으로 출연해 완벽한 춤과 제법 틀이 잡힌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정반대의 이유로 미국을 버리고 소련으로 망명한 탭 댄서 레이몬드 역에는 에미상 수상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레고리 하인즈Gregory Hines가 열연한다. 전문 탭 댄서이자 연극배우이기도 한 그레고리 하인즈Gregory Hines는 이 영화 이전에 이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olla 감독의 영화 [Cotton Club 카튼 클럽(1984)]에서도 화려한 탭 댄스를 선보인바 있다. 니콜라이의 옛 연인 갈리나 이바노바를 연기한 배우는 영국 출신의 지성파 배우 헬렌 미렌Helen Mirren이다. 틴토 브라스Tinto Braas 감독의 영화 [Caligula 칼리귤라(1978)]에서 말콤 맥도웰Malcom McDowell과 열연했고,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erway 감독의 [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에서도 정상급의 연기를 선사했던 배우다. 아일랜드 정치사를 배경으로 한 팻 오코너Pat O'Connor 감독의 [Cal 칼(1984)]에서도 열연한 바 있으며, 최근 작품으로는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 감독의 [Gosford Park 고스포드 파크(2001)]가 있다.
레이몬드의 소련인 아내 다르야를 보고 있으면 타계한 대배우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이 떠 오른다. 크고 맑으며 우수에 찬 눈동자라든지,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뽀얀 피부에 도톰한 입술이며 모든 이목구비가 젊은 시절의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이 환생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여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는 바로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과 이태리 네오-레알리즘계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감독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이 영화에서는 연기가 다소 서툴다 싶었지만 다음 해인 1986년에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Blue Velvet 블루 벨벳(1986)]에서 섬뜩한 연기를 선사한 바 있다. 이후의 영화들도 같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Wild At Heat 광란의 사랑(1990)]이라든지 로버트 저멕키스Robert Zermeckis의 유일한 컬트 영화 [Death Becomes Her 죽어야 사는 여자(1992)]등 주로 비주류 영화에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고 보니, 두 명의 여배우 모두 뛰어난 미모와 지성미를 자랑하지만 출연하는 영화들은 주로 비주류 영화 군에 속하고 있다.
간혹 영화를 보다 보면 영상보다 음악에 먼저 사로잡히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이 영화도 그런 류의 영화에 해당한다. 미셸 콜롬비에David Foster가 전체 스코어를 담당한 이 영화의 음악은 영상미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두 춤꾼이 주인공이다 보니 음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루 리드Lou Reed가 노래하는 <My Love Is Chemical>이나, 존 하이앳John Hiatt의 <Snake Charmer>가 풍겨내는 관능미도 뛰어나고,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의 <Far Post>도 뛰어난 트랙이다. 음반의 제작을 담당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가 직접 연주에 참가한 <Tap Dance>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거의 모든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는 'Love Theme'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발라드 곡이 한 곡씩 꼭 실려 있곤 하는데, 이 영화에는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매릴린 마틴Marilyn Martin이 함께 하는 <Separate Lives>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음악을 주제가로 선정을 하는데,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에는 주제가가 수록이 되어 있지 않다. 이 영화의 주제가는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가 노래한 <Say You, Say Me>였었는데,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의 소속사인 모타운과 영화 사운드트랙의 저작권을 가진 A&M간의 소유권 분쟁때문에 영화에서는 들을 수 있지만 사운드트랙에는 수록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이 사운드트랙을 구입하셔도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의 주제가는 들으실 수가 없다.
이제 서두에서 끄집어 낸 이야기를 마무리를 해야 되는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노래길래 20년 동안 두고두고 영화를 다시 보게 했을까? 영화 내용에서 8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나는 니콜라이와 갈리나의 첫 재회는 니콜라이와 레이몬드가 함께 있던 연습실에서 이루어진다. 첫번째의 재회에서 갈리나는 애증으로 닫혀 버린 마음을 쉽사리 열려 하지 않는다. 두 번째 만남은 레닌그라드의 유명한 극장 키로프에서 이루어진다. 갈리나는 그 곳에서 지난 십 수년 간 청취 금지 곡이었던 어떤 남자가수의 투박한 노래를 듣고 있다. 단순한 통기타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그 노래는 니콜라이와 갈리나가 젊은 시절 즐겨 듣던 구 소련 저항음악의 대명사인 블라드미르 비소츠키Vladmir Vyssotsky의 <Koni Priveredlivie 뒷걸음질 치는 말>이라는 노래다. 곧 이어 니콜라이가 등장하고 갈리나를 향해 '당의 간부라는 사람이 금지 곡을 듣고 있냐'며 빈정거리듯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노래 한 곡 때문에 둘은 서로 감추어 두었던 속내를 털어 놓게 된다. 니콜라이는 자유에 대한 신념을 춤으로 표현한다. 그들에게 무한한 자유와 변혁의 의지를 심어 주었던 '발란 쉰의 춤'을 오열하듯, 토해 내듯 추어낸다. 니콜라이의 오열을 지켜 보는 갈리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런 그녀를 니콜라이가 감싸 안으며 노래는 서서히 끝이 난다.
이 노래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그 음원이 적성국가인 구 소련의 음악인의 것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운드트랙에는 담기지 못 했다. 영화 개봉 후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구 소련 정부는 글래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깃발 아래 문호를 개방하고, 드디어 국내에도 적성 국가인 구 소련의 음악들이 소개가 되었다. 생소한 러시아 메탈 밴드들의 연주가 실린 [Rocking White Nights(1990)]라는 음반이 시리즈로 발매가 되어 상트 페테스부르그Sankt Petesburg의 <Confession>이라는 곡이 TV 드라마에 삽입이 되기도 했다. 그 노래는 또한 최 성수의 <고백>으로 번안되어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 보다 더 반가운 음반은 블라드미르 비소츠키Vladmir Vyssotsky의 시와 노래들을 실은 두 장의 음반이었다. 그 음반들에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문제의 노래 <Koni Priveredlivie 뒷걸음질 치는 말>이 수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 출처 : 2003. 12. 29. 山ZIGI VINAPPA
 
