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례히 상동에 살았었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아래의 頌德碑 내지는 기념비는 늘 그 곳을 지나치며 보아 왔을 것이다. 왼쪽 두 기의 頌德碑는 토록산 아랫자락 신대골 공동묘지 입구와 상동체육관 근처 아래에 묵묵히 자리 잡고 있었던 곳, 아련히도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늘 따뜻한 양지에 위치하였기에 따사한 봄 가을로는 어린아이들의 붉은 벽돌 빻아 고춧가루 대용으로 만들어 소꿉장난 하던 장소, 당시 가로등 없는 으슥한 밤이면 광업소 퇴근 후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 한쪽 다리 들고 오줌을 질펀하게 싸던 곳이기도 ... 아무튼 이 두 비석은 이렇게 저렇게 수난을 많이 당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세 비석은 상동 발전의 확약을 약속한 원초적 공덕비, 기념비였음에는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약 한 달여 전, 선배님이시자 서예가이신 조옥자 선배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 상동에 가면, "그 비문 중 중석을 최초 발견하신 분이 黃 順자 元자님이 외할아버지이신데 일본놈들에게 빼앗겼다는 말씀과 그 비석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하여 줄 수 있느냐?" "잘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였지만 상동지역의 폭설과 함께 필자 애마(車)의 허접함을 고려 할 때 당장 착수 할 수 없어 미루던 바, 마침, 유난히도 길었던 설 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답사키로 하였던 것, 언제부터인가 옛 광업소 채광과 앞 마당에 옮겨져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 찾아간 채광과 앞이었지만 ...
최초 상동항은 ... 1916年 개항
분명히 이 콘크리트 슬라브 지붕 아래로 옮겨져 있던 두 공덕비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 버린 것 ... 노란 무꾸가 무게가 더 나간다나? 그야말로 황당무게... ^^ 콘크리트 처마 아래 두 비석이 서 있었던 기초는 있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 고가 대리석 도둑?
부랴부랴 수소문의 반복을 거듭하던 중, 다리원 이교선님, 선배이신 천성억님으로부터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상동읍에서 중석 박물관을 위하여 예기치 못한 손상을 방지코자 읍사무소 창고로 이동 보관 중에 있다는 것, 일요일임도 불구하고 단숨에 내달음쳤다 .
조옥자 선배님께서 찾든 바로 그 비석 ...
重石露頭發見紀念碑 - 비문의 앞면
1916年 4月 黃順元에 依하여 發見되다 - 비문의 뒷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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