 
     
블라드미르 비소츠키(1938 ~ 1980)
 
1938년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노동자의 신분을 상속 받은 블라드미르 비소츠키Vladmir Vyssotsky는 20대의 후반에 노동자의 신분을 버리고 소극장을 순회하는 저항가수와 출판의 가능성이 희박한 시들을 필사본으로 발표하는 시인으로 거듭난다. 그가 1980년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KGB는 그에게서 한 시도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고, 그런 감시와 속박의 환경에서 만들어 낸 걸작이 바로 산지기가 그토록 기다리던 영화 속의 그 노래 <Koni Priveredlivie 뒷걸음질 치는 말>이었다.
구 소련 정부는 90년대에 경제 개방 정책과 함께 민중의 요구에 따라 그에게 훈장을 내리고, 그의 삶을 기리는 동상을 세웠지만 한 예술가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시련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가식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사후의 영광이 아니라 살아서 누려 보는 진정한 인민의 자유였기 때문이다. 살아 생전에 강가에 잠시 멈추어 서서 그를 태우고 달려 온 말에게 물 한 모금 먹이는 동안 폐부 깊숙이 까지 차가운 북반구의 공기를 들이 마셔 보는 것. 그 소박한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블라드미르 비소츠키Vladmir Vyssotsky는 198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에 만들어진 영화 [White Nights 백야(1985)]는 비운의 저항가수 블라드미르 비소츠키Vladmir Vyssotsky가 삼엄한 감시와 폭력적인 탄압 속에서 끈임 없이 열망한 진정한 자유,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를 찰나의 자유를 영화의 주제로 내세웠지만 구태의연한 수사에 그쳤고, 영화를 처음 본 이후 20여년 동안 이 노래 한 곡만 귓전에 메아리 친다.
     
Koni Priveredlivie - 뒷거름질 치는 말
나는 벼랑과 아슬아슬하게 맞닿은 협곡을 지나간다
나는 내 말에 박차를 가하고 매섭게 채찍질한다
숨이 가빠 바람을 마신다. 안개를 삼킨다
나는 길을 잃고 죽음의 황홀경에 빠질 것 같다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너는 내 채찍 소리가 듣기 싫겠지
내 운명의 말은 자기들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인다
내겐 생명의 시간이, 일을 마칠 시간이 없다
나는 내 말에게 물을 먹이고 내 노래를 마치리라
그리고 잠시나마 그 강가에 머물며 숨을 돌리리라
나는 죽어 간다.
한 포기 이삭처럼 폭풍우는 나를 쓰러뜨리리
새벽에 썰매가 나를 눈 속으로 끌고 가리
말아, 부탁하자, 조금만 그 걸음을 늦출 수 없겠니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는
내 최후의 날을 늦춰 다오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너는 내 채찍 소리가 듣기 싫겠지
내 운명의 말은 자기들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인다
내겐 생명의 시간이, 일을 마칠 시간이 없다
나는 내 말에게 물을 먹이고 내 노래를 마치리라
그리고 잠시나마 그 강가에 머물며 숨을 돌리리라
신에게 초대 받으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도착해야 한다
천사들은 왜 그토록 적의에 찬 분노를 노래하는가?
종은 왜 끝없이 오열하는가?
나는 내 말에게 울부짖는다.
속도를 좀 늦춰 줄 수 없느냐고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너는 내 채찍 소리가 듣기 싫겠지
내 운명의 말은 자기들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인다
내겐 생명의 시간이, 일을 마칠 시간이 없다
나는 내 말에게 물을 먹이고 내 노래를 마치리라
그리고 잠시나마 그 강가에 머물며 숨을 돌리리라
 
     
스크린속 나의 연인 -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개봉 첫회에 목숨걸던 시절…극장으로 달려가던 새벽 인신매매범에 끌려갈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분명 미하일 바리시니코프(59)의 팬이 아니었다. 소련 최고의 발레리나에서 미국 망명 예술가로 목숨 걸고 ‘조국’을 바꿨다는 것에 조금 흥미를 갖긴 했지만, 정확히 거기까지. 관심 있는 배우 목록을 대라면 그 외에도 나는 189명 정도는 숨도 안 쉬고 너끈히 외울 수 있을 만큼 세상의 많은 스타들을 사랑했다. 남자 구경하기 어려웠던 당시 여학생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넘치는 에너지를 항상 이상한 방향으로 폭발시키는 불완전한 시기였다는 뜻도 된다. 나의 열정은 공부가 아니라 영화로 슬슬 옮겨가고 있었고, 남들보다 먼저 영화를 보는 것만이 영화에 대한 내 애정을 드러낼 기회라는, 조금 유치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개봉 첫날 1회를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던 시절. 나는 제일 먼저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1등 관객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늘 시달렸다.
<지젤>(1987)은 바로 그 시기, 1등의 왕관을 쓰고 만난 기념비적인 영화였다. <백야>(1985)가 엄청나게 히트를 기록한 덕분에 당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천정을 찌를 정도는 되었다. 사촌언니는 그의 팬이었다. 나에게 늘 팝송과 영화의 신세계를 알려줬던 언니는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지젤> 첫 회를 봐야 해. 그리고 입장 순위 100위 안에 들어야 해. 그렇게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사진을 10장이나 준다고 하거든.” 우와, 나는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사진엽서 10장이라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1등 관객이 되기 위해 우리는 전날 합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혹 못 일어날 것을 대비해 밤을 꼴딱 새우기로 작정했다. 극장에 출동한 시간은 새벽 5시, 목표지점은 호암아트홀. 날은 어두웠고, 우린 아직 어렸으며, 덩치 큰 공포가 골목마다 잠복해 있었다.
새벽녘 시청 앞은 무서우리 만치 조용하고 축축했다.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인형의 집처럼 음산한 빌딩의 숲에서 두리번거리던 두 소녀. 그때 택시에서 내리는 우리를 가리키며 한 남자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우린 그가 당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인신매매범임을직감했다. 왜냐하면 그는, 도망치다 아무 택시에나 올라탄 우리를 뒤쫓아 와서는 택시 운전사에게 “얘들 우리 애들이니 어서 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사태를 파악한 아저씨는 남자를 멋지게 물리쳐주었고, 우리를 호암아트홀 경비실에 무사히 인도해준 후에야 발길을 돌렸다. 한숨을 내리쉰 후 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간은 겨우 새벽 5시45분이었다. 그날 우리는 당연히 1등 관객이었고, 두 번째 관객은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극장관계자들은 우리의 열정에 감복했는지 사진세트를 덤으로 하나씩 더 쥐어주었다. 하지만 밤새 수다를 떨고 험한 일까지 겪어서인지, 나는 영화 상영 내내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몰려오는 졸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게 <지젤>은 영화 속 로맨스와 발레 <지젤>의 로맨스가 기가 막히게 겹쳐진 영화라는 기억 이외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가 되었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꽉 낀 타이즈가 부담스러워 자꾸 눈을 돌리게 된 민망한 기억으로만 남은 영화. <지젤> 이후 나는 사실 발레 영화라면 치가 떨린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이름도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번도 깊이 사랑해 본 적이 없다고 믿었던 그 이름이,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칼럼을 청탁받고 나자 계속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사진설명 : 황희연 월간 <스크린> 편집장 
내친김에 찾아보니 그는 그 유명한 <섹스 앤 더 시티> 6시즌에 등장했다고 한다. 또 최근까지 화이트 오크 댄스 프로젝트라는 현대무용 단체를 활발히 운영했다고 한다. 아, 내 청춘의 한때를 불멸의 밤으로 만들어준 이 남자는 여전히 잘 살고 있었구나. 내심 기쁘고 뿌듯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사진엽서 세트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한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의 청록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 황희연/월간 <스크린> 편집장 2006-01-18
글 출처 :  ⓒ 한겨레 (http://www.hani.co.kr)
     
바리슈니코프 [Mikhail (Nikolayevich) Baryshnikov]
1948. 1. 28 라트비아 리가~.
구 소련 태생 미국의 발레 무용수.
1970~1980년대에 뛰어난 남자 고전 무용수로 활약했고 그뒤 유명한 무용감독이 되었다. 라트비아에서 러시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나 12세 때 리가의 오페라 발레 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무용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1963년 바가노바 발레 학교(레닌그라드 키로프 발레단의 훈련 학교)에 들어가 알렉산드르 푸슈킨에게 사사했다. 1966년 군무진의 일원이 되어 도제살이를 하는 관습을 깨뜨리고 단번에 독무자로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했다. 키로프 발레단에서 수석 남자 무용수로 활약하면서 자기를 위해 특별히 안무된 2편의 창작 발레 〈고리안카 Gorianka〉(1968)·〈베스트리스 Vestris〉(1969)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소련 관객들 사이에서는 매우 인기가 높았지만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가해진 공식적인 제약, 특히 외국의 현대 발레를 공연하지 못하게 한 조치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1974년 6월 토론토에서 순회공연을 하던 중 망명해 캐나다 정부의 보호를 받았으며, 그뒤 캐나다와 미국의 관객들 앞에서 일련의 무용을 선보여 크게 성공했다. 무용가로서 그는 뛰어난 육체적 기량과 도약력을 지녔으므로 매우 우아한 선 동작과 스텝을 결합하는 가장 어려운 발레 동작을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 1974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에 들어가 4년 동안 활동하면서 러시아 고전 발레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cker〉(1976)·〈돈 키호테 Don Quixote〉(1978)를 새로 안무했다. 1978~79년 조지 발란신이 이끄는 뉴욕 시립 발레단과 함께 공연하다가 1980년 다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로 돌아가 예술감독이 되었다. 무대 공연 외에도 영화 〈전환점 The Turning Point〉(1977)·〈백야 White Nights〉(1985) 등에서 무용가이자 배우로서 주연을 맡았으며, 텔레비전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Baryshnikov: In Black and White
     
 
 
Baryshnikov: In Black and White
   
 
Baryshnikov: In Black and White
     
Mikhail Baryshnikov / TIME Cover: May 19, 1975, Framed Art Print by TIME